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트와 티

-1992년 3월, 맨체스터 Ashton Hospital

by류정uk

의식을 되찾았을 때, 내 온몸은 첨단 기계에 둘러싸여 있었다.

입에는 산소기가, 팔에는 수혈 줄이, 가슴 위로는 심장을 감시하는 장치들이 선을 늘어뜨린 채 붙어 있었다. 손끝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고, 입안은 사막처럼 말라 있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장비에 연결된 건 처음이었다. 이 정도면 우주비행사 못지않겠다는 생각이 흐릿한 의식 속에서 스쳤다. 그리고 다시, 어렴풋한 안개 속으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아이가 살아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다만 기계들이 규칙적으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삐, 삐, 삐. 그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다. 엄청난 산후 출혈 뒤에 살아 있다는 건, 이렇게 기계 소리로 확인받는 일이기도 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삐 소리와 산소기의 건조한 바람 소리 속에서, 천천히 살아 있음을 확인해 가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다.

겨우 상체를 일으켜 앉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간호사가 트레이를 가져왔다. 그 위에는 마른 토스트 두 조각과 영국식 티 한 잔이 놓여 있었다. 잼도 버터도 없이, 그냥 마른 토스트 두 조각과 식어 가는 티.

영국인들은 정말로, 무슨 일이 있어도 티를 내온다. 세상이 끝나는 날에도 누군가 옆에서 "차 한잔 드릴까요?" 하고 물을 것 같다. 나는 죽다 살아났는데, 병원은 나에게 애프터눈 티를 대접하고 있다니.


트레이를 바라보는데 눈물이 고였다.

멀리 계신 엄마의 미역국이 그리워서. 따뜻하고, 짭조름하고, 김이 모락모락 나던 그 국물. 산후에는 꼭 먹어야 한다며 엄마가 늘 끓여 주시던 그 국. 영국 병실의 차갑고 하얀 공기 속에서 나는 꺽꺽 울었다. NHS가 세계 최고의 의료 시스템일지는 몰라도, 산모 회복식에 대해서는 아직 배울 게 많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러다 나 혼자 피식 웃기도 했다.

티는 이미 미지근했고, 토스트는 입안에서 바스러졌다. 아무 맛도 없었지만, 나는 한 모금씩 마시고 꾸역꾸역 삼켰다. 눈물과 토스트 부스러기가 뒤섞여 무슨 맛인지도 알 수 없었다.


창밖으로 영국의 흐린 하늘이 보였다.

빈 트레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한참 그 하늘을 바라보았다. 다 먹고 나니 이상하게도 조금 자랑스러웠다. 마른 토스트 두 조각을 다 해치운 것이, 마치 큰일을 해낸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것이 내 인생 첫 '완주'였는지도 모른다.

그날 오후, 간호사가 작은 아들을 품에 안겨 주었다. 아이도 살아 있었다.


다음 숨이 저절로 들어왔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살아난 것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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