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켜진 창

-2005년~2007년, 루턴

by류정uk

런던시티에서 일한 지 십 년을 향해가던 2005년, 모든 것이 거품처럼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어느 날 아침, 회사에서 내 자리가 사라졌다.

"일본 데스크와 통합됩니다."

그것이 돌아온 설명의 전부였다. 모두가 나의 눈을 피했다. 바카라상 위의 가족사진과 서랍 속 물건들은 작은 상자 하나에 담겨 내 손에 쥐어졌다.


비극은 단독으로 오지 않았다. 내가 런던시티에서 남의 돈을 관리하는 동안, 집안의 자산은 남편의 손을 거쳐 주식 시장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모기지를 감당하지 못해 런던 집의 열쇠를 넘기던 날, 내 손이 가늘게 떨렸다.


가족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두 딸은 한국으로 돌아갔고, 13살 막내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스페인으로 떠났다.


온라인 게임과 집과 가족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그해 여름, 홀로 짐을 싸 들고 흘러 들어온 곳이 루턴의 집이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엄마도, 아내도, 온라인 게임인도 아닌, '나'라는 껍데기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집은 지나치게 적막했다. 나는 낮에도 집 안의 모든 불을 켜두었다. 불을 끄면 그 넓은 공간에 혼자라는 사실이 너무나 명확하게 뼈를 찌르고 들어왔다.


그해 나는 쉰을 앞두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오래 누워 있다가 손을 뻗어 스탠드를 켰다. 노란 불빛이 벽에 번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여기서 끝내도 되지 않을까.'


계획은 없었다. 그저 삶을 이어가지 않아도 되겠다는 쪽으로 몸이 천천히 기우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했다. "오늘 하루만 그냥 지나가게 두자." 살겠다는 결심이 아니었다. 그저 오늘 하루를 한 번 더 견뎌보자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두 달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식어 있던 주전자 밑에 불을 붙이고 찻물이 가늘게 수증기를 뿜어 올리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울음이 멈췄다. 조금만 더 하루 또 하루를 받아들여보자고,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나는 탁자 위에 굴러다니던 종이를 끌어당겨 내게 남아 있는 것들을 숫자로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남은 것 중 하나는, 부당하게 빼앗긴 것들을 되찾을 권리였다. 나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지급 임금과 부당해고, 그 두 가지를 바로잡기 위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 무렵, 빈방 하나를 세놓았다. 누가 오든 월세만 꼬박꼬박 내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처음 문을 두드린 사람은 라스였다. 테스코 비닐봉지 하나만 들고 서 있는 그에게 물었다.

"짐이 이게 다예요?"

"네, 다입니다."

그는 이지제트 파일럿이었다. 사흘 일하고 나흘은 덴마크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이었으니 짐이 적을 수밖에.

라스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있는 날이면 집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부엌에서 커피 끓는 소리가 들렸고, 현관에는 신발이 놓여 있었다. 그 작은 흔적들이 이 집에 다시 사람이 사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서류를 펼쳐놓고 밤을 새우던 어느 날, 고개를 들자 탁자 위에 차 한 잔이 놓여 있었다. 라스는 이미 방으로 들어간 뒤였다. 처음으로 이 집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의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법원에 다녀온 날이면 현관문 안쪽에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 신발도 벗지 못한 채 바닥에 주저앉기도 했다. 그래도 아침이 오면 다시 서류 봉투를 들고 나섰고, 돌아오면 어김없이 불이 켜져 있었다.


라스가 내 삶을 해결해 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돌아왔을 때, 집 안에 불을 밝혀두었을 뿐이다. 그 불빛이 나를 하루씩, 다음 날로 건네주었다.


그 소송은 이 년 가까이 걸렸다. 법정에 설 때마다 다리에 힘이 풀렸던 그 시간들이, 결국 헛되지 않았다. 미지급 임금과 부당해고, 두 가지 모두 내가 이겼다. 통장에 들어온 판결금을 보며 나는 한참을 앉아 있었다. 처음으로 내 것이라 부를 수 있는 돈이었다.


판결금, 집, 빚. 더하고 빼고 나니 삼십만 파운드가 남았다. 나는 그 숫자를 한참 바라보았다.


형광펜 세 자루가 바닥나던 밤들. 현관에 주저앉던 저녁. 그럼에도 다시 집을 나서던 아침들. 그 숫자 안에 다 들어 있었다.


그 돈으로 나는 낡은 집 세 채를 샀다. 딱히 큰 계획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눈앞에 있는 일부터 붙잡았을 뿐이다.



이 시기를 지나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한국이면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언제든 이야기를 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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