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뻗은 손끝을 생(生)이 교묘하게 비껴가기 시작한 것은.
어릴 적 내 손에 쥐어졌던 최초의 스케치북은 가로세로가 반듯한 백색의 영토였다. 그 위에서는 연필을 쥐고 긋는 대로 길이 났고, 마음먹은 대로 세상이 그려졌다. 선은 곧았고 면은 주인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인생 또한 그처럼 정직한 백지인 줄 알았다. 내 노력의 총합이 곧 삶의 결과물이 될 것이라 믿었던 오만은, 스무 살 무렵 찬 바람이 불던 대학가 앞 벽보 앞에서 처음으로 깨어졌다. 빼곡한 합격자 명단 어디에도 내 이름 석 자는 없었다. 돌아오던 길, 외투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끝이 시리도록 저려왔다. 내가 믿었던 첫 번째 직선이 삐뚤어지는 순간이었다.
삶의 모퉁이마다 내가 세워둔 이정표는 번번이 꺾였고, 잉크로 꾹꾹 눌러쓴 계획표는 얼룩지기 일쑤였다. 불청객들은 예고도 없이 문을 두드렸다. 온 마음을 주었던 이가 소리 없이 등을 돌려 내 세계 밖으로 걸어 나갔을 때, 나는 멀어지는 뒷모습의 윤곽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상실은 단수로 오지 않고 복수로 찾아왔다. 언제까지고 집안의 가구처럼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줄 줄 알았던 부모님과 아내가 차례로 흙으로 돌아갔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주인을 잃은 숟가락을 가만히 만져보던 적막 속에서, 나는 운명이라는 거대한 가위질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배웠다. 뒤이어 찾아온 육체의 질병은, 내 숨통 하나조차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마지막 선고 같았다. 내가 간절히 바라던 구원들은 대부분 오지 않았다. 밤마다 낯선 천장을 바라보며 던졌던 탄식은 메아리도 없이 방 안을 맴돌았다. 생은 나를 환대하기보다 거절하는 편에 가까웠다.
그러나 원치 않는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받아치며 긴 계절을 통과해 온 지금, 나는 비로소 멈추어 서서 지나온 굽이들을 돌아본다. 그 황량했던 생의 이면에도 무엇인가 남아 있었다.
원하던 대학에 떨어져 가 닿았던 차선의 교정에서, 나는 생각지 못했던 인연들을 만나 또 다른 생의 문법을 익혔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슬픔의 밑바닥까지 추락했던 그 골짜기에서, 역설적이게도 나는 타인의 고통을 오래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얻었다. 내 육체가 무너져 내리던 투병의 시간은 나를 지배하던 오만을 꺾어놓았고, 매일 아침 눈을 떠 창밖의 여명을 바라보는 당연한 일상이 실은 얼마나 경이로운 기적인지를 가르쳐주었다.
만약 모든 것이 내 설계대로, 내 뜻대로만 흘러갔다면 어땠을까. 궤도를 이탈하지 않는 기차처럼 안전했을지는 몰라도, 내 빈약한 상상력 너머에 존재하는 이 웅장한 생의 비밀들을 결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삶이 내 손목을 거칠게 잡아끌어 낯선 길바닥에 팽개칠 때마다, 나는 그곳에서 원하지 않았으나 내게 꼭 필요했던 생의 거친 숨결들을 배웠다.
새벽녘, 집 근처 소래산 자락을 따라 오래 걷는다. 산길은 결코 인간을 위해 평탄한 직선을 내어주지 않는다. 숨이 턱에 차는 자갈길을 지나야 숲이 나오고, 가파른 바위 언덕을 넘어야 비로소 안개가 걷힌다. 산을 오르는 일이 산의 모양을 내 뜻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산이 가진 굴곡을 내 무릎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듯, 인생을 살아내는 일 또한 그러할 것이다.
좌절했고, 아팠고, 자주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 결핍과 흉터들이 모여 비로소 나라는 고유한 무늬를 완성했다. 뜻대로 되지 않았기에 나는 매 순간 생이 던지는 뜻밖의 질문에 응전해야 했고, 그 불확실성의 한복판에서 묵묵히 어른이 되어갔다.
바라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한 생은 아니다. 오히려 그 어긋남 덕분에 나는 정해진 결말이 없는 눈부신 모험을 살 수 있었다. 숱한 거절과 상실로 점철된 지나온 날들을 가만히 쓸어안으며, 이제 나는 어떤 원망도 없이 나직이 읊조릴 수 있다.
원하던 것은 대부분 오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대부분 그럴 것이다.
그것이 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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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행간에 다 담지 못한 더 많은 그림과 소박한 기록들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언제든 편히 들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