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수학에는 정답이 있지만, 그림에는 정답이 없다.

공대생 엄마의 예고 입시 관찰기

by시엔

중학교 2학년, 워밍업에 불과했던 예비반 시기가 지나고 중학교 3학년이 되자 아이는 본격적인 입시반으로 올라갔다. 진짜 입시 레이스의 총성이 울린 것이다. 주 5일, 미술 학원에 가서 꼬박 3~4시간씩 몰입하는 하드 트레이닝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 예고 준비생에게 학업과 실기를 병행하는 것은 그야말로 극한의 스케줄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미술 학원으로 달려가 온 에너지를 쏟아붓고 나면 밤 10시가 되어서야 녹초가 된 몸으로 집 문을 열었다. 하지만 예고 입시는 실기만 잘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학교 내신 성적 역시 상위권을 유지해야 했기에 아이는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바카라상에 앉아 새벽 1~2시까지 공부를 이어갔다. 체력이 약했던 만 14세의 어린아이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여정이었고, 아이의 휴지통에는 코피를 쏟아낸 휴지 뭉치가 자주 쌓이곤 했다.


그럼에도 아이는 단 한 번도 힘들다는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미술 이야기를 꺼낼 때면 언제 피곤했냐는 듯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고, 스케치북 위에서 조금씩 늘어가는 제 그림을 신기해하며 눈이 반짝였다.


입시반에 들어간 이후 아이는 하루에 수십 자루의 4B 연필을 닳게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 집 거실에는 매일 밤 '연필 공장'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학원 첫 상담 날, 연필을 깎는 것도 그림의 일부라며 고집스레 혼자 칼을 쥐던 아이였지만, 피곤에 지쳐 새벽까지 바카라상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 그 부담까지 지게 할 수는 없었다. 부모 마음이란 게 참 그랬다.


결국 남편과 나는 매일 밤 아이가 학원에서 들고 온 수십 자루의 연필을 한 자루 한 자루 칼로 깎아내기 시작했다. 익숙지 않은 큼직한 커터칼에 손가락을 베이기도 수십 번. 하지만 뾰족하게 다듬어진 연필심 끝을 매만질 때마다 이 인내의 시간을 견뎌낸 아이가 언젠가 세상 앞에서 찬란하게 빛날 것이라는 희망이 피어 올랐다. 우리는 그렇게 거실의 조그만 모퉁이에서 작은 조명에 의지해 묵묵히 연필을 깎았다.


부모의 연필 가루가 쌓여간 만큼 몇 개월간 아이의 그림 실력은 놀라울 정도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하지만 예고 입시라는 거대한 산은 쉽게 정상을 내어주지 않았다. 한 차례 급성장한 이후, 아이는 늘지 않는 그림 앞에서 답답해하며 첫 번째 슬럼프를 겪기 시작했다.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의 연필통에는 선생님의 피드백으로 보이는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조금 더 담대하게 붓 터치를 해라."


"수채화의 탁도가 좋지 못하니, 물의 농도를 잘 살려라."


"소묘할 때 주변 배경을 더욱 깔끔하게 정리하며 그려라."



피드백을 읽는 순간, 엔지니어 출신인 내 머릿속에는 거대한 질문표가 떠올랐다. 명확한 수식과 공식에 익숙한 나에게 저 피드백들은 너무나 모호했다. 대체 '담대하게'라는 것은 센티미터(cm)로 치면 얼마큼의 크기인가? '물의 농도'는 몇 퍼센트(%)의 비율을 뜻하는 것이며, '깔끔하다'는 것의 정량적 기준은 도대체 어디까지란 말인가?


내게 저 말들은 그저 "느낌을 살려라", "분위기를 내라"는 추상적인 구호처럼 들릴 뿐이었다. 수학 문제에는 값을 도출해 내는 명확한 공식이 있고 틀리면 어느 단계에서 계산 오류가 났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림에는 정답도, 배반하지 않는 공식도 없었다. 같은 그림을 두고도 보는 이에 따라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정답 없는 세계.


어디가 틀렸는지 명확히 짚어줄 수 없어 답답해하는 나와, '담대함'과 '느낌'의 벽에 부딪혀 스케치북 앞에서 한숨을 내쉬는 아이. 숫자의 세계에서 온 엄마와 캔버스 세계로 뛰어든 딸의 거리는 그렇게 손에 잡히지 않는 '정답 없음'의 아득함 속에서 또 한 번 아슬아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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