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벤치 위에 눅눅하게 눌어붙어 있다
더위와 고독의 외피를 털어내며 당도한 곳,
오래전 포성이 멎은 인천상륙작전 기념관 뒷동산엔
완강한 소나무들만 그늘을 뻗고 있다
생의 한가운데서 삼십여 년, 무언가를 부단히 버티다
내가 먼저 흐려져 버린 사내 하나
그 낡은 그늘의 끝자락에 겨우 걸터앉는다
그때 서늘한 청각 하나가 살갗을 긋고 지나간다
쓰르라미 울음의 가늘고
팽팽한 결을 타고 형체 없는 네가 온다
네가 스치자
몸통에 들러붙어 있던 하루의 먼지들이 흩어진다
말하지 않아도 너는 이미 받아 적고 있다
내 안에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해 눅눅해진 것들을,
끝내 안으로 삼켜야 했던 것들을.
너는 그저 내 젖은 귓바퀴를 조용히 감싸 안으며
길고 부드러운 숨을 내쉬어줄 뿐이다
그 비어 있는 한숨의 여백이 내게는 은밀한 밀어(密語)다
이 이질적인 서늘함이
무감각해지던 살구색 피부를 통과할 때,
비로소 잠들었던 감각들이 아프게 깨어난다
아픔은, 내가 아직 소멸하지 않았다는 아찔한 증거.
너와 나, 단둘이서만 건너는
이 초록의 깊은 적막 속에서
움켜쥐려는 손가락 사이로 너는 사정없이 빠져나간다
박제된 전리품처럼 너를 소유하려는 자들은 알지 못하리라
가두지 않으니
내 텅 빈 손바닥이 전부 네 영토가 된다
온통 주었으므로
나는 한없이 가벼워진다
식어가는 벤치 위로
쓰르라미 울음소리가 푸른 멍처럼
더 깊이 번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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