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한테 화내고 나서 씁니다 26.
홀로 계신 엄마를 모시고 누나네 가족과 함께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한옥으로 형성된 고즈넉한 마을을 가는지라 가기 전부터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근처에는 서해 바닷가가 있어서 해루질을 하기에도 딱 안성맞춤이었다.
저녁에는 미리 장을 봐 놓은 고기, 해산물과 함께 간단한 술을 곁들여 먹을 생각에 흥미진진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불청객으로 인해 분위기는 깨지고 말았다. 그리고 가족 간의 끈끈한 사랑도 보았다.
엄마가 그렇게 해루질을 좋아하는지 처음 알았다. 소녀 같았고, 즐거워 보였다. 평생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갯벌에 숨겨져 있는 모든 고둥을 다 잡을 기세였다. 마치 모네의 이삭 줍는 여인들 전투 버전을 보는 듯했다. 뒤늦게 도착한 누나네도 조카들과 함께 해루질에 참여했다.
조카들은 한창 사춘기라 단답형을 고수하고 절대 눈을 마주치지 않았지만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이 해루질을 열심히 했고, 칠게를 잡을 때면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녔다.
평화로웠고 행복했다.
사실, 우리 가족이 1박 2일 여행을 떠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정말로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금 내 가정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엄마와, 돌아가신 아버지 체제 하에서는 그런 일은 남들에게나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당시에는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가족끼리 여행을 다니는 집은 유독 특이한 것이라 생각했고, 게다가 여행을 다니는 집들은 극소수일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렇게 생각을 해야 내 마음이 편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듯하다. 평범하지 않은 집이 싫었기에 생각을 부정적으로 고쳐 먹었던 것이다.
여하튼.
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도 용기를 내어 보지 못하다가 불현듯 엄마, 누나와 여행을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급하게 정해, 급하게 여행을 떠났다. 누나도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사춘기 조카들을 데리고 친히 여행에 동참했다.
항상 조카들을 위해서도 해준 게 없다는 마음뿐이었다.
무뚝뚝한 엄마에 외삼촌에, 외할머니까지. 저녁을 밖에서 사 먹어도 되지만 굳이 숯을 만들어 삼촌의 정성이 담긴 음식을 먹이기로 했다. 누나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장도 우리 집에서 전부 봤다.
그렇게 저녁이 되자 바비큐파티가 시작됐다. 그리고 역사적인 전투의 서막도 함께 시작됐다.
바비큐는 순조로웠다. 검은 삼겹살이 되지도 않았고,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챙겨 와서 야유회 분위기도 났다. 엄마는 가끔 '맛있구나. 잘 구웠다. 어서 먹거라.'등 제일 어른의 면모를 보여주었지만, 짐짓 행복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들의 눈에는 잘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마당에서는 불멍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마시멜로를 굽고 어른들은 시원한 맥주에 담소를 나누었다. 미리 사서 간 폭죽도 터뜨릴 시간이었다. 하늘로 길게 뻗어나가서 뻥하고 터지는 길쭉한 폭죽을 터뜨리고 시작했다.
그러자, 옆집에서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아니 누가 목조주택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불을 지른답니까. 제정신입니까?"
주택 마당은 돌로 되어 있었고 한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주민이 이야기를 하니 수긍하는 대답을 했다. 내가 생각해도 여기서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놀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1절만 했으면 됐다. 그런데 옆집 주민은 그럴 마음이 없었나 보다.
"빨리 치워요. 그러면 안돼. 정말.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정말." 잔소리는 5분이 넘게 이어졌다. 이미 흥은 깨져버린 후였다.
"알았으니까 그만하세요. 우리도 몇 십만 원 주고 와서 기분 좀 내려고 했고 사장님도 불멍해도 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불편하시면 안 한다고 했잖아요. 왜 계속 그러는 거예요."
