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 교사로 일하던 시절, 대부분의 날이 그랬다. 시곗바늘이 밤 10시를 넘어가면 지하철 막차의 창밖은 빠르게 어둠 속으로 지워진다. 가방 속에 든 두꺼운 교재들과 낮 동안 교무실에서 부장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수정하고 또 수정했던 서류들의 무게가 유독 무겁게 발목을 잡는다. 모든 것이 서툴고 모든 행동에 바카라임이 따르는 초임 교사로서, 학교라는 거대한 조직의 속도에 발을 맞추느라 진이 빠진 채 나는 늦은 밤 외딴 옥탑방 문 앞에 선다.
문을 열면 반겨주는 이 없는 빈 집의 서늘한 적막이 가장 먼저 마중을 나온다. 불을 켜기 전, 그 짧은 흑암 속에서 길고 무거운 숨이 흘러나온다. 비로소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는 안도감이 사방의 얇은 벽을 타고 고요하게 내려앉는다. 낮의 세상이 처음 서는 교단 위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고 긴장해야 하는 전쟁터였다면, 이 작은 자취방은 온전히 나를 숨겨주는 유일한 방공호다.
사실 저녁은 분식집에서 김밥으로 대충 때웠다. 그러나 온종일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기계적으로 삼킨 밥은 영양분이 되지 못하고 허공으로 날아간 듯하다. 긴장의 끈이 풀리자마자 무서운 피곤과 함께 기묘한 허기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소형 컴프레셔가 돌아가는 소리 사이로 백색의 냉기만 흘러나온다. 밥솥의 전원을 켜고 밥을 새로 지어 제대로 된 식사를 차리기에는, 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체력이 남아있지 않다. 나는 냉장고 문을 닫고 찬장을 연다. 그곳에는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를 기다려주는 붉은색 포장지의 라면 한 봉지가 있다. 가장 고독하고 지친 밤, 이 흔한 인스턴트식품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다정한 동반자가 된다.
양은냄비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 불을 켠다. 물이 끓어오를 때 수프와 면을 넣고, 냉장고 구석에 남은 대파 몇 토막과 계란 하나를 거칠게 깨 넣는다. 매콤하고 짭짤한 냄새가 좁은 주방 가득 번져나가기 시작한다. 냄비 속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피어오르는 하얀 김은, 얼굴에 닿는 순간 낮 동안 굳어있던 미간의 주름을 부드럽게 펴준다.
식탁 위에 해진 냄비 받침대를 놓고, 플라스틱 통에 담긴 김치를 꺼낸다. 지난 주말 엄마가 택배 대신 지친 자식의 얼굴을 보겠다며 직접 들고 온 김치다. 노란 냄비 뚜껑 위에 꼬들꼬들한 면발을 덜어내고, 그 위에 새콤하게 익은 김치 한 조각을 얹어 입안 가득 밀어 넣는다.
탄수화물의 포만감 너머로 찌릿한 김치 맛이 혀끝을 돌 때, 문득 익숙한 집 냄새가 훅 끼쳐온다. 몇 달째 내려가지 못한 고향 집 식탁, 늘 시끄럽게 달그락거리던 가족들의 수저 소리가 옥탑방의 적막 위로 겹쳐 흐른다. 이 묵직한 김치통을 전해주려 늙은 어머니는 굽은 등으로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며 이 멀고 낯선 도시까지 오셨을까. 자식 굶을까 염려해 손목이 시리도록 꾹꾹 눌러 담았을 엄마의 마음이 서늘하던 입안을 뜨겁게 채운다. 식탁 한구석에 굴러다니던 화려한 전단지 속 음식 사진들이 잠시 떠올랐지만, 지금 내 앞의 양은냄비보다 따뜻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타인의 시선에 맞추느라 굳어 있던 어깨가 뜨끈한 국물과 함께 조금씩 풀려 내렸다.
남은 붉은 국물을 바라본다. 내일 아침 출근길, 거울 앞에 설 푸석푸석하고 퉁퉁 부은 얼굴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남은 국물까지 천천히 비워낸다. 내일 아침 거울 속 부은 얼굴을 마주하더라도, 오늘 밤 이 식탁에서 얻은 따뜻함만큼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을 것이다.
설거지를 위해 냄비를 싱크대에 담그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대부분의 날이 그랬듯 내일도 여전히 지치고 피곤한 학교의 하루가 반복되겠지만, 내 찬장 속에는 언제나 나를 기다려줄 라면 한 봉지가 있었고 냉장고에는 엄마의 김치가 남아 있었다.
주황빛 전등 아래, 식탁 한구석의 김치통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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