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다른 두 딸의 모습

딸들한테 화내고 나서 씁니다 24.

by소년의 초상

두 딸을 키우면서 느끼는 부분이다.


모든 사람의 지문이 전부 다른 것처럼 사람의 성격, 인성 등 또한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얼굴도 꽤 비슷하게 생겼고, 튀어나온 짱구 이마도 똑같이 예쁘고, 네 번째 발가락도 올챙이 발가락이고, 피부도 화이트톤에, 이목구비도 뚜렷한 게 너무 똑같은데 성격은 완전 정반대다.


똑같은 상황에서 화를 내고 소리를 쳐도 반응이 너무 다르다. 어젯밤의 이야기이다.




안방에 에어컨을 틀어야 하는데 송풍만 계속 나왔다. 작년에도 실외기 파이프가 좀 막혀 있어서 물이 고여있던 터라 갑자기 머리가 지끈했다.


계속 방치하면 에어컨 본체에 물이 고여서 벽을 타고 곰팡이 물이 뚝뚝 떨어질 것이 뻔한지라 얼른 앞베란다로 뛰어갔다.


아빠가 갑자기 뛰어가니 첫째와 둘째도 똑같이 뛰어서 따라왔다. 어쩜 이럴 때 보면 세 몸이 한 몸 같은 철저한 모습을 보인다. 역시 한 핏 줄이다.


앞베란다에 가서 파이프 끝을 살펴보니 물이 흐른 흔적이 없다. 어째 느낌이 싸하다. 또 막힌 것일까? 아내도 뒤 따라와서 도움이 안 되는 말만 늘어놓는다.


"이거 어떡하지? 물이 고였나 봐 큰일 났다."


그러려니 하고 얼른 일회용 옷걸이를 찾았다. 옷걸이를 끝까지 펴서 파이프 안으로 넣어 혹시나 모를 먼지더미를 뜯어 내기 위해서다.


찰나의 순간, 고개를 기웃기웃하는데 첫째와 둘째가 바로 옆에 붙어서 옴짝달싹하지 않고 있었다. 덥고 답답한데 순간 짜증이 나버렸다.


"자, 여기서 한마디만 하겠어요. 아빠가 이제 에어컨을 고쳐야 하는데 주변에서 걸리적거리다가 다치면 아빠 바카라임 안 져요. 얼른 방으로 들어 갓!"


그러자 첫째와 둘은 전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 너무 사랑스러웠다.


첫째는 베란다에 나 있는 안방 창문으로 슉 뛰어 들어가 버렸다. 말 한마디에 첫째는 아무렇지 않게 순응하고 사라졌다.


삐쳐서 들어간 것이 아니다. 아빠가 그러라고 하니까 그러했을 뿐이다. 첫째는 그런 딸이다.


그런데, 둘째는 오히려 자리를 잡고 털썩 주저앉았다.


"헤헤헤. 구경할래"


이런 식이다. 무슨 화를 내도 타격이 없다. 호통을 쳐도 가볍게 토스해버린다.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그래. 구경해라. 너 마음대로 해."


옷걸이를 길게 펴서 파이프를 쿡쿡 눌러보니 막힌 곳은 없었다. 단지 냉매가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틀어서 송풍이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아내의 반가운 말이 들렸다.


"여보, 찬 바람 나온다. 엄청 시원해."


그랬다. 시간을 조금만 두면 될 것을. 나의 사랑스러운 아내는 너무 빨리 호들갑을 떨었을 뿐이었다.


"둘째야. 에어컨 된데. 얼른 들어가자. 궁둥이 들어. 슈슈슈슉."


둘째는 귀여운 엉덩이를 번쩍 들고 우다다 뛰어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직은 너무나 귀여운 4살의 모습이다. 게다가 안방으로 뛰어가는 도중에 손에 들고 있던 것은 천장이고 바닥이고 싹 다 던져버리고 뛰었다.


둘째 다운 모습이었다.


방에 들어가자 첫째는 벌써 잘 준비를 하고 이불을 덮고 공주처럼 누워 있었다. 분명 5분도 안 돼서 잠이 들것이다.




누운 상태로 아내와 한참을 조잘조잘 대화를 하니 어느새 첫째는 잠이 들었다. 얼른 자,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알아서 잘 잔다.


문제는 둘째다. 아침잠도 많은데, 밤에 잠이 들기까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모든 지 다 해야 한다. 이야기도 본인이 끝내야 한다.


아무렴. 억지로 자라고 해 봤자 자지도 않으니, 알아서 떠들라고 내버려두고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항상 잠 좀 자라. 도깨비 온다. 라며 빨리 재우려고만 했는데 이 모습이 내일 아침에는 또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몰래 둘째의 침대로 가서 엄지발가락을 물었다.


살포시 물고 있으니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재잘재잘 떠들기만 바빴다. 그게 더 귀여워 왼쪽 발, 오른쪽 발을 번갈아 가며 물자 그때서야 눈치를 채고 해맑은 얼굴로 아빠를 바라본다.


"무야. 아빠. 언제 왔어. 아빠랑 잘래."


마치 라미네이트를 한 것처럼 가지런한 치아를 번뜩이며 웃어준다. 정말 행복했다. 그리고는 오늘의 사명을 다한 것처럼 잠이 들고 말았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아이들이 자란다.


그리고 반대로 자란다.


그래도 다른 자매들처럼 물고 뜯고 싸우지는 않는다. 첫째는 둘째를 보호해 주고, 둘째는 첫째를 믿고 따른다.


그런 아이들이 예쁘고 고맙다. 서로 너무 다른 모습이지만 서로 의지하고 잘 커가는 모습에 오늘도 아빠는 힘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