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봄, 부산
선희 씨가 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부산 사상터미널이었다. 고속버스에서 내리는 청년을 아이들이 먼저 알아보고 달려갔다. 청년은 짐을 내려놓기도 전에 무릎을 굽혀 아이들과 눈을 맞췄다.
터커였다.
영상 속에 선희 씨는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이 그녀였으니까. 영상 밑에 메시지가 붙어 있었다.
“오늘 사상터미널로 마중 나가서 터커를 다시 만나게 되었어요. 한국에서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던 저에게는 정말 신기한 일이네요. 좋은 인연의 고리를 만들어 주신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나는 그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보았다. 이 장면은 이 년 전, 내가 보낸 카톡 한 줄에서 시작됐다.
* * *
터커가 처음 밀양을 찾았을 때 나는 영국에 있었다. 카우치서핑으로 연결된 그를 만나보지도 못한 채 고향 친구 낭근 씨에게 부탁했다.
‘터커라고, 언어도 안 통하는데 잘 부탁해.’
그게 내가 한 일의 전부였다.
낭근 씨에게 이런 부탁을 한 게 처음도 아니었다. 러시아에서 온 세르게이도 우리 동창회에 따라왔다가 낭근 씨 집에서 며칠을 더 묵고 갔다. 나는 그동안 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을 열어왔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니 문을 연 건 늘 낭근 씨였다.
터커는 그 집에서 36시간을 지냈다. 된장이 익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었다.
그 짧은 동안 낭근 씨는 번역기를 붙들고 터커와 긴 이야기를 나눴다.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쳐주고, 손수 담근 된장도 한가득 안겨 보냈다. 식사 중 터커가 다리가 아픈 듯 살짝 얼굴을 찌푸리자, 곧장 연고를 들이밀며 거절할 틈을 주지 않았다.
낭근 씨 앞에서는 함부로 아픈 티를 내면 안 된다. 연고가 먼저 날아온다.
밥을 짓고 잠자리를 살핀 사람은 며느리 선희 씨였다. 낯선 청년을 누구보다 살뜰히 챙긴 것도 그녀였다. 선희 씨의 세 아이는 터커와 노래하고 춤추고 드럼을 두드리고 그림을 그렸다. 서로의 이름 말고는 별다른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터커는 나중에 적었다. 그의 후기에는 이런 문장도 있었다.
“이건 카우치도, 방 한 칸도 아니었다. 국경을 넘나드는 규모의 가족 홈스테이였다.”
그 뒤로 터커는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 이야기를 늘어놓았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 이제 그만하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자기 집 문을 열기 시작했다. 낯선 여행자들을 집에 들이고 재워주었다. 낭근 씨 집에서 받은 하룻밤을, 다른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 년 뒤, 터커는 광주박물관에서 석 달간 공부할 수 있는 예술인 장학금을 받아 다시 한국에 왔다. 그는 부산의 낭근 씨 본가를 찾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말 한마디 제대로 통하지 않던 아이들이, 이제는 터커가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사상터미널로 달려갔다.
선희 씨는 스스로를 우물 안 개구리라 불렀다. 하지만 어느 날, 우물 밖 넓은 세상이 먼저 그녀를 찾아왔다. 정성껏 차려주었던 따스한 밥상과 포근하게 깔아주었던 이부자리의 온기를 잊지 않고서.
* * *
생각해보면 토레 때도 그랬다. 몇 년 전 독일 청년 토레가 한국에 왔을 때도 나는 영국에 있었다. 서로 일면식도 없던 내 친구 네 명이 나서서 그를 안내하고 먹였다.
몇 년 뒤에는 반대가 됐다. 토레가 헬싱키 공항으로 우리를 마중 나왔다. 할머니 넷의 짐가방을 양손과 어깨에 나눠 메고서. 가방이 몇 개냐는 물음에 우리는 손가락을 접다가 그만두었다. 얼마 뒤에는 Broadbottom의 내 집까지 와서, 내가 진작 포기하고 살던 콘센트에 다시 불을 넣어주었다.
준 것은 이상하게 돌아온다. 준 사람에게 곧장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준 만큼 얌전히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사람 하나를 건너고, 국경 하나를 넘고, 몇 년을 돌아 엉뚱한 곳에서 불쑥 나타난다. 나는 평생 내가 ‘문을 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게 조금은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정작 문고리를 잡은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세상에 이렇게 편한 장사가 또 있을까.
되로 준 것도 내가 아니었다. 낭근 씨와 선희 씨였다. 그런데 그 작은 되 하나가 참 멀리도 갔다. 터커가 열어놓은 낯선 집의 문으로, 사상터미널로 달려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으로.
그리고 결국 내게까지 돌아왔다.
두 사람에게 나는 아직 제대로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언젠가 카톡 대신 얼굴을 마주 보고 앉게 되면, 그때는 꼭 말해야겠다.
“이름 하나 던져놓고 이렇게 호강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마 낭근 씨는 웃으며 손사래를 칠 것이다.
선희 씨는 또 그새 뭘 끓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