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Broadbottom 44번지
살아난다면 이 집을 나만의 공간으로 두지 않겠다고, 침대 위에서 했던 약속을 나는 잊지 않았다.
회복 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노인정'이라는 단어였다. 어릴 적 한국에서 보았던 기억 속 노인정의 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겨울이면 따뜻했고, 혼자여도 들어갈 수 있었으며, 나이 든다는 것이 곧 고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걸, 그곳은 알려주었다. 국가와 지역이 함께 바카라임지는 최소한의 돌봄이 그곳에는 있었다.
그러나 이 마을에는 그런 공간이 없었다. 어느 날 한 노인이 말했다. "지난주에는요, 일주일 내내 누구와도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어요." 그때 나는 이 마을의 복지가 제도 속에만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노년의 외로움은 개인의 몫으로 남아 있었고, 특히 배우자를 잃은 뒤의 시간은 아무에게도 배정되지 않았다.
집 한 채를 비워, 동네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바꾸었다. 처음엔 아주 작은 시작이었다. 동네 게시판에 손 글씨로 적은 종이 한 장. "수요일 오전, 차와 비스킷. 누구나 환영합니다." 그것이 전부였다. 종이에는 그렇게만 적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이 방에 이름을 하나 붙여두었다. '생명줄'. 혼자 숨을 세던 그 밤, 나에게 단 하나라도 있었으면 했던 것.
첫 수요일, 나는 아침부터 주전자를 몇 번이나 씻었다. 찻잔도 필요 이상으로 많이 꺼내 놓았다. 아무도 안 오면 어쩌나, 괜히 동네 사람들 눈에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오전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두 명뿐이었다. 그동안 친하게 지내던 이웃집 할머니 린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온,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였다.
문 앞에서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가 물었다.
"정말 공짜예요?"
나는 그 질문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공짜라는 말이 이렇게 조심스럽게 확인해야 하는 것이었나 싶어서였다. 나는 웃으며 자리를 내어드렸다. 두 분은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나는 차를 따르며 별다른 말을 걸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저 비스킷 접시를 앞으로 밀어드리고, 찻잔이 비면 다시 채워드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들은 삼십 분 만에 자리를 떴다. 현관에서 린다가 고맙다는 인사를 짧게 남기고 돌아섰다. 문이 닫히고, 집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그날 밤, 빈 찻잔들을 씻으며 이게 맞는 일인가 자문했다. 겨우 두 사람, 그것도 삼십 분. 이걸로 뭐가 달라질까 싶었다.
하지만 다음 수요일에도 나는 다시 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몇 달이 지난 어느 수요일, 부엌 식탁 위에 낡은 저울과 계량컵을 늘어놓고 있었다. 린다가 팔을 걷어붙이고 말했다. "이왕 이렇게 굽는 거, 몇 개 더 만들어서 팔면 어때요? 병원 옆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나는 그게 될까 싶었다. 겨우 몇 명이 모여 마시는 차인데, 케이크를 팔겠다는 생각까지는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다음 주, 린다는 정말로 레몬 드리즐 케이크를 두 판 구워왔다.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는 낡은 쿠키 통을 들고 와 그 위에 손 글씨로 가격표를 붙였다. "한 조각에 1파운드, 기부는 자유입니다."
그날 오후, 처음 보는 얼굴 셋이 문을 두드렸다. 케이크 냄새를 맡고 왔다고 했다. 나는 찻잔을 세 개 더 꺼냈다.
몇 주 뒤에는 누군가 기차 시간표를 들고 왔다. "Buxton 가는 기차, 다음 달에 다 같이 가볼까요?" 그렇게 정해진 여행 날, 매표소 앞에는 지팡이와 보행 보조기가 나란히 줄을 섰다.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류정 씨가 쏘는 거야." 나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차 한 잔을 나누던 사람들이, 어느새 서로를 위해 오븐을 켜고 기차표를 나눠 사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몇 년 후, 그 지팡이 짚은 할머니가 다시 찾아왔다. 그사이 44번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되어 있었다. 거실은 매주 사람들로 채워졌고, 부엌 찬장에는 케이크 판매용 통이 늘 준비되어 있었으며, 냉장고 문에는 다음 기차 여행 날짜가 적힌 메모가 붙어 있었다. 할머니는 그 모습을 둘러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너 이렇게 장소가 번성할 줄 몰랐지, 몰랐지."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웃었다. 사실 나도 몰랐다. 그 첫 수요일, 겨우 두 사람 앞에서 빈 찻잔을 씻으며 이게 맞는 일인가 자문하던 그날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