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착한 선생을 죽였다

- 안정이라는 감옥을 벗어나는 순간

by선비천사

시흥 대야동의 새벽은 중장비들이 내뱉는 금속성 비명으로 문을 연다.
창을 타고 넘어온 기계음은 거실 벽 시곗바늘의 회전과 뒤엉켜, 집 안을 무거운 정적으로 눌러앉힌다.


30년 넘게 몸을 길들여온 이 견고한 질서.

그 익숙함은 때때로 소화되지 않는 덩어리처럼 명치를 짓누른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는 안도감.
그러나 그 안도감은, 내가 그 사물들 중 하나로 고정되어 간다는 기묘한 공포를 동반한다.


나는 그동안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묶어두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으냐고.
평온한 일상과 안정된 노후를 가졌는데 무엇을 더 바라느냐고.


그 말들은 틀리지 않다.
다만, 지나치게 친절하다.


그 친절은 ‘긍정’이라는 이름의 마취제가 되어,
내 감각을 서서히 무디게 만든다.


타인의 기준으로 편집된 삶.
우리는 그 이야기 속에서 시간을 저당 잡힌 채 살아간다.
숫자 몇 개에 인생을 맡기고, ‘왕대박’이라는 신기루를 좇는다.


정해진 궤도를 도는 태양 아래에서,
우리는 신문지 위에 눌린 벌레처럼 움직이지 못한 채 놓여 있을 뿐이다.


어느 날 문득,
내 심장이 시계 소리에 맞춰 기계적으로 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였다.
내 안의 ‘천사’가 낯선 얼굴로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 것은.


그 천사는 나를 안락한 소파로 이끌지 않았다.
오히려 내 안의 가려움을 더 키우며, 밖으로 나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나는 처음으로, 내 안의 주인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오르던 소래산의 잘 닦인 등산로를 버렸다.
대신 가시덤불이 우거진 사면으로 발을 들였다.


아주 사소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사소함은, 나에게 치명적인 반역이 되었다.


숲은 나를 환영하지 않았다.
무성한 가지들이 옷자락을 붙잡고,
낯선 나뭇가지들이 종아리에 선명한 핏자국을 남겼다.


아팠다.
그러나 그 통증은 배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최초의 증거였다.


관습 속에서 느끼던 둔탁한 불편함이 아니라,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며 터뜨리는 생의 신호였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편안함은 언제든 나를 죽일 수 있지만,
고통은 나를 깨운다는 것을.


글을 쓰는 일도 다르지 않았다.


30년 넘게 정답과 오답을 가르치던 사람이
모호한 문장의 숲을 헤매는 일.


그건 거의 자발적인 조난에 가까웠다.


하얀 화면 앞에서 밤을 지새우며
단어 하나를 고르는 고독.


그 고통은 충치보다 깊고, 오래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 하나가 내 폐부를 정확히 찌르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나는 숨을 쉰다.


그것은 단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던 공기다.
낯설고, 거칠지만, 분명히 살아 있는 공기다.


나는 더 이상 거창한 혁명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나를 가두고 있던 울타리를 넘기로 했다.
긍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감옥을 벗어나기로 했다.


고통을 선택할 자유.
나는 그것을 처음으로 손에 쥐었다.


이제 나는 막연한 행운보다,
매일 아침 거울 속의 낯선 나를 마주하는 일을 택한다.


시곗바늘이 제자리를 맴돌 때,
나는 그 중심축을 조용히 비틀어본다.


세상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돌아갈 것이다.
태양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떠오르고,
사람들은 무심한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더 이상 그 흐름 속에 나를 방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수많은 시선이 내 등을 향해 날아온다 해도,
나는 그 화살을 피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가시덤불 너머의 문장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궤도를 벗어난 별만이
자신의 빛을 남기듯,


나 역시 낡은 관습을 벗고
비로소 살아간다.


이 아픔이,
낯설도록 싱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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