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허물 벗는 남자

by선비천사

도마 위에 놓인 흙감자를 깎는다

금속성 칼날이 식물의 생애를 한 꺼풀 밀어낼 때마다

공중으로 말려 올라가는 얇고 투명한 비명들

살기 위해 제 살을 단단하게 가두었던 결계들이

바닥에 짐승의 가죽처럼 파동으로 쌓여간다


구두를 벗는 것은 하루라는 육중한 장갑차에서 하차하는 일

현관에 들어서며 나는 비로소 헐거워진 문장을 입는다

서른두 해, 칠판 앞에 세워두었던 빳빳한 훈육의 깃과

오래 입어 늘어진 직함의 옷가지를 발치에 벗어놓으면

방 안은 금세 비릿한 생살의 냄새로 고인다


아침마다 나는 집이라는 거대한 골조를 벗고

자동차라는 딱딱한 각질 속으로 기어 들어가

어딘가로 전송되는 부속이 된다

유리 빌딩의 입속에서 ‘생존’이라는 날카로운 사포에

내 영혼의 표면을 문지르고 또 문지르는 일

매일 죽은 표피를 만들어내야만 비로소 허락되는 밥상 위에서

나는 늙은 감자처럼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생살을 찢고 붉은 문을 열어젖힌 성자(聖者)는

가죽 대신 피를 흘려 영원이라는 속살을 얻었다지

그가 남긴 핏자국이 성흔(聖痕)이라면

내가 벗어놓은 땀에 전 와이셔츠는 비루한 나의 성화(聖畵)다


내일이면 다시 입어야 할 수치스러운 외피를

잠든 머리맡에 정중히 개어두는 밤

어둠은 껍질 잃은 짐승의 등을 핥아주고

창밖엔 아직 벗겨지지 못한 불빛들이

누군가의 살갗처럼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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