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아버지가 깨워서 먹인 귤 한쪽

by선비천사

인생은 어쩌면 혀끝에 새겨진 허기의 지도를 따라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태어나서 먹고, 죽어서도 대접받으며, 사랑하는 이를 마주해서는 기꺼이 식구가 된다. 오늘날 우리의 식탁은 풍요롭지만, 그 화려한 차림새 사이를 유령처럼 배회하는 갈증이 있다. 아무리 비싼 값을 치러도 복원할 수 없는 온도, 이제는 전설처럼 남아버린 어머니와 할머니의 투박한 손맛에 대한 근원적인 그리움이다. 결핍이 귀했던 시절, 내 유년의 혀끝을 적셨던 세 장면은 단순한 미각의 기록을 넘어 내 생을 지탱해 온 정서의 골조들이다.


첫 번째 기억은 깊은 밤의 정적을 가르고 찾아온 주황빛 온기다. 네댓 살 무렵이었을까. 아버지는 내게 늘 차갑게 기울어 있는 초승달 같은 존재였다. 삶의 무게가 버거웠던 탓인지 당신은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았고, 나는 그 서늘한 거리감 주위를 맴돌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깊은 밤, 잠결에 나를 흔들어 깨운 아버지의 손등에선 시린 밤공기 냄새가 났다. 아버지는 외출복 주머니에서 난생처음 보는 기이한 열매 하나를 꺼내셨다. 귤이었다.


투박한 손끝에서 귤껍질이 벗겨질 때마다, 방 안에는 시큼하고 싱그러운 향이 번졌다. 아버지는 귤 한쪽을 떼어 내 입에 밀어 넣어 주셨다. 입안에서 툭 터지는 과즙은 경이로웠다. 나는 그 모양이 제사상에서나 보던 옥춘당 사탕을 닮았다고 생각하며 아껴서 씹었다. 귤 한쪽이 주는 황홀경 속에서, 나는 비로소 아버지라는 완고한 세계에 닿을 수 있는 작은 틈 하나를 발견했다. 힘들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이 그 주황색 과즙 한 방울에 씻겨 내려가던, 내 생애 가장 고요하고도 풍요로웠던 성찬이었다.


일곱 살의 기억은 읍내로 향하던 긴 길 위에 먼지처럼 내려앉아 있다. 아버지가 하시던 이발소를 맡게 된 젊은 사내가 있었다. 스스로를 ‘가수’라 칭하며 번쩍이는 명함을 내밀던 그 이방인은 어린 나를 유독 아꼈다. 그는 내 이름을 유난히 또박또박 불러주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는 내 손을 잡고 읍내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이의 보폭으로는 장장 두 시간이 걸리는 먼 길이었으나, 가수의 꿈을 노래하던 사내의 경쾌한 보폭에 이끌려 나는 지칠 줄 몰랐다.


시장통의 소란함 속에서 마주한 짜장면은 처음 겪는 충격 같은 맛이었다. 까만 소스 아래 숨겨진 면발을 끌어올릴 때마다 고소한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입가에 검은 칠을 해가며 탐닉했던 그 맛은 낯선 타인에게서 건네받은 조건 없는 다정함의 맛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낯선 세상이 무섭기만 한 곳은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어렴풋이 깨달았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무명 가수가 내게 사준 것은 허기를 채울 밀가루 한 그릇이 아니라, 바깥세상을 향한 설레는 초대장이었다.


마지막 기억은 중학생 시절, 시끌벅적한 터미널의 공기 속에 박혀 있다. 나무 막대기에 얼린 '아이스케키'의 거친 식감에 익숙했던 내게, '브라보콘'은 전혀 다른 세계의 맛이었다. 혀 위에서 부드럽게 무너지는 크림의 질감, 그리고 마지막에 씹히는 바삭한 과자의 변주. 나는 정말로 혀를 삼킬지도 모른다는 공포 섞인 경외감을 느끼며 그 달콤함을 탐닉했다.


그때는 참 행복한 시절이었다. 아직 내가 먹어보지 못한 세상이 저 너머에 가득했고, 다음에 올 '맛'을 기다리는 설렘만으로도 심장은 뜨겁게 뛰었다. 하지만 이제 인생의 저녁노을 아래 서니, 더 이상 처음처럼 나를 놀라게 할 맛이 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미슐랭의 별을 딴 식당도, 진귀한 산해진미도 유년의 귤 한쪽이 주던 그 압도적인 생경함을 이기지 못한다.


결국 수필은, 돌아갈 수 없는 것들을 향해 뒤늦게 건네는 말인지도 모른다. 음식이 넘쳐날수록 추억의 음식은 더욱 간절한 갈증으로 우리를 깨운다. 그것은 맛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맛을 공유했던 시간과 사람들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기 때문이다. 귤 한쪽에서 아버지의 미소를 보고, 짜장면 한 그릇에서 유년의 골목길을 떠올리며, 아이스크림 콘 하나에서 성장의 설렘을 되새긴다.


내 인생의 가장 맛있던 순간들은 비싼 영수증 뒤에 숨어 있지 않았다. 그것은 아버지의 주머니 속, 청년의 친절, 터미널의 소란함 속에 소박하게 깃들어 있었다. 이제는 전설처럼 남아버린 어머니의 손맛이지만, 내 혀끝에 각인된 그 세 가지 맛의 조각들은 여전히 영혼의 허기를 달래주는 양식으로 남아 있다. 오늘도 나는 식탁 앞에 앉아, 내 마음의 서랍 속에 저장된 가장 오래된 미각 하나를 꺼내 천천히 곱씹어 본다. 그것만으로도 남은 생을 건너가기에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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