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안쓰러워 보이는 아내

딸들한테 화내고 나서 씁니다 28.

by소년의 초상

내년이면 결혼 10년 차가 된다.


변한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세월이 정말 빠르게 흐른다는 것을 체감한다. 왜 어른들이 내 나이 돼보고 떠들어라,고 말하는지 새삼 느낀다.


통잠을 자지 않는 아이를 보며 제발 통잠 좀 자라, 자박자박 힘들게 걷는 아이에게 곧 뛰겠네, 색칠할 때는 온통 빨간색으로만 칠하던 아이에게 언제 사람 눈 그릴래,라고 말을 하면 어느새인가 그것들을 하고 있었다.


오늘도 두 딸은 커가고 있고, 아내와 나는 새치가 늘어가고 있다.




결혼하기 전 아내는 싱그러움 그 자체였다.


반달 같은 눈으로 늘 밝게 웃고, 무슨 일이든 욱하지 않고 차분하게 행동하던 모습들. 언제나 내 편이 돼주고 늘 내 걱정만 하던 야리야리한 여자.


물론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약간 변한 구석은 있다.


살짝 부푼 외형과 약간의 시술이 필요한, 탄력이 떨어진 피부를 빼고는 여전히 싱그럽다. 이런 부분들이야 외형일 뿐이니 껍데기가 얼마나 중요할까. 지금도 아내를 보면 가끔 멍청한 구석이 있고, 순수하다고 느낀다.


이런 아내 때문에 내가 더 오래 부엌에 머물게 되고, 빨래를 돌리고, 아이들을 하원시키는 원동력이 아닐까.


어느 날 문득 첫째 옆에서 자던 아내를 찬찬히 봤다.


정말 곤히 자는구나. 오늘은 뭐가 그렇게 피곤했니. 엄지발은 더 까칠해졌구나. 남은 반찬은 내가 다 먹는데 왜 여보 배가 튀어나왔니. 표정을 보니 좋은 꿈은 아닌가 보네.


그래. 좋은 꿈을 꾸는 건 아닌 것 같네.


요새 아내가 좋은 꿈을 꿀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없다.


아이들이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고, 남편은 집과 회사, 운동, 독서 빼고는 하는 게 없으니 사고도 치지 않지만, 그렇지만 아내는 즐거운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늘 어깨가 말려 통증을 호소하고, 피부 탄력이 떨어져 얼른 주사를 한 방 맞아야겠다며 투덜대는 모습들. 이런 모습들 외에도 내가 모르는 불편한 것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점점 저금액도 늘어나고 있음에도 아내의 그늘진 한 편은 무엇일까.


결국 친정일이다.


친정 때문에 그늘이 진다.


아파서 요양병원에 있는 장인어른, 혼자서 삶을 꾸려나가는 홀로 계신 장모님, 올해 늦게 결혼했지만 여전히 철이 없는 처남.


처남을 대신해 요양병원을 자주 들락거리고, 소변 냄새나는 곳에서 제 아버지를 보며 눈시울을 붉히다 집으로 돌아와 한동안 멍해 있는 모습들.


요양병원에서는 가끔 아내에게 연락해 환자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하곤 한다. 다른 고객들이 줄을 서 있으니 편한 환자만 찾으려는 태도다.


나도 병원의 반복되는 압박성 태도에 염오감이 드는데 아내는 오죽할까.


장모님은 처남 대신 딸에게 더욱 의지하지만 그런 의지 때문에 딸은 더욱 힘들어지고, 머리가 커갈수록 서로 달라지는 가치관에 부딪히는 날도 늘어가서 죄바카라감만 늘어나는 상황들.


집에서는 절대 기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남편 눈치 보는 아내.


이런 것들이 꿈을 꾸는 와중에도 인상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요즘엔 박명 속에서 일찍 눈이 떠진다.


새벽 내 몸부림을 치면서 자는 4세 딸 때문에 깊은 잠에 들지 못하는 탓도 있겠지만, 나이가 점점 들어갈수록 새벽잠이 없다. 화장실도 가고 싶다.


몸에 이상반응이 올 때마다 부쩍 겁이 난다. 큰 병이 있는 것은 아니어도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몸소 체감한다. 내가 늙고 있다는 것은 아내도 늙고 있다는 것.


박명 속에서 아내를 쳐다보면 눈을 감고 있다. 아내도 나처럼 옅은 잠을 자는 걸까? 깊은 잠에 잘 자고 있나? 궁금증이 들어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이 잠깐 든다. 여전히 아내를 보고 장난치고 싶은 것을 보니 아직은 행복한가 보다.


그런 마음이 지나가면 또 짠한 마음이 든다. 안쓰럽다.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


사랑 다음은 연민인 것일까? 연애 때는 안쓰럽다는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첫째를 출산했을 때 그 울부짖던 힘든 표정에서 안쓰럽다는 감정을 처음 느꼈던 것 같다. 그때 이후로 아내와 나는 더욱더 하나가 되어 자웅동체가 된 것일까? 사랑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놀리고 싶기도 하고.


아내를 즐겁게 해주고 싶다. 남편이라는 존재가 스트레스가 되지 않고, 붙어 있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죽는 순간이 왔을 때 아내보다 3개월 늦게 죽고 싶다. 혹시나 아내가 흘렸을지 모르는 더러운 부분들은 자식들과 다른 사람들 몰래 내가 다 정리하고 가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건강해야지. 담배도 끊었다. 언젠가는 술도 끊어야지.




아내는 늘 화내는 남편을 두고도 화를 내지 않는다.


왜 그래!,라며 날 선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냥 가만히, 그러려니, 금방 저러다 마니까.라며 이해한다. 딸들과 오랜 시간을 갖으며 화도 내고 스트레스를 받는 남편을 오히려 짠하게 본다. 가만 보니 무조건 내편인 것 같다. 희한하다.


그런 아내가 고맙다. 그 다음은 결국 또 안쓰럽다.


항상 힘이 되어주고,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동반자로서 오늘도 고맙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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