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꼿한 허기: 우리가 믿어온 고결에 대하여

- 지조와 순결, 그 너머의 풍경

by선비천사

소나무는 사시사철 제 색에 갇혀 산다

그 완강한 결벽이 지조라 읽힐 때

칼바람에 문드러진 단풍들이 제 몸을 버리며 떠나고

소나무는 낮게 엎드려 굴욕적인 포복을 한다

세상은 그것을 인내라 부르고

나무는 제 상처 위에 영생이라는 덧칠을 한다

저 오만한 침묵이 실은 갈 곳 없는 자의 연기임을

나는 알 수 없다.


난초는 젖은 입술로 고고함을 연기한다

누군가의 손가락 끝에 제 생을 의탁한 채

화분이라는 비좁은 감옥을 안락이라 믿는 수동성

잠시 주인에게 잊힐 때마다 뿜어내는 저 지독한 향기는

살려달라는 비명인가, 말라가는 뿌리의 마지막 발악인가

제 향기에 스스로 질식해 가는 저 탐미적인 전시를

나는 도무지 알리 없다


대나무는 휘어지는 법을 잊어 스스로 치욕이 된다

오직 수직의 허영만을 우러러 자라나니

밑동부터 툭툭 부러져 나가는 저 마른 잔해들은

차마 눈 감지 못한 위선의 기록들이다

속이 비어있을수록 바람의 울음은 경건해지고

텅 빈 내부를 신념이라 믿으며 버티는 저 가느다란 허기들

그 요란한 속내를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무너진 것들의 냄새만 자욱할 뿐

무엇이 지조였고 무엇이 허상이었는지

저무는 노을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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