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 엄마의 예고 입시 관찰기
본격적인 입시 레이스가 시작되는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아이는 예고 입시생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한다는 이른바 '9 to 10' 방학 특강에 돌입했다. 오전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하루 13시간 동안 꼬박 학원에 갇혀 연필을 쥐고 그림만 그리는 호된 훈련이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뚫고 학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십여명의 아이들이 내뿜는 열기와 알싸한 4B 연필 가루 냄새가 입구부터 코끝을 질식시킬 듯 풍겨 나오는 곳이었다.
학교 급식이 없던 우리 학창 시절, 엄마는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두 끼의 도시락을 정성스럽게 싸주셨다. 푹 눌러 담은 흰 쌀밥 위로 계란말이 하나를 얹어주던 엄마의 모습이 기억 한구석에 아련한데, 수십 년이 지나 내가 내 딸을 위해 다시 매일 두 끼의 도시락을 싸야 하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새벽 5시 반이면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냉장고 문을 열고, 아이가 하루 종일 체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칼로리와 영양소를 계산하며 반찬을 조리했다. 점심 도시락과 저녁 도시락, 그리고 중간에 허기를 달랠 간식까지 챙겨 도시락 가방을 싸는 수고스러움이야 아이가 스케치북 위에 흘리는 땀방울에 비하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 진짜 속내를 괴롭힌 것은 체력적인 고단함보다 마음의 무게였다.
'좋아서 시작한 미술인데, 이렇게 13시간 동안 기계처럼 그리다가 오히려 미술에 질려버리면 어쩌지?' '자유롭고 유연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예술가가 되길 바랐는데, 천편일률적인 입시 미술의 틀에 갇혀 아이의 사고와 시선이 편협해지는 건 아닐까?'
정답 없는 세계로 자유롭게 날아가라며 아이를 보내 놓고도, 정작 '입시'라는 현실의 틀 안에서 아이의 창의성이 닳아갈까 봐 조바심내는 나 스스로가 참 모순적이고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이성적인 사고로는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는 불안이 새벽마다 밥 짓는 김과 함께 피어 올랐다.
그 무렵 내가 새벽마다 도시락 전쟁을 치르는 동안, 남편의 밤도 바쁘게 돌아갔다. 방학 특강에 들어간 이후 아이가 하루에 소모하는 4B 연필의 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하루에 몇 장씩 큼직한 켄트지를 채워 넣어야 했으니, 무딘 연필심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남편은 매일 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거실 식탁에 앉아 수십 자루의 연필을 깎고 또 깎았다.
식탁 스탠드 조명 하나만 켜둔 어둠 속에서 스슥 스슥 커터칼이 나무를 베어 내는 소리가 밤늦도록 이어졌다. 연필 깎는 소리와 함께 얇은 나무껍질과 검은 흑연 가루가 식탁 위로 수북이 쌓여갔다. 신문지를 겹겹이 깔아 두어도 날리는 흑연 가루를 다 막을 수는 없었다. 매일 밤 깎아대는 연필 때문에 우리 집 거실 바닥과 식탁 주변에는 온통 검은 때가 흑연 자국처럼 수북하게 들어앉았고, 닦아내도 닦아내도 거실은 늘 은은한 4B 연필 냄새로 가득했다.
아침에는 엄마의 도시락, 밤에는 아빠의 4B 연필.
그렇게 우리는 아이의 예고 입시라는 거대한 전쟁터에서 자연스럽게 끈끈한 '전우애'를 나누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20여 년 전, 취업과 생존을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공학도를 선택하고 무미건조한 숫자의 세계를 버텨왔던 부부가, 이제는 딸아이의 꿈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호위하는 두 명의 든든한 호위무사가 된 셈이었다. 서로 말을 건네지 않아도 아침에 정성껏 싼 도시락통을 가방에 넣는 나와, 밤마다 날카롭게 다듬은 연필을 연필통에 정렬하는 남편의 눈빛 사이에는 묵직한 신뢰가 흐르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손가락 끝이 연필 가루로 새까맣게 물든 채 밤 10시가 넘어 지친 기색으로 귀가한 아이가 거실로 들어섰다. 아이의 시선이 식탁 위에 줄지어 놓인 윤기 나는 4B 연필들과 깨끗하게 비워져 돌아온 정갈한 도시락통에 머물렀다.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몸이었을 텐데도, 아이는 우리를 향해 조용히, 그러나 아주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조용하지만 환한 미소를 보는 순간, 새벽마다 밥을 짓던 몸의 피로도, 밤새 칼을 쥐고 연필을 깎던 손가락 마디마디의 뻐근함도 거짓말처럼 눈 녹듯 사라졌다.
입시 미술이라는 단단하고 차가운 벽 앞에서 아이의 사고가 굳어질까 조바심 내던 내 불안도 그제야 조용히 가라앉았다. 아이는 결코 입시 기계가 되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위해 새벽을 열고 어두운 밤을 지키는 부모의 진심 어린 사랑을 먹으며, 캔버스 앞에서 제 삶을 스스로 바카라임질 줄 아는 한 명의 단단한 주체로 자라나고 있었다.
9 to 10의 혹독하고 추운 겨울. 우리 집 도시락 가게와 연필 공장은 그렇게 새벽부터 밤까지 매일 따뜻한 희망의 냄새와 4B 연필 냄새를 풍기며 풀가동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