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가을, 밀양
안드레이와 세르게이는 모두 러시아에서 왔다. 한 사람은 돌아갈 곳이 있었고, 한 사람은 없었다.
안드레이는 모스크바에서 일하는 경제학자였다. 전쟁 중에 여행을 왔다는 게 의아했는데, 그는 하는 일 때문에 징집과는 거리가 있다고 했다.
기차역에 나타난 그는 정장 차림은 아니었지만 어딘가 각이 잡혀 있었다. 끌고 온 캐리어마저 예산 심사를 통과한 것처럼 반듯했다. 정치나 전쟁 이야기는 서로 먼저 꺼내지 않았다. 그 대신 밥부터 먹었다.
첫날 저녁은 된장찌개와 나물 몇 가지, 갓 지은 밥이었다. 그의 젓가락은 자꾸 엇갈렸다. 나물은 집다가 놓치고, 밥알은 반쯤 상 위에 떨어졌다. 그래도 그는 숟가락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나는 서랍에서 숟가락을 꺼내려다 도로 넣었다. 저 사람은 젓가락이 이기는 꼴을 꼭 보고야 말 사람이었다.
밥을 먹으며 여행 이야기를 했다. 지도 위의 점이 겹칠 때마다 우리는 소리 내어 웃었다. 다음 날에는 오래된 골목과 강변길, 그리고 그가 꼭 가보고 싶다던 재래시장에 갔다. 그는 건어물 좌판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온 경제학자가 말린 멸치 더미를 사진 찍는 모습은, 어느 나라 경제 지표보다 진지해 보였다.
떠나기 전 마지막 점심, 그는 콩자반을 하나씩 젓가락으로 집어 옮겼다. 첫날 밥알을 흘리던 그 손이 아니었다.
"이제 좀 됐죠?"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스크바에서 젓가락 쓸 일이라야 초밥집에 갈 때 정도일 텐데, 그는 그 며칠 사이 기어이 그걸 해냈다.
그가 떠난 뒤 방을 정리하다가 냉장고 옆에 붙은 메모 한 장을 발견했다. 봉투도 수신인도 없었다.
"당신 집은 보드카 없이도 마음이 뜨거워지는 신기한 곳이에요."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떠나면서 이렇게 무언가를 두고 간다. 러시아 사람에게서 들을 수 있는 칭찬 중에 이보다 큰 게 있을까. 그날 밀양에서, 내 된장찌개가 보드카를 이겼다.
세르게이는 달랐다.
그는 호주에서 공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벌써 3년째였다. 러시아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돌아가면 징집이 기다리고 있고, 학위를 마친다 해도 그 나라가 자기를 순순히 놓아줄 것 같지 않다고.
기차역에서 그를 보자마자 옛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았다. 그도 나중에 같은 말을 남겼다. 동네를 돌며 그는 유학 생활과 논문, 언제 끝날지 모르는 타국살이를 담백하게 말했다. 원망도 비관도 없었다.
그런 그가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는 러시아에 계셨고, 나라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그는 엄마가 무척 보고 싶다고 했다. 논문 이야기도, 징집 이야기도 담담하게 하던 사람이 그 말만은 담담하게 하지 못했다.
나는 맨체스터 병실을 떠올렸다. 마른 토스트 두 조각 앞에서 엄마의 미역국이 그리워 꺽꺽 울던 서른다섯의 나를. 나에게는 그래도 비행기 표 한 장이면 닿는 엄마가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나는 돌아갈 고향이 멀쩡히 있는데도 반년 동안 캐리어를 옷장 앞에 세워두고 망설였다.그는 돌아갈 나라가 있는데도 돌아갈 수 없었다.
같은 '돌아간다'는 말이 누구에게는 망설임이고, 누구에게는 금지였다.
마침 동창회가 있어 그를 데리고 갔다. 칠순을 바라보는 동창들 사이에 앉은 러시아 박사과정생은, 그날 그 방에서 단연 제일 어린 사람이었다. 친구들은 자식뻘 손님을 반갑게 자리에 끼워주었고, 그중 낭근 씨가 그를 특히 마음에 들어 했다. 세르게이는 나와 하루를 보낸 뒤 낭근 씨 집에서 며칠을 더 머물렀다.
그리고 그는 부산에서 곧장 동생을 만나러 떠났다. 동생도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에 살고 있었다. 돌아갈 집은 없어도, 찾아갈 사람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세르게이에게서 소식이 왔다. 박사 학위를 마쳤고, 호주 여권을 받았다고 했다. 사진 속 그는 여권을 손에 들고 웃고 있었다. 밀양의 식탁에서 돌아갈 곳이 없다고 말하던 그 얼굴이 아니었다.
두 사람에게 내가 한 일은 같았다. 그저 밥 한 끼 더 챙기고, 하룻밤 더 편히 묵게 해준 것. 식탁에 앉으면 둘 다 같은 손님이었다.
안드레이의 메모는 지금도 냉장고 옆에 붙어 있다. 세르게이의 여권 사진은 내 휴대폰 사진첩 어딘가에 있다.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나는 그 둘을 함께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