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구두끈을 맨다

by선비천사

알람 소리가 울리지 않아도 눈이 떠지는 새벽은 가혹하다. 수십 년간 몸에 새겨진 시간의 습관이 너무 깊어, 더는 갈 곳이 없는 은퇴의 아침에도 몸은 기어이 어둠 속에서 깨어나고야 만다. 거실로 걸어 나오는 발소리가 무덤처럼 고요한 집안에 무겁게 떨어진다. 베란다 창문 너머로 희뿌옇게 밝아오는 도시의 외곽은 언제나 가파르고 쓸쓸하다.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사방이 벽으로 막힌 아파트 골방에 갇힌 채, 나는 매일 아침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손을 가만두지 못한다. 인생의 정점을 지나면 평온이라는 보상이 기다릴 줄 알았으나, 막상 도착한 곳은 웅덩이처럼 고여 썩어가는 지독한 권태와 외로움뿐이었다. 젊은 날에는 생존과 성취라는 거대한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살았다. 그 무거운 의무의 방전 상태에서 벗어나면 삶이 가벼워질 줄 알았으나, 현실은 가차 없었다. 한 시절의 마침표를 찍은 그날, 내 삶의 바위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산기슭 바닥으로 사정없이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 내 앞에는 노년이라는 이름의, 이전보다 더 거칠고 황량한 산이 새로이 솟아 있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삶의 영토가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쇠락하는 내 몸뚱이 하나로 좁혀지는 과정이다. 요즘 내 하루의 서사는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노란 약봉지를 뜯는 손끝에서 시작된다. 매일 아침 삼켜야 하는 당뇨약 두 알과 갈색의 비타민 몇 알이 차례로 목구멍을 넘어갈 때마다, 육체가 안으로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예전에는 딛고 서 있는 대지의 견고함만 믿고 살았는데, 이제는 건강검진표의 숫자들과 무릎 관절의 시큼한 통증이 날씨의 변화를 먼저 고발한다. 낡아가는 육체가 매일같이 고통의 청구서를 들이미는 사이, 빈곤의 추레한 냄새가 옷깃에 은연중에 스며든다. 마트에 가 식료품 하나를 집어 들 때도 가격표의 숫자를 두세 번 곱씹게 되고, 얄팍해진 지갑을 만지작거리는 횟수가 늘어난다. 통장 잔고의 소멸 속도는 늙어가는 생의 속도보다 잔인하게 빠르다. 지인들의 부고나 경조사 소식을 들을 때, 슬픔보다 축의금의 액수를 먼저 셈하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내려앉는다. 석가가 말한 고해는 먼 피안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약봉지를 털어 넣고 몇 푼의 돈 앞에서 망설이는 이 구질구질한 일상 자체가 이미 늪이었다.


그러나 진짜 비참한 것은 외적인 결핍이 아니라, 내 안에서 여전히 붉게 펄떡이는 잔존하는 욕망들이다. 몸은 낡고 지갑은 비어 가는데, 정신은 아직도 젊은 날의 뜨거움과 명예,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허영을 악착같이 버리지 못한다. 이 이룰 수 없는 욕망이 늙어버린 육체와 충돌할 때마다 깊은 자괴감과 혐오가 밀려온다.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을 품고 서성이는 늙은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추한가. 이 나이에도 번뜩이는 눈먼 욕망의 바위를 붙잡고 낑낑대는 내 모습은 영락없이 신들의 저주를 받은 시지프스의 현신이다.


60을 넘기며 세상의 적나라한 바닥을 다 보았다고 자부했으나, 경험이 많아질수록 지혜가 쌓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환멸만 깊어간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마주한 옛 지인들과의 술자리가 그랬다. 찬란했던 한때를 추억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건만, 취기가 오를수록 대화는 누구의 아파트가 더 올랐는지, 누구 자식이 더 그럴듯한 간판을 달았는지 같은 속물적인 계산으로 얼룩졌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눈빛 속에서 미묘한 질시와 허영이 번뜩이는 순간, 나는 문득 숨이 막혔다. 더 불편했던 것은 그 대화의 가장자리에서 나 역시 내 초라함을 감추기 위해 몇 마디 허세를 보태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타인을 향한 냉소는 결국 가장 부끄러운 각도로 내 가슴에 와 박혔다. 경험의 두께가 두꺼워질수록 세상은 아름다운 정원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갉아먹는 거대한 진흙탕 정글로 보일 뿐이었다.


그 지독한 환멸의 끝에서 나를 겨우 붙잡아준 것은 의외로 아주 사소한 풍경이었다. 술자리를 빠져나와 텅 빈 마음으로 돌아오던 길, 아파트 단지 상가 모퉁이의 작은 편의점에 들렀다. 생수 한 병을 계산대에 올려놓는데, 유니폼을 입은 젊은 아르바이트생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내게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 "안녕히 가세요"라는, 매일 수백 번은 반복했을 그 기계적인 인사 한마디가 이상하게도 그날 밤엔 차가운 이마에 닿는 미지근한 손길 같았다. 이 밤중에 누군가는 여전히 자신의 생존이라는 바위를 묵묵히 밀어 올리고 있다는 동질감이었을까. 집으로 돌아와 싱크대 앞에 서서 차가운 생수를 마시는데, 베란다 틈새로 흘러든 밤바람에서 미세한 흙 내음이 났다. 세상이 아무리 진흙탕이어도, 생은 그 안에서 어떻게든 흘러가고 있었다.


현관문에 덩그러니 놓인 내 구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한때는 매일 아침 반짝이게 닦여 내 발걸음을 당당하게 지탱해 주던 구두였으나, 이제는 뒤축이 닳아 비뚤어지고 가죽 곳곳에 주름이 깊게 패어 있었다. 거울 속 내 얼굴을 빼다 박은 그 낡은 구두를 신고, 갈 곳이 없어도 나는 다시 집을 나선다. 발목을 잡는 권태와 외로움, 무릎을 꺾는 질병과 빈곤의 위협, 그리고 여전히 눈을 어지럽히는 추한 욕망들까지, 내 앞에 놓인 바위는 이전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이끼 낀 돌덩이다.


그러나 나는 주저앉아 우는 것으로 삶의 비극을 완성해주지 않을 것이다. 시지프스의 위대함은 바위를 산 정상에 올려놓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바위가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다시 바위를 향해 걸어 내려가던 그 무뚝뚝한 발걸음에 있었다. 나는 비뚤어진 구두 뒤축에 힘을 주며 다시 바위 밑으로 어깨를 들이민다.


내일이면 바위는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아침이 오면 다시 구두끈을 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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