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옹이 진 나무처럼 불완전한 우리가 서로의 곁이 되는 법
거실 한복판에 놓인 느티나무 탁자를 닦는 일로 아침을 연다. 마른걸레가 나무의 결을 따라 미끄러지다 유독 한 지점에서 둔탁하게 걸린다. 옹이다. 주변의 유려한 나뭇결을 제 방향으로 휘감아버린, 단단하고 검붉은 시간의 퇴적물. 젊은 날의 내 눈에 그것은 매끄러운 평면을 방해하는 '결함'이었으나, 생의 고개를 몇 번 넘긴 지금의 내게는 그것이 나무가 밀어 올린 가장 뜨거운 '문장'으로 읽힌다.
나무는 성장의 통증을 옹이로 기록한다. 가지가 꺾이거나 폭풍에 살점이 뜯겨 나간 자리, 나무는 비명 대신 진액을 쏟아 그 상처를 감싸 안는다. 그렇게 안으로 안으로 말아 넣은 아픔이 세월과 버무려져 단단한 근육이 된 것이 바로 옹이다. 사랑 또한 다르지 않다. 우리가 꿈꾸는 사랑은 흔히 티 없이 맑은 수면 같지만, 진실로 깊은 사랑은 수많은 옹이를 품은 고목의 몸통을 닮아 있다.
사랑의 시작은 서로의 빛나는 완벽함에 매료되는 순간일지 모르나, 그 사랑이 뿌리내리는 지점은 서로의 지독한 허기를 목격하고도 눈을 돌리지 않는 찰나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채 아물지 않은 옹이 하나씩을 품고 산다. 유년의 지독한 가난, 실패의 쓰라린 기억, 혹은 스스로도 용서치 못하는 비겁함 같은 것들이다. 완벽을 갈구하는 이는 상대의 그 거친 마디를 깎아내려 애쓰지만, 사랑을 아는 이는 그 옹이 주변으로 흐르는 뒤틀린 나뭇결을 가만히 응시한다. 그 굽이진 물결이야말로 상대가 생의 풍파를 견뎌내며 빚어낸 고유한 무늬임을 알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누군가를 가장 깊이 사랑했던 순간은 그의 유능함에 감탄할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단단한 자부심 너머로 슬쩍 비친 초라한 뒷모습을 보았을 때, 그 결핍의 틈새로 나의 온기가 스며들 자리가 있음을 깨달았을 때였다. 불완전함은 밀어내야 할 오답이 아니라, 타인의 영혼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도록 내어준 유일한 '빈자리'였다. 내가 완벽했다면 당신이 머물 곳이 없었을 것이고, 당신이 매끄럽기만 했다면 나의 서툰 손길은 갈 곳을 잃었을 것이다.
수필은 인생의 여백을 문장으로 메우는 작업이라 하지만, 사랑은 서로의 여백을 그대로 두는 인내에 가깝다. 상대의 부족함을 나의 유능함으로 채우려 드는 오만을 버리고, 그 불완전함 자체를 하나의 '존재 방식'으로 인정하는 것. "당신은 왜 그 모양이냐"는 원망이 "당신이 그런 아픔을 통과해 왔기에 지금의 빛이 있구나"라는 경외로 바뀔 때, 우리의 관계는 비로소 종교가 된다.
탁자 위 옹이에 손을 얹어본다. 죽어서 박제된 목재인 줄 알았는데,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질감이 의외로 따스하다.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낸 나무만이 가질 수 있는 숭고한 온도다.
세상은 여전히 매끈한 대리석 같은 완벽을 권하지만, 나는 여전히 옹이 진 나무 곁이 좋다. 틈이 있어야 빛이 들고, 굽은 곳이 있어야 기댈 수 있으며, 부서진 조각들이 맞물려야 비로소 떨어지지 않는 법이다. 불완전한 당신과 내가 만나 서로의 옹이를 맞대고 서 있는 이 풍경. 이보다 더 지극한 도달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는가. 오늘 밤은 옹이가 그려낸 구불구불한 문장들을 하나하나 소리 내어 읽어보고 싶다. 그것이 곧 우리가 살아낸 사랑의 기록일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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