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adbottom 44번지
시간이 지나면서 이 작은 모임에는 또 하나의 방이 생겼다. 실제 방이 아니라, 휴대폰 안의 방이었다. 누군가 무심코 왓츠앱 그룹을 만들며 붙인 이름이 그대로 굳어졌다. "DROP-IN@44." 커피잔 이모티콘 하나가 그 옆에 따라붙었다.
처음엔 다음 주 메뉴나 날씨 이야기가 전부였다. "이번 주는 스콘 대신 빅토리아 스펀지 어때요?" "우산 챙기세요, 오후에 비 온대요." 이 나라에서 비 예보는 예보가 아니라 확인이다. 어르신들의 메시지는 가끔 암호 같기도 했다. 대문자로만 쓰는 분, 느낌표를 다섯 개씩 찍는 분, 케이크 사진을 보내려다 자기 엄지손가락만 세 장 보내는 분. 그래도 뜻은 다 통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작은 화면 안으로 사람들이 그동안 삼켜온 것들이 하나둘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병원 검사 결과가 좋지 않다는 한 줄에 곧바로 답이 달렸고, 삼십 분 전까지만 해도 케이크 이야기를 하던 창이 순식간에 서로의 안부를 살피는 자리로 바뀌었다.
어느 날 밤늦게, 몇 년 전 남편을 먼저 보낸 한 분이 이렇게 남겼다.
"남편이 떠난 뒤로 저녁마다 텔레비전 소리를 일부러 크게 틀어놓아요. 그래야 집이 덜 조용해서요."
그 문장을 읽으며 나는 낮에도 불을 꺼두지 못했던 루턴의 그 여름을 떠올렸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참 화면을 바라보다가 답장에 이렇게만 적었다. "그 마음, 저도 알아요." 더 긴 위로는 필요 없었다.
그 창을 타고 오는 것이 슬픔만은 아니었다. 어느 날 폭우가 마을을 훑고 지나간 아침, 한 분이 사진 몇 장을 올렸다. 자기 집 앞 담장이 통째로 무너져 벽돌 잔해가 도로까지 밀려나온 사진이었다. 사진 밑으로 댓글이 쉼 없이 달렸다. 누군가는 아는 벽돌공의 번호를 보냈고, 누군가는 당장 가서 잔해라도 치워주겠다고 했다.
나 역시 차를 몰고 그 집으로 갔다. 장갑을 끼고 삽을 들었다. 몇 달 전만 해도 우리는 스콘과 케이크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누군가의 무너진 담장 앞에서 함께 흙과 벽돌을 치우고 있었다. 벽돌은 생각보다 무거웠고, 그 앞에 모인 우리의 나이 합은 그보다 더 무거웠다. 그래도 해가 지기 전에 길은 치워졌다.
수요일 오전 삼십 분으로 시작한 모임은 어느새 나머지 엿새 동안에도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서로의 집 앞으로 달려가는 관계가 되어 있었다. 나는 가끔 그 그룹을 열어보며 생각한다. 화면 속 글자 하나하나가, 예전 같았으면 아무에게도 닿지 못한 채 혼자 삼켜졌을 말들이라는 것을.
두 사람 앞에서 빈 찻잔을 씻으며 이게 맞는 일인가 자문하던 그 첫 수요일로부터, 44번지의 문은 올해로 육 년째 열려 있다. 그사이 창가 자리의 주인이 바뀌었고, 시계 아래 자리가 비었고, 단체방의 이름 몇 개는 더 이상 답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수요일 아침이면 누군가 여전히 주전자에 물을 올린다.
그리고 시월부터는 금요일마다 북클럽이 열린다고 한다. 단체방에 바카라 제목 하나가 올라왔고, 그 아래로 "저도요"가 줄줄이 달렸다. 바카라을 거의 읽지 않고 살아온 사람의 집에서 독서회라니. 나는 일단 찻잔 담당을 자처했다. 금요일마다 나는 주전자 옆에서 가장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될 것이다.
44번지의 문은 이제 일주일에 두 번 열리고, 이 작은 화면은 매일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