옆집과는 제대로 된 담이 없어 옆집 아줌마는 대나무 숲에서 계속해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소름 끼쳤다. 시골 텃세가 이런 것인가? 어이가 없었다. 가족과의 기쁜 마음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전부 철수하고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도 옆집에서는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아니 저 인간들 제정신이야? 왜 저래?"
난 폭발하고 말았고, 담벼락으로 가까이 가 말싸움을 시작했다. 첫째 딸은 발차기를 하며 동조했다. 옆집 사람 3명은 담벼락으로 달려들어 미친개처럼 물어뜯기 시작했다. 3:1이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다 반대편 집 입구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뿔싸, 엄마는 왜 끼어 들어서 진흙탕을 만들지...!
"아니, 인간들이 적당히 좀 하지. 무슨 짓이야 내 아들한테!"
나중에 들어보니 엄마는 아들이 옆집으로 넘어간 줄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아들을 지키기 위해 손수 전투에 참전했던 것이다.
그렇게 감정싸움이 격해지고 말았다. 나는 옆집으로 곧장 가서 엄마를 붙들면서도 옆집 세 명과 말싸움을 이어갔다. 난 말싸움에 자신 있었다. 꼭 꺾어버리고 싶었다. 왜냐, 옆집이 선을 넘었기 때문에. 시골 텃세를 짓밟아 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3:2로 싸우고 있을 때 누나까지 참전했다.
3:3이 됐다. 옆집에서는 또 선을 넘었다.
"저놈 완전 개새끼네."
나에게 한 이야기다. 엄마의 꼭지는 돌고 말았다.
"감히 내 아들한테 욕지거리를 해! 죽고 싶냐!"
그렇게 엄마와 누나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엄마의 감성팔이 호소 때문에 우리는 싸움에서 질 것 같았다. 일단 도움이 되지 않는 아군 2명을 걷어내고, 나는 3:1로 다시 말싸움을 시작했다. 결국 옆집 아저씨는 '그만하고 돌아가시오. 미안하오.'라며 사과를 했다.
그렇게 평생 처음 와본 가족여행에서 생전 처음 전투를 치렀다.
숙소로 돌아왔다. 매형과 조카들은 바닷가 산바카라을 갔다가 전화를 받고 황급히 돌아오는 중이었는데 이미 싸움이 끝나 약간 실망해하는 눈치였다.
거실로 들어가서 맥주판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아까의 전투에 대해 소상한 의견들을 꺼냈다.
나의 마음은 불의에 맞서, 감정을 빼고 논리로 이야기를 하는 노선이었다. 옆집의 행동은 선을 넘는 불의라고 생각했으니, 감정이 섞이지도 않았고 차분하게 이야기가 가능했다.
그런데 엄마와 누나는 달랐다.
그런 고성과 몸싸움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가슴이 졸였다고 한다. 트라우마나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휘둘렀던 상처들 때문에 우리의 몸에는 알게 모르게 생채기가 나 있었던 것이다. 그것 때문에 두 여자는 아들, 동생을 지키기 위해 나타났던 것이다.
나는 잊고 있었다. 남자이기에. 그러나 두 여자는 생채기가 깊게 박혀 조금만 긁어도 불쑥 튀어나오는 독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슬프고 짠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절대로 이 두 여자 앞에서는 큰 소리 내지 않기로.
다음 날. 정신을 차리고 커피를 마시니 문뜩 생각이 난 장면이 있었다.
한참 1:3으로 말싸움을 하고 있으니, 첫째가 나를 꼭 안으며 보이지도 않는 상대방을 향해 발길질을 하고 있던 모습. 아이가 들었을 때도 옆집에서 너무 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냥 아빠니까 아빠 편을 들었던 것일까?
웃음이 나면서도 아이 앞에서도 자중하지 못했던 나를 질타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날 것의 모습.
그래, 옆집 빼고는 모두가 내 편이었다. 가족은 가족 편이다. 싸움으로 다시금 하나 되는 가족이었다. 물론,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또다시 그런 불의를 만난다면... 과연 참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