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한테 화내고 나서 씁니다 27.
교회에서 정신없이 계단을 오가다 첫째를 마주쳤다. 교회 언니들과 뛰어다니며 놀고 있던 모양이다.
조금의 회색빛 마음이 들긴 했지만 딸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손을 잡았다.
그러자 내 예상과는 달리 딸은 그 손을 뿌리치려 했다. 그리고는 주저앉아버렸다.
눈은 순간 급속도로 투명해지며 빛에 반사됐다. 눈물이 고인 듯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손을 곧바로 놓아주었다. 딸은 그대로 나를 비켜 도망쳤다.
황망했다.
딸이 왜 그러는지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까지 하는 행동을 보니,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정말 심장을 쿡쿡 찌르는 듯이 너무 아팠다.
일단, 교회 언니들한테 돌아간 딸을 뒤로하고 찬양대 연습을 위해 연습실로 향했다.
피아노 반주 소리에 음을 맞춰가며 목소리를 내는 중에도, 딸의 모습이 사진처럼 찍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내내 마음이 아팠다.
딸이 얼른 보고 싶었다. 딸한테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빠가 잘못했다고. 서운해서 그랬다고. 서운했는데 마음이 뾰로통하게 튀어나와서 괜히 우리 딸 마음을 아프게 한 것 같다고. 아빠가 다 미안하다고.
일요일 아침이면 어린이 예배를 위해 첫째와 함께 먼저 출발한다. 그동안 둘째와 아내는 여유로운 준비를 하고 한 시간 후 교회에 온다. 첫째는 이런 생활을 좋아한다. 교회에 가면 어른들이 반겨주고, 놀아주는 언니들이 있고, 율동도 하고, 과자도 먹고, 기도도 하고, 이런 생활을 즐긴다.
또 즐기기는 것이 하나 있으니, 같은 교회를 다니는 외할머니 댁에서 노는 것이다. 대신 엄마, 아빠, 여동생 모두 없이 외할머니와 단 둘이 일요일 내내 놀다가 저녁밥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온다. 외할머니 댁에는 사놓은 장난감도 많고 집에는 없는 TV도 있다. 일탈의 장소인 것이다.
이해는 한다.
본인도 7살에 불과하지만 일주일 동안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기에 외할머니 댁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것쯤으로 풀려고 한다는 것을.
하지만 너무 자주 가다 보니 가족과 함께 있어야 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참이었다. 마침 마주 앉아 계란밥을 먹고 있을 때 또 선전포고를 했다.
"엄마, 오늘 할머니집 갈 거야."
"저번주에도 갔는데 또 갈 거야? 오늘은 같이 있자."
엄마의 말에 첫째는 곧바로 삐쳐 이불속으로 숨고 말았다. 물론 엄마가 안된다고 할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물 흐르듯이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니 서운했다. 재밌게 놀아주지는 못하더라도 같이 낮잠 자고 짜장면 먹고, 누워서 뒹굴뒹굴하고 싶었다.
첫째는 부쩍 늘어난 연기력으로 눈물도 보이면서 떼를 쓰기 시작했다. 결국, 그냥 보내기로 했다. 말은 보내기로 했다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특히 아내보다 내성적인 나는 표정관리도 못했고, 마음의 응어리로 남겨뒀다. 그게 화근이었다.
바로 표현할 것을.
'아빠는 딸 안 갔으면 좋겠어. 딸이랑 같이 있고 싶어. 집에서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해. 유튜브도 3번 보여줄게.'
첫째와 단 둘이 차를 타고 교회를 가는 길.
아마 그때부터 딸은 눈치챘을 것이다. 아빠의 기분이 이상하다는 것을. SNS에서 보니 자식들은 엄마보다 아빠의 감정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빠는 자식들의 감정을 더 세밀히 살펴야 한다. 당시에 이 글을 미리 읽었다면 좋았을 것을.
교회에 들어가 딸은 딸대로, 나는 나대로 맡은 일을 시작했다.
어린이 예배 종료 후 공과공부를 하러 갈 때마다 딸은 나를 지나쳐 간다. 매주. 그럴 때마다 나는 씩 웃으며 "열심히 해!"라고 말을 건넨다. 딸은 주변 친구들 앞에서 쑥스러워 데헷, 이라는 소리를 내며 도망간다.
이번엔 예외였다. 난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딸의 청반바지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기에 딸이 지나간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딸도 그냥 지나쳐갔다. 마음이 찌릿함을 느꼈다.
딸도 충분히 아빠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음을 느꼈다. 안 좋은 쪽으로.
마음을 풀어주고 싶어서 괜히 짐을 갖다 놓으러 가는 척 공과공부 방으로 들어갔다. 딸은 아빠를 쳐다봤지만 그 눈에는 혼란이 그득했다.
'반가움. 무서움. 서운함. 왜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음.'
난 어색한 웃음으로 손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아마 눈과 입꼬리는 웃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부조화로 인해 딸은 더 마음이 이상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교회 계단에서 딸을 또 마주치자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찬양 연습 후 소예배실에서 놀고 있는 딸을 향해 곧장 갔다. 바로 대예배실로 올라가서 앉아야 하지만 딸이 더 중요했다. 연습 내내 생각했던 솔직한 말을 해주고 싶었다.
첫째를 불러 세우자 또 묘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찰나의 순간, 곧장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아침부터 서운해서 그랬어. 괴롭히려고 그런 게 아닌데, 아빠가 마음표현 하는 게 서툴러서 우리 딸 마음을 아프게 한 것 같아. 아빠는 딸이 이번 주에도 할머니집 간다고 하니까, 아빠는 같이 있고 싶은데 딸이 간다고 하니까 서운해서 그랬어."
그러자 딸은 이해한듯한 표정을 보이며 얼굴이 점차 맑아졌다.
"아빠 그러면 TV 못 보니까 유튜브 많이 보게 해 줄 수 있어? 나 하고 싶은 대로 놀게 해 줘."
"그럼, 그럼. 아빠가 잘못했으니까 집에서 마음대로 놀아."
딸은 그제야 온전히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안아주었다. 드디어 모든 체증이 내려갔다. 행복했다. 그런데 마음 한 켠에서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모든 협상의 과정에서 아빠이기에, 딸에게 질 수밖에 없는, 그런 명분, 그런 분위기, 이 모든 것 때문에 딸에게 압도되어 절대 유리한 협상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랴. 딸의 온전히 환한 미소를 본 것만으로 모든 게 허용됐다.
그 일 이후 SNS를 보다가 캡처한 내용을 자주 꺼내본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부모의 감정을 민감하게 느끼며, 특히 아버지가 지쳐 있고, 대화를 피하고, 감정적으로 멀어지면 아이도 불안과 위축을 느끼기 쉽다.'
아이들이 내 감정 쓰레기통이 되지 않도록 오늘도 노력해 본다. 오늘도 아빠를 용서한 딸에게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