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라는 질문의 노이로제

딸들한테 화내고 나서 씁니다 25.

by소년의 초상

왜? 왜?


아빠 왜? 이건 왜 이런 거야? 왜? 왜?


나도 잘 알고 있다.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할수록 아이의 뇌는 말랑말랑 해지고, 어찌 됐든 좋은 건 분명하다는 사실을.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왜" 공격에 정말 노이로제 걸릴 것 같다. 우리 딸이 천재는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질문이 많은지.


대답하기 애매한 질문도 많고, 내가 모르는 것도 많아서 똑똑한 부모들의 자식이 대체적으로 똑똑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첫째는 질문도 예쁘게 한다.


다그치듯이, 빨리 알려주라는 듯이, 당연한 듯이, 질문하지 않는다.


"아빠,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건 왜 이래? 왜 이렇게 부르는 거야? 왜 이 사람 표정은 이렇지?"


대체로 이런 식이다.


대답을 안 해줄 수가 없다. 단지, 질문 빈도가 잦기 때문에 귀찮을 뿐이다.


한참 시달리고 있을 시기, 어느 날 뿌듯한 순간도 있었다.


첫째는 바쁜 출근길 아침, 혼자 등원 준비를 마치고 거실 소파에 앉아 영어공부를 하고 있었다. - 사실 아이패드를 볼 목적임 -


그러다 갑자기 아빠를 호출했다.


"아빠, 이 사람 표정은 왜 이러는 거야?"


가보니 미술작품이었다.


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분명 학창 시절에 어느 교과서에선가 본 것 같은데...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바쁜 아침에 갑자기 공격을 받으니,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갑자기 우뇌인지 좌뇌인지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무언가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뭉크... 절규...


그렇다. 뭉크의 절규라는 작품이었다. 이걸 기억해 내다니!


다만, 설명하기가 애매했다.


"응. 이건 뭉크의 절규라는 건데."


"그러니까 아빠 왜 표정이 이러는 거야?"


"이런 표정을 절규라고 그래. 쥐어짜는 거지."


"그런데 왜 이러는 건데?"


"그러니까. 아빠도 궁금하네. 얼른 검색해서 커닝을 했다."


은유법인 듯했다. 설명하기 어려워서 작가는 마음이 아픈 적이 있었는데 아지랑이 같은 해 질 녘 배경을 보고 본인이 아팠던 모습이 떠올라 사람의 표정, 모습, 배경을 아팠을 때처럼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딸은 가만히 그림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느낀 듯이 대답했다.


"아하. 우리 분리수거장에서 맨날 물 뿌리고 청소하는 6층 오빠 있잖아. 머리가 아프잖아. 그 오빠가 그림을 그리면 이렇게 그릴까?"


비슷한 논조였다. 그 오빠가 그림을 잘 그릴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그 오빠가 그림을 그린다면 이런 느낌이 날 수도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기특했다.


어려운 것도 체득해 내는 7살 딸이 자랑스러웠다. 그 사이 사고뭉치 둘째가 일어났다.


거의 뭐 동면에 들어갔다가 나온 부스스한 곰처럼 거실을 활보하더니 그림이고 뭐고 상관없다는 듯 아이패드를 뺏고 본인이 실컷 보기 시작했다.


아무렴.


첫째는 그 와중에도 오른손 검지를 입에 가까이 대고 골똘히 생각 중이었다.


혼자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듯했다. 빠르진 않지만 혼자서 느릿느릿 퍼즐조각을 맞추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개 이렇지는 않다.


항상 무언가 의미가 있고, 기억에 남는 질문들만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대부분 휘발성이 강하고, 그 나이 또래에 맞는, 그저 궁금한, 그저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질문이 많다.


예를 들어 개미는 왜 일렬로 다니는 것인가?, 모기에 물리면 왜 부풀어 오르고 간지러운 것인가?, 구구단 5단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등이다.


어디선가 보았는데,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내가 그 어렸을 때로 다시 돌아가는 여행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더 슬기롭고, 적극적으로, 행복하게 양육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일리가 있다.


첫째의 질문공격에 내가 대충 알고 있는 것들도 다시 공부해서 알려주는 계기가 되고, 사소하게 지나치는 자연 속에서 궁금증을 갖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개미들을 관찰하게 된다.


행복하다.


귀찮지만 좋다.


언젠가 이 질문이 끊기고, AI에게 질문을 하는 날이 오겠지만 그때까지만이라도 귀찮지만, 행복하게, 첫째의 질문에 답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