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행복은 잊은 지 오래야”-서툰 관심이 독이 되다

공대생 엄마의 예고 입시 관찰기

by시엔

"행복은 잊은 지 오래야."


아이가 나직하게 내뱉은 한마디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물리적인 충격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에 정면으로 부딪힌 것만 같은 아득함이었다.


예고 입시의 성패를 가를 마지막 분수령, 3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술 수업은 가혹했다. 아침 8시에 집을 나선 아이는 밤 10시가 되어서야 초점 없는 눈으로 돌아왔다. 하루 12시간이 넘는 고된 노동이었다. 방학이 끝나고 학기가 시작되자 레이스는 더 촘촘해졌다. 일주일 중 6일을 미술학원에 가고 나면, 겨우 하루의 시간이 남았다. 그마저도 학교 보충수업을 메꾸고 나면 오롯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순공 시간'은 거의 전무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아이는 기말고사를 준비해야 했다. 잠을 이기려 매일 새벽까지 눈을 비벼가며 바카라상을 지켰고, 급기야 코피를 쏟아내기도 했다. 텅 빈 캔버스를 채우는 법과 빽빽한 교과서의 공식을 동시에 소화해 내기에 아이의 육체는 너무 지쳐 있었다. 결국 받아 든 기말고사 성적표는 처참했다.


아이가 원해서 선택한 길이었지만, 이 길이 정말 맞나 싶어 눈앞이 캄캄해졌다. 내면에서 요동치는 불안감을 다스리지 못한 나는, 가장 속상했을 아이의 마음을 보듬어주기는커녕 모진 말을 쏟아내고 말았다.


"이러면 정말 예고 입학 어려워. 정신 바짝 차리고 더 분발해."


내 안의 이기심과 조급함이 아이에게 끊임없이 무거운 추를 달아매고 있었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방 안에서 내가 다시 물었다. "너 예고 가고 싶은 건 맞지?" 아이가 힘겹게 대답했다. "응, 정말 가고 싶어."


그 간절함 앞에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서둘러 말을 바꿨다. 내신이 아주 폭망 수준은 아니니 너무 부담 갖지 말자고, 이제부터 실기에 올인하면 되니까 그저 예전처럼 행복하게 미술을 했으면 좋겠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바로 그때였다. 벼랑 끝에 선 아이의 입에서 서글픈 진심이 흘러나온 것은.


"행복은 잊은 지 오래야."




숨이 턱 막혔다. 아이는 공부하는 것도, 종일 연필을 쥐고 미술을 하는 것도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했다. 육체의 고단함은 견딜 수 있다고 했다. 정작 아이를 가장 숨 막히게 만든 것은 엄마인 내가 보내는 '관심'이라는 이름의 압박이었다.


학원에서 돌아오는 아이에게 건넨 "오늘 어땠어?", 시험 기간에 건넨 "공부 어렵지 않니?"라는 일상적인 안부들. 나는 그저 서툰 다정함으로 건넨 대화의 시도였을 뿐인데, 벼랑 끝에 서 있던 아이에게는 그 모든 질문이 '오늘 그림은 잘 그렸니?', '이번 시험은 잘 볼 수 있겠니?'라는 날카로운 검문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릿속이 하얘졌다. 숫자의 세계에서는 풀리지 않는 난제를 만났을 때 공식을 대입하고 밤을 새우면 어떻게든 정답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오랜 기간 나는 온라인 게임에서 늘 그렇게 문제를 해결해 왔다. 하지만 자식의 마음이라는 설계도는 도무지 해석할 길이 없었다. 내 서툰 관심이 아이의 행복을 갉아먹고 있었다는 사실 앞에, 나는 철저한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다.



켜두었던 컴퓨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동안 예고 입시 확률을 계산하고, 비용을 따져보던 내 머릿속의 계산기들이 얼마나 부질없고 오만한 것이었는지 비로소 깨닫는다.


아이는 이미 제 몫의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걷고 있었다. 내가 해줘야 했던 것은 "더 분발하라"며 등을 떠미는 채찍질도, "오늘 어땠냐"며 마음을 살피는 척 건네는 감시도 아니었다. 그저 지친 몸으로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말없이 안아주는 것, 새까맣게 연필 가루가 묻은 손을 닦아주며 따뜻한 밥 한 끼를 내어주는 것, 그것 뿐이었다.


정답이 없는 세계로 걸어 들어간 딸아이의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고 다짐해 놓고선, 나는 여전히 눈앞의 성적표라는 '숫자'에 연연하는 초보 엄마일 뿐이었다. 깊은 밤, 아이의 방 불빛을 바라보며 조용히 마음을 고쳐먹는다. 이제 아이의 캔버스에 내 불안의 색깔을 칠하지 않겠다고. 그저 아이가 다시 '행복'이라는 단어를 기억해 낼 때까지, 나는 문밖에 서서 묵묵히 기다려주는 법을 배워야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헤매던 밤, 진짜 엄마의 입시는 이제야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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