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숨

-2020년 봄, Broadbottom

by류정uk

내가 손보고 있던 것은 스무 번째 집, Broadbottom의 44번지였다.


루턴에서 되찾은 돈으로 낡은 집 세 채를 산 지 십수 년. 세 채가 네 채가 되고, 네 채가 스무 채가 되는 사이, 어느새 나는 낡은 집을 사서 고치고 세를 놓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임대업이라는 술에 취해 있었던 셈이다. 44번지는 은퇴를 준비하며 정리하려던 마지막 프로젝트였다. 해오던 일에 대한, 그저 평범한 마무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벽지를 새로 바르고 마룻바닥을 손보는 동안, 세상은 이미 숨을 죽이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매일 코로나 감염자 숫자가 올라갔고, 그 숫자를 보면서도 설마 나에게까지 올까 싶었다.


어느 날, 나는 그 집에서 열이 오르고 숨이 가빠졌다. 처음엔 그저 몸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열은 내리지 않았고,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결국 나는 구급차를 불렀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나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복도까지, 문 앞까지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이곳에 있다가는 오히려 증세가 더 나빠질 것 같았다. 숨은 이미 가빴는데, 그 복도의 공기가 나를 더 조여왔다. 이번에는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때 또렷하게 들었다.


결국 나는 병원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갈 때는 구급차를 타고 실려 왔는데, 돌아올 때는 우버를 불러 혼자 탔다. 그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이렇게 혼자 왔다가, 혼자 돌아가는구나.


집에 도착해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보며 숨을 세기 시작했다.


들이쉬고.


내쉬고.


그리고 다음 숨이 오는지를 기다렸다. 병원도 나를 받아주지 못했으니, 이제 믿을 것은 이 방 안의 공기와 내 폐뿐이었다. 손가락으로 침대 모서리를 짚어 보고, 그것이 여전히 딱딱하고 차갑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직 여기, 이 세상에 있다는 뜻이었다.


그날 밤, 복도에서 스쳤던 그 생각이 더 이상 스쳐 지나가는 두려움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럴듯한 유언을 준비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다음 숨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그날 밤 내가 바랄 수 있는 전부였다.


문득 루턴의 그 방이 떠올랐다. 그때는 살기 싫어서 숨을 셌고, 이번엔 살고 싶어서 숨을 세고 있었다. 같은 숫자를 세면서도 마음은 정반대 방향을 향해 있었다.


며칠이 그렇게 흘렀다. 병원도, 구급차도 다시 부르지 않았다. 부를 곳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으니까. 나는 그저 누워서 숫자를 셌다. 누구에게도 전화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밤, 마음속으로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살아난다면, 이 집을 혼자 쓰지 않겠다.


왜 하필 그 순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방을 다시는 누군가 혼자 감당하게 두지 않겠다는 마음만은 또렷했다. 다시는 누군가가 다음 숨을 기다리며 혼자 누워 있게 하지 않겠다.

열이 떨어진 것은 그로부터 열흘쯤 지나서였다. 어느 아침, 눈을 떴을 때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에는 다음 숨이 올 것이라는 걸 믿을 수 있었다.

침대 위에서의 그 약속은 내 계획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나는 살아났다.

이전 04화불 켜진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