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 엄마의 예고 입시 관찰기
수많은 계산과 고민 끝에, 우리 부부는 결국 아이의 손을 들어 주기로 했다.
숫자의 세계에서 일해온 엄마의 뇌는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를 가리키며 경고등을 켜대고 있었지만 딸의 눈빛에 서린 열정을 꺾을 수 있는 부모는 세상에 없었다. 그렇게 미술 전공이라는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가기로 다짐한 날, 나는 인터넷을 켜고 유명하다는 입시 미술학원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지역 맘카페와 입시 커뮤니티를 샅샅이 뒤져서 집에서 비교적 가까우면서도 예고 진학 입결이 탁월하다는 학원 한 곳을 찾아냈다.
전화로 상담을 예약하자 학원에서는 "아이가 그동안 그려둔 그림이 있다면 몇 점 가져오라"고 요청했다. 나는 아이의 어릴 적 드로잉북부터 최근 스케치까지, 그동안 집에 소중하게 보관해 두었던 아이의 흔적들을 조심스럽게 챙겨 들고 아이와 함께 학원 문을 열었다. 대학 졸업 후 회사 면접장에 들어설 때도 이만큼 떨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왠지 모를 긴장감에 두 손에 땀이 축축하게 고였다.
원장 선생님은 아무런 말없이 한참 동안 아이의 그림을 한 장 한 장 넘겨 보았다. 정적 속에서 그림이 넘어가는 소리만 바스락거렸다. 이윽고 시선을 거둔 선생님이 나직하게 첫 마디를 건넸다.
"소질은 확실히 있습니다. 하지만... 입시로 치면 많이 늦었습니다."
가슴이 쿵 하고 떨어졌다. 이제 겨우 중학교 2학년, 인생 전체로 보면 까마득하게 어린 나이인데 '늦었다'니. 조심스럽게 까닭을 묻는 내게 선생님은 현실을 냉정하게 일깨워 주었다. 예고나 미술 전공을 목표로 하는 대다수의 아이들은 이미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밝으며 입시 미술의 기본기를 다진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마음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려왔다. 아이는 어릴 적부터 달력 뒷면을 빽빽하게 채우며, 온몸으로 자신의 재능과 신호를 부모에게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신호를 미처 세심하게 읽어내지 못했고, '설마'라는 게으른 단어로 아이의 재능을 외면했던 것이다. 조금 더 일찍 알아채 주었더라면, 아이가 이 거친 출발선에서 조급해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엄마로서의 자바카라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원장 선생님은 이어 말씀하셨다. "그래도 타고난 감각과 표현력이 좋네요. 늦은 만큼 남들보다 두 배로 노력해야겠지만, 한번 시작해 보시죠."
'재능이 있다'는 그 한 줄기 희망의 끈을 잡고, 우리는 비로소 입시 미술이라는 거대하고 낯선 문을 열기로 했다.
하지만 학원 문을 나선 이후에도 내 안의 불안함은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과연 늦은 스타트를 복구할 수 있을까?', '아이가 이 가혹한 경쟁을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때때로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무거운 공기로 전달되곤 했을 것이다.
학원에 등록한 아이가 가장 먼저 시작한 과제는 역설적이게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닌, '4B 연필을 깎는 연습'이었다.
미술 칼을 들고 깎아본 적 없는 연필심을 다듬느라 끙끙대는 아이의 모습이 안쓰러워 슬그머니 다가갔다. "힘들면 엄마가 대신 깎아줄까? 연필 깎는 것 정도는 엄마가 도와줄 수 있는데."
그러자 아이는 손에 묻은 까만 연필 가루를 털어내지도 않은 채, 고개를 흔들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야, 엄마. 연필을 깎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과정의 일부래. 내가 직접 해야 내 손에 맞는 연필이 돼."
그 순간, 나는 말을 잃고 가만히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무딘 연필심을 깎아내며 자신만의 뾰족하고 단단한 선을 만들어가는 아이. 늦었다는 어른들의 평가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스스로 제 도구를 길들여가는 딸아이의 어깨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성숙하고 단단했다. 불안에 떨며 계산기만 두드리던 쪽은 엔지니어 엄마인 나였지, 정작 도화지 앞에 선 아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손가락에 검은 흑연을 묻힌 채 묵묵히 칼날을 움직이는 아이의 작은 손. 그 손 끝에서 깎여 나가는 것은 단지 나무 연필이 아니라 앞으로 아이가 마주할 숱한 불안과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이는 어설픈 엄마보다 한 걸음 먼저 진짜 예술가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