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의 걸음걸이가 유독 위태로워 보이는 오후다. 뒤뚱거리는 몸집을 지탱하느라 땅바닥에 바짝 붙은 그들의 시선은 언제나 떨어진 사료와 진흙탕에 고정되어 있다. 한때 그들의 조상도 구름 위를 가로지르던 기러기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저 둔탁한 날개는 비행의 도구가 아니라 잊어야 할 과거의 흔적처럼 보여 서글프다. 문득 베란다 창에 비친 내 실루엣을 본다. 거위 한 마리가 거기 서 있다.
나의 비행은 붉은 황토산에서 멈췄다. 유년의 그 산은 영양기 없는 흙빛이었지만,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선명한 활주로였다. 그곳엔 비바람을 견디다 못해 아예 옆으로 누워버린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나는 그 나무를 ‘날틀’이라 불렀다. 비스듬한 나무 등걸에 올라타 엉덩이를 붙이면, 거친 소나무 껍질의 촉감이 허벅지를 타고 올라와 온몸을 비행기처럼 떨게 했다.
“가자 가자 독수리, 구름 너머 저 멀리….”
입술이 파래지도록 국적 불명의 가사에 얹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뭇가지를 흔들면, 고향 집 뒷산은 순식간에 안데스산맥이 되고 태평양의 이름 없는 섬이 되었다. 그때의 나는 중력을 몰랐다. 나무 위에서 보았던 하늘은 손바닥에 파란 물감이 묻어날 듯 가까웠고, 상상은 현실의 먼지를 털어내기에 충분할 만큼 견고했다.
그러나 그 날틀에서 내려온 순간부터, 삶은 나를 땅으로만 끌어당겼다.
가장의 몫은 엄중했다. 서른 해 넘게 교단에 서서 아이들에게 세상을 가르쳤지만, 정작 나는 분필 가루가 내려앉은 좁은 시야 속에 갇혀 살았다. 퇴근길 버스 손잡이에 매달린 어깨는 매일 조금씩 아래로 처졌고, 무거운 서류 가방을 든 손목은 땅을 향해 길어졌다. 중력은 가차 없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닻을 지탱하기 위해 나는 기꺼이 등이 굽은 채로 살기로 했다.
사실, 도망치고 싶었던 비 오는 어느 수요일을 기억한다. 월급날이었지만 대출 이자와 아이의 학원비로 통장이 텅 비어버린 날이었다. 젖은 구두 속으로 스며든 빗물이 발가락 사이를 할퀴던 그 밤, 나는 집으로 가는 지하철역 대신 정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종점 근처 어두운 편의점 파라솔 아래서 캔커피 하나를 쥐고 엉엉 울었다. 가장이라는 이름의 족쇄를 풀고 저 빗물과 함께 하수구 속으로라도 숨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비릿한 빗속에서도 내 귀를 때린 것은 어릴 적 그 소나무 위에서의 노랫소리가 아니라, "아빠 언제 와?"라고 묻던 아이의 천진한 목소리였다. 나는 다시 등을 굽히고, 비에 젖어 천근만근이 된 몸을 이끌고 중력의 안방으로 기어 들어갔다.
등이 굽는다는 것은 시선이 발밑으로 떨어진다는 뜻이다. 구두 굽이 닳아가는 속도를 걱정하고, 보도블록의 틈새를 세며 걷는 동안 나의 창공은 사라졌다. 우울은 안개처럼 조용히 찾아와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았고, 어느덧 내 등은 날개가 돋아날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 만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굽은 등에는 날개가 살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이순(耳順)의 문턱에 서서야 깨달았다.
퇴직 후 다시 찾은 고향의 황토산은 낯설었다. 붉은 흙은 무성한 잡풀에 덮여 보이지 않았고, 나의 날틀이었던 소나무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덤불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잃어버린 것은 나무가 아니라, 다시 날아오를 수 있다는 용기였음을 인정해야 했다.
이제 나는 다시 날아보려 한다. 비록 중력에 길들여진 육신은 여전히 무겁고 등은 펴지지 않았지만, 내 손에는 이제 분필 대신 펜이 들려 있다. 원고지의 빈칸은 내가 새로 발견한 황토산이며, 문장 하나하나를 틔우는 일은 잊었던 노래를 다시 입술에 올리는 일이다.
글을 쓰는 동안 나의 굽은 등은 서서히 기지개를 켠다. 문장의 활주로를 달려 허공으로 발을 내디딜 때, 나를 짓누르던 우울은 기류가 되어 내 날개를 받쳐줄 것이다. 나는 법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단지 너무 오래 걷고 있었을 뿐이다.
창밖의 구름이 낮게 흐른다. 저 멀리, 비스듬히 누운 소나무 한 그루가 환영처럼 나를 부른다. 다시 노래할 시간이다. 이번에는 절대로 내려오지 않을 비행을 시작하기 위해, 나는 잉크를 적신 날개를 힘차게 파닥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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