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의 숲에서 생화로 산다는 것

by선비천사

서랍 깊숙한 곳에서, 전설 속 유물처럼 잠들어 있던 '벽돌폰' 하나를 꺼낸다. 1990년대의 공기를 머금은 이 투박한 플라스틱 덩어리는 손목이 묵직할 정도의 무게감을 과시한다. 당시 이 무전기 같은 물건을 손에 쥔 이들은 거리의 주인공이었다. 안테나를 길게 뽑아 허공을 찌르던 그들의 몸짓은 문명의 첨단을 지휘하는 지휘봉 같았다. 그 시절 우리는 그 둔중한 기계가 세상의 모든 거리감을 지워줄 구원자라 믿었다.


세월은 그 벽돌을 깎고 다듬어 한 손에 쥐어지는 매끄러운 물건으로 축소시켰고, 이제 기술은 기기를 넘어 인간의 가죽과 눈동자를 탐내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 그들은 이제 막 벽돌폰이 걸어왔던 그 서툰 첫발을 떼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그들의 기계적인 관절 꺾임에 실소를 터뜨리지만, 나는 그 속에서 이미 시작된 가속된 변화를 본다. 영화 알리타처럼 금속의 심장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인간의 외로움을 복제한 존재들이 우리 곁을 점유할 날도 머지않았다.


문득 시선을 돌려 바카라상 위 두 다발의 꽃을 본다. 한쪽은 먼지 한 점 허용치 않는 선명한 색감의 조화(造花)이고, 다른 한쪽은 며칠 전 누군가의 손에 들려온, 갈색으로 스러져 가며 비릿한 기운을 남기는 생화(生花)다.


조화는 친절하다. 영원히 시들지 않을 미소로 나를 안심시킨다. 그러나 그 완벽한 꽃잎을 만져보는 순간, 기묘한 서늘함이 손끝을 타고 흐른다. 거기엔 '시간'이 없다. 어제와 오늘이 같고, 내일도 변함없을 그 무결함은 죽음조차 허락되지 않은 박제의 고요다. 고장 난 로봇은 조용히 멈출 뿐이다. 그 어떤 떨림도, 망설임도 없이. 상처 입지 않는 존재가 타인의 상처를 읽어낼 리 만무하다.


반면, 고개를 떨구기 시작한 생화는 지금 온몸으로 소리를 내고 있다. 손끝을 가져다 대니 수분을 잃어가는 꽃잎이 바스락하며 미세한 비명을 지른다. 그 바스락 거림. 그것은 소멸을 앞둔 생명이 내뱉는 최후의 문장이다. 나는 그 향기와 거친 질감 앞에서 비로소 경건해진다. 인간의 가치는 바로 이 '바스락 거림'에 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수많은 얼굴을 마주하며 깨달은 것은, 누군가의 웃음이 그토록 찬란했던 이유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찰나의 진심'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로봇이 인간의 사랑을 모사할 수는 있겠지만, 제 삶이 단 한 번뿐이라는 절박함에서 오는 그 처절한 헌신까지 복제할 수는 없다. 죽음이 있기에 삶은 비로소 완성되는 예술이 된다.


벽돌폰을 쥐고 세상을 다 가진 듯 우쭐했던 청년은 이제 돋보기를 쓰고 로봇의 도래를 응시하는 노인이 되었다. 무릎 관절은 닳아 가고 기억의 갈피는 가끔 엉키지만, 나는 이 '낡아감'을 축복이라 부르고 싶다. 조화의 영생보다는 생화의 고단한 몰락이 훨씬 인간답다. 상처 입고 흔들리며 끝내 흙으로 돌아가는 이 비루한 생명력이야말로, 그 어떤 첨단 지능도 범접할 수 없는 인간만의 존엄이기 때문이다.


창밖의 노을이 붉게 타오르다 이내 어둠 속으로 몸을 섞는다.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로봇의 시대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더욱 간절하게 시드는 것들을 껴안아야 한다.


나는 오늘, 조화의 숲을 지나 바스락거리는 나의 유한한 생을 깊이 사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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