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식탁

-2023년 가을, 밀양

by류정uk

그날 밀양의 작은 식탁에서, 프랑스의 할머니와 밀양의 어린 내가 잠시 마주 앉았다. 둘 사이에는 냉장고 구석에서 꺼낸 주황색 곶감 한 조각이 놓여 있었다.


플로리안과 마르타는 카우치서핑을 통해 밀양 집에 오겠다고 연락해 왔다. 첫 메시지는 마르타에게서 왔다.

“안녕하세요, 류정 님. 저는 플로리안의 파트너 마르타예요. 요청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

그런데 며칠 동안 답이 없었다. 한국의 인터넷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잠수 탔나 싶을 즈음, 아침에 메시지가 왔다.

“저희가 크루즈 여행 중이라 신호가 안 잡혀서 이제야 읽었어요.”

답장 하나 보내는 데 대양을 건너야 하는 이들이라니. 빨리빨리의 나라 사람인 나보다 최소 세 배는 천천히 사는 사람들이 분명했다. 기차 시간을 정하는 데도 며칠이 걸렸다.

“29일 오후 6시 4분에 도착하는 기차표를 샀어요. 괜찮으세요?”

“그럼 월요일 6시 4분에 역에서 뵐게요.”

바다 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느림보 부부와, 분 단위로 시계를 보는 한국인. 그런데 이상하게도 둘 사이의 6시 4분만큼은 칼같이 정확했다. 도착하는 날 새벽, 또 메시지가 왔다.

“혹시 안 드시는 음식 있으세요? 채식이세요?”

만나기도 전에 내 끼니부터 걱정이라니. 이 정도면 한국 사람 다 됐다.

“아니요. 저는 돌도 씹어 먹습니다.”


밀양역에서 만난 두 사람은 생각보다 차분하고 편안했다. 플로리안은 프랑스 사람, 마르타는 폴란드 사람이었다. 나는 인사를 후다닥 끝내고 곧장 식당으로 데려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밥을 먹다가 플로리안이 요리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프랑스 셰프라니. 이번 카우치서핑은 대박 조짐이었다.

첫날 저녁, 후식으로 냉장고 구석에 있던 곶감을 꺼냈다. 플로리안은 곶감 하나를 베어 물더니 눈을 감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프랑스인 입맛에는 너무 단가, 뱉으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던 참에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할머니가 주시던 대추야자 맛이랑 똑같아요.”

나는 말없이 곶감 접시를 그의 앞으로 밀어 주었다. 그는 하나를 더 집어, 이번에는 아주 천천히 씹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괜히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마당의 감나무. 가을이면 가지가 휘어질 만큼 달리던 감. 떨어진 감을 주워 먹다가 엄마에게 혼나던 일.


국경은 여권이 있어야 넘지만, 입맛에는 국경이 없다. 그가 곶감 한 조각으로 프랑스의 할머니 댁에 다녀오는 동안, 나도 그 마당으로 잠시 돌아갔다. 홍시를 주워 먹던 아이가 영국의 긴 세월을 거쳐 밀양으로 돌아와, 프랑스 셰프에게 감을 먹이고 있었다.


고향에 돌아온 건 나인데, 영혼만 먼저 귀향한 건 내 식탁의 프랑스인이었다.


다음 날, 플로리안은 양팔 가득 장을 봐 오더니 그대로 내 부엌을 점령했다.

칼질 소리부터 달랐다. 탁탁탁이 아니라 드르륵이었다. 평범한 양파와 마늘이 그의 손을 거치자, 버터와 허브 향이 뒤섞인 전혀 다른 냄새가 났다. 나는 부엌 한구석에 찌그러져 구경만 했다. 내 찬장에서 저런 향이 날 수도 있구나. 플로리안은 요리하면서 가족 이야기를 조금씩 들려주었다. 할아버지도 주방장이었고, 아버지도 주방장이었고, 다음은 자기 차례라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곶감 생각을 했다. 가족에게서 물려받는 것은 레시피만이 아닌 모양이다. 어떤 냄새, 어떤 맛, 어떤 소리 하나가 오래된 기억을 데리고 따라오는지도 모른다.


플로리안이 냄비를 젓는 동안, 수의사인 마르타가 식탁에 앉아 말했다.

“저희는 브라이튼 근처 바닷가 마을에서 살아요. 둘이서 캠핑카 한 대 사서 자연 속에서 지내죠.”

브라이튼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귀가 번쩍 뜨였다. 인생의 절반 넘게 보낸 제2의 고향, 영국. 익숙한 남부의 바닷바람이 밀양의 작은 부엌으로 훅 들어오는 듯했다. 그리고 그제야 이해가 갔다. 답장이 며칠씩 늦던 것도, 기차 시간 하나 정하는 데 한참 걸리던 것도. 이 사람들의 시계는 처음부터 분 단위가 아니라 바다와 계절에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식탁에 파스타와 수프가 올라왔다. 면을 집어 입에 넣으니,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주방이 이 한 접시에 다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우리 집 부엌에서는 프랑스 셰프가 요리를 하고, 폴란드인 수의사 마르타가 맥주를 마시며 웃고, 영국에서 오래 살다 온 한국인이 파스타 앞에서 젓가락을 들고 앉아 있었다.


세 나라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이런 분위기였으면 좋겠다. 통역사는 필요 없다. 음식이 알아서 통역해 줄 테니까.


떠나는 날, 나는 말했다.

“다음에 한국 오면 또 여기로 와요. 비밀번호는 그대로 둘게요.”

두 사람은 빵 터졌다. 그들이 떠난 뒤에도 한동안 부엌에서는 드르륵 칼질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식탁에 남은 곶감 하나를 집어 먹었다.

달았다.


손님을 초대한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선물을 받은 쪽은 나였다. 익숙해서 그냥 지나쳤던 곶감 하나를, 그들이 다시 바라보게 해주었다.

이전 13화학이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