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校舍) 동편에는 나무를 켜서 만든 낡은 벤치가 있고, 전선줄을 두껍게 감았던 목재 틀을 엎어놓은 탁자가 놓여 있소. 한때는 서슬 퍼런 구리선들을 온몸으로 감아내며 불을 나르고 빛을 전했을 그 둥근 궤적들이, 이제는 쓰임을 다한 채 거꾸로 누워 먼지를 받아내고 있소.
칠판 앞에서 보낸 서른두 해의 세월 동안, 나 역시 저 전선 틀처럼 무언가를 악착같이 감아쥐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오. 분필 가루를 털어내며 칠판을 지울 때마다 내가 먼저 지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퇴직 후 이 고요한 모퉁이에 앉아 있으니 비로소 지워진 자리마다 돋아나는 낯선 경계들이 눈에 들어오오.
교사 밖으로는 사람의 가슴 높이만 한 철망이 둘러쳐져 있고, 안쪽으로는 내 키의 두 배를 훌쩍 넘는 테니스장의 거대한 울타리가 하늘을 바둑판처럼 가르며 서 있소. 나는 시방 이 은퇴한 사물들의 영토에 가만히 앉아 있소.
담장 밖에서는 이름 모를 새들이 조잘조잘 무슨 말인가를 바쁘게 지껄이오. 저들의 언어는 격자무늬에 걸리지 않고 허공으로 흩어지는데, 안에서 보면 안이요 밖에서 보면 밖인 이 기묘한 경계 위에서 문득 혼란이 찾아오오.
새가 저 철망에 갇힌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이 거대한 격자 안에 갇힌 것인지.
도무지 헷갈리오.
그러나 이 혼란 끝에서 마주하는 사실은 서늘하오. 어쨌든 나는 내 안에 갇혀 있는 것이 분명하오.
소래산 자락 아래 대야동의 새벽길을 수없이 걸어본 내 경험으로는, 내 육신을 가둔 것은 학교의 울타리가 아니라 내 안에 내가 만든 철망이었소. 이순(耳順)에 이른 지금 돌아보아도, 내 안에는 불혹(不惑)의 나이부터 엮어온 촘촘한 철망이 여전히 남아 있소.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유혹에 빠지지 않고 의연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도리어 미혹(迷惑)의 가시를 키워냈던 것이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세운 울타리는 어느새 나를 가두는 창살이 되었고, 나를 지키려던 방어의 벽은 결국 나를 유폐하는 감옥이 되었소.
매미가 한 철을 온 힘으로 울어내듯, 하루살이가 단 하루를 영원처럼 태우며 살아가듯, 나 역시 매 순간의 밀도를 온몸으로 느끼며 살고 싶었소. 떨어지는 빗방울의 서늘함에 전율하고, 마주하는 이들의 숨결 속에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소.
그러나 잘 되지 않소.
슬픔이 밀려와 목놓아 울어도 그 눈물은 내 안의 격자에 걸려 찢어지고, 기쁨이 넘쳐 크게 웃어도 그 소리는 차가운 가시에 부딪혀 메마른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오.
내가 쳐 놓은 울타리는 내가 치워야 마땅하오. 하지만 일생을 바쳐 엮어온 번뇌의 철망을 스스로 걷어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오. 그 생각 앞에서 나는 종종 깊은 무력감에 빠지곤 하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아침을 기다리오.
새벽의 어둠을 찢고 솟아오르는 눈부신 태양. 그 태양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오는 빛줄기를 두 손으로 가만히 그러쥐고 싶소. 그리고 그 순수한 빛으로 내 안의 검고 단단한 철망이 녹아내리는 광경을 보고 싶소.
오랫동안 나를 옭아맸던 자기 검열의 잔재들이 섬광을 일으키며 부서져 내릴 때, 나는 그 부스러기들을 껄껄 웃으며 밟고 지나가고 싶소.
그제야 나는 내 안에서 터져 나오는 진짜 웃음소리를 듣게 될 것이오. 체면과 격식 속에 가두어 두었던 깊은 울음소리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 것이오.
그리하여 나라는 좁은 고립을 벗어나 모두가 함께 울고 웃는 이 세상의 다채로운 소리들을 아무런 차단막 없이 내 영혼의 안마당으로 들여놓고 싶소.
철망이 부서진 자리에는 비로소 사소한 것들의 경이가 돋아날 것이오.
아침에 잠이 깨어 이슬을 털어내며 기지개를 켜는 작은 꽃들의 숨소리. 귀를 기울여야만 겨우 닿을 수 있는 미세한 생명의 박동. 거대한 성취와 명예를 좇는 동안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오.
내 안의 가시 철망을 모두 밟아 뭉개고 난 뒤, 나는 저 담장 너머의 새들을 향해,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해 담담하게 읊조리고 싶소.
삶은 얼마나 사소한 것이냐고.
이 고백은 삶에 대한 냉소가 아니오.
오히려 그 반대요.
진짜 삶은 거대한 성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선 틀 위에 내려앉은 햇살 한 조각과 새들의 조잘거림 같은 사소함 속에 조용히 깃들어 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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