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 엄마의 예고 입시 관찰기
중학교 2학년, 워밍업에 불과했던 예비반 시기가 지나고 중학교 3학년이 되자 아이는 본격적인 입시반으로 올라갔다. 진짜 입시 레이스의 총성이 울린 것이다. 주 5일, 미술 학원에 가서 꼬박 3~4시간씩 몰입하는 하드 트레이닝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 예고 준비생에게 학업과 실기를 병행하는 것은 그야말로 극한의 스케줄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미술 학원으로 달려가 온 에너지를 쏟아붓고 나면 밤 10시가 되어서야 녹초가 된 몸으로 집 문을 열었다. 하지만 예고 입시는 실기만 잘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학교 내신 성적 역시 상위권을 유지해야 했기에 아이는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바카라상에 앉아 새벽 1~2시까지 공부를 이어갔다. 체력이 약했던 만 14세의 어린아이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여정이었고, 아이의 휴지통에는 코피를 쏟아낸 휴지 뭉치가 자주 쌓이곤 했다.
그럼에도 아이는 단 한 번도 힘들다는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미술 이야기를 꺼낼 때면 언제 피곤했냐는 듯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고, 스케치북 위에서 조금씩 늘어가는 제 그림을 신기해하며 눈이 반짝였다.
입시반에 들어간 이후 아이는 하루에 수십 자루의 4B 연필을 닳게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 집 거실에는 매일 밤 '연필 공장'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학원 첫 상담 날, 연필을 깎는 것도 그림의 일부라며 고집스레 혼자 칼을 쥐던 아이였지만, 피곤에 지쳐 새벽까지 바카라상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 그 부담까지 지게 할 수는 없었다. 부모 마음이란 게 참 그랬다.
결국 남편과 나는 매일 밤 아이가 학원에서 들고 온 수십 자루의 연필을 한 자루 한 자루 칼로 깎아내기 시작했다. 익숙지 않은 큼직한 커터칼에 손가락을 베이기도 수십 번. 하지만 뾰족하게 다듬어진 연필심 끝을 매만질 때마다 이 인내의 시간을 견뎌낸 아이가 언젠가 세상 앞에서 찬란하게 빛날 것이라는 희망이 피어 올랐다. 우리는 그렇게 거실의 조그만 모퉁이에서 작은 조명에 의지해 묵묵히 연필을 깎았다.
부모의 연필 가루가 쌓여간 만큼 몇 개월간 아이의 그림 실력은 놀라울 정도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하지만 예고 입시라는 거대한 산은 쉽게 정상을 내어주지 않았다. 한 차례 급성장한 이후, 아이는 늘지 않는 그림 앞에서 답답해하며 첫 번째 슬럼프를 겪기 시작했다.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의 연필통에는 선생님의 피드백으로 보이는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조금 더 담대하게 붓 터치를 해라."
"수채화의 탁도가 좋지 못하니, 물의 농도를 잘 살려라."
"소묘할 때 주변 배경을 더욱 깔끔하게 정리하며 그려라."
피드백을 읽는 순간, 엔지니어 출신인 내 머릿속에는 거대한 질문표가 떠올랐다. 명확한 수식과 공식에 익숙한 나에게 저 피드백들은 너무나 모호했다. 대체 '담대하게'라는 것은 센티미터(cm)로 치면 얼마큼의 크기인가? '물의 농도'는 몇 퍼센트(%)의 비율을 뜻하는 것이며, '깔끔하다'는 것의 정량적 기준은 도대체 어디까지란 말인가?
내게 저 말들은 그저 "느낌을 살려라", "분위기를 내라"는 추상적인 구호처럼 들릴 뿐이었다. 수학 문제에는 값을 도출해 내는 명확한 공식이 있고 틀리면 어느 단계에서 계산 오류가 났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림에는 정답도, 배반하지 않는 공식도 없었다. 같은 그림을 두고도 보는 이에 따라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정답 없는 세계.
어디가 틀렸는지 명확히 짚어줄 수 없어 답답해하는 나와, '담대함'과 '느낌'의 벽에 부딪혀 스케치북 앞에서 한숨을 내쉬는 아이. 숫자의 세계에서 온 엄마와 캔버스 세계로 뛰어든 딸의 거리는 그렇게 손에 잡히지 않는 '정답 없음'의 아득함 속에서 또 한 번 아슬아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