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이라는 신 바벨탑, 그리고 나의 돋보기

by선비천사

이 유리알은 이제 내 신체의 일부이자, 세상을 읽는 유일한 통행증이다. 노트북 화면 속 글자들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수면 위로 번지는 먹물처럼 흐릿해진다. 안경다리를 추스르며 초점을 맞추다 보면, 뒷목을 타고 올라오는 뻐근한 통증이 서늘한 경고를 보낸다. 문장들이 시야에서 멀어질 때마다 나는 상실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실감한다.


마음속엔 여전히 하고 싶은 일들이 태산같이 쌓여 있는데, 몸은 자꾸만 육중한 닻을 내리려 한다. 젊은 날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이제는 간절한 소망이 되었고, 노화라는 불청객은 내가 꿈꾸던 미래의 목록들을 하나둘씩 소리 없이 지워나가고 있다. 그 아쉬움의 끝자락에서 나는 문득 거대한 공포에 휩싸인다. 만약 어느 날 갑자기 내 눈이 문장의 길을 잃어버린다면, 그때의 나는 무엇으로 증명될 것인가.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세포의 퇴각 앞에서 나는 무력하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무뎌질 때마다 나는 캄캄한 심연 앞에 선다.


이 절박한 공포는 나를 자연스럽게 ‘역노화’와 ‘줄기세포’라는 현대적 신화 곁으로 이끌었다. 세포의 태엽을 거꾸로 돌리는 기술은 나 같은 노병(老兵)들에게 다시 전장에 나갈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갑옷처럼 다가왔다. 죽음을 정복하겠다는 그 선언은 내 무릎의 통증을 지워줄 구원처럼 들렸다. 나는 그들이 쌓아 올리는 ‘신 바벨탑’에 기꺼이 내 간절함을 벽돌로 보태고 싶었다.


하지만 돋보기를 벗고 잠시 눈을 감으면, 마음 한구석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정말로 시간의 화살을 꺾어버린 무결한 육신을 원하는가.


내 글에 온기를 불어넣었던 것은 ‘영원’이 아니라 ‘한계’였다. 죽음이라는 종지부가 있기에 나의 문장은 비로소 간절해진다. 소멸이 예정되어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의 햇살이 이토록 시리게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돋보기를 써야만 보이는 작은 글자들은, 내가 아직 살아있으며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다는 가장 뜨거운 증거다.


인간이 쌓아 올리는 그 탑은 어쩌면 신에 대한 오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단 한 줄의 시를 더 쓰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를 조금 더 선명하게 담고 싶은, 인간만이 가진 슬픈 저항이다.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기술이라는 외피를 입었을 뿐이다.


나는 다시 돋보기를 고쳐 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흐릿한 세상이 나를 기다릴지라도, 유리알 너머로 문장을 밀어 올리는 행위 자체가 내가 쌓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바벨임을 믿는다. 역노화라는 기적이 당도하기 전이라도, 나는 이 유한한 육신이 허락하는 마지막 점 하나까지 기꺼이 늙어가며 찍어 누를 것이다.


지는 노을이 찬란한 것은 오늘의 그 빛깔이 오직 지금뿐이기 때문이다. 내 삶의 마지막 문장들도 그러하기를 소망한다. 유예된 죽음보다 아름다운 것은, 소멸을 앞두고도 멈추지 않고 써 내려가려는 의지다.


오늘 밤, 내 돋보기 너머의 글자들이 유난히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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