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걱정 많은 나의 둘째를 안아주며 -
“엄마 어제로 돌아가고 싶어요.”
“왜? 시우야?”
“내일 학교에 가면 공개수업 있어서 발표해야 해요.”
“발표하면 되지.”
“싫어요. 하기 싫어요.”
“하고 나면 뿌듯할걸. 그냥 해버려. 잘하잖아.”
“싫어요. 어려워요.”
둘째는 뭐가 그리 매번 어려운지 새로운 것을 해야 할 때면 걱정부터 한다. 막상 하고 나면 재밌었다며, 선생님이 칭찬해 줘서 기분 좋았다며 종일 뿌듯해할 거면서.
“엄마 생존수영 무서워요. 6학년이 돼도 해야 해요? 이거 안 가면 안 돼요? 평생 배를 안 타면 되잖아요.”
“엄마 내일 체험학습 가는데 가기 싫어요. 짐라인 탄다던데 떨어지면 어떻게 해요. 트램펄린 타다가 뼈가 부러지면요?”
“엄마 발표해야 하는데 무서워요. 틀리면 어떻게 해요. 친구들이 놀릴 것 같은데요.”
나도 걱정이 많은 성격이기에 둘째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 과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끔 그 걱정이 지나쳐 옆에 있는 사람을 짜증 나게 할 때가 있는 것을 보면.
“시우야 무서운 거 아니야. 다 안전장치가 있어. 떨어지지 않게 하지.”
“시우야 막상 해보면 별로 안 무서워.”
“시우야 친구들하고 하면 즐거울걸!”
“시우야 하고 나면 뿌듯할 거야.”
“시우야 용기를 내서 하고 오면 엄마가 마라탕 사줄게.”
“파이팅! 해보자. 아자아자. 얼른 학교가. 엄마 가야 해. 저녁에 보자!”
출근해야 하는 나는 빠른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다. 온갖 안심시키는 말을 하기도, 갖가지 방법으로 회유를 하기도 하면서.
그래도 통하지 않으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밝은 미소를 띠며 “우리 시우 파이팅!”이라는 억지로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듯, 아들에게 파이팅을 주입한다. 그리고는 재빨리 출근길로 나선다. 엄마가 나가버린 텅 빈 거실에서 아들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조용히 자기만큼 한 가방을 둘러맨다.
시우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기분일까?
울고 싶을까?
아니면 울고 있을까?...
처음이 쉽지 않은 아이.
욕심은 많지만, 낯선 상황에서는 주춤하는 아이.
익숙한 것에서 안정을 느끼는 아이.
매사 계획적이고, 걱정과 불안이 많은 아이.
둘째는 이런 아이였다.
어딘가 낯설지 않은 모습.
어릴 적 내 모습과 닿아 있었다.
거칠 것 없고, 두려움 없는 아빠의 성격을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빠를 빼다 박은 외모가 무색할 정도로 성격은 나였다.
어릴 적 나에게 일상은 하루하루가 도전의 연속이었다.
나는 항상 궁금했다.
‘왜 어려운 일은 줄어들지 않는 거지? 매번 새로 생겨나는 거지? 해내면 다음번에는 조금 쉽게 풀려야 하는데 왜 처음 하는 것 같이 어렵지?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결론은 같았다. 해내야 한다.
남들도 해내는데. 어렵다는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핑계로 그민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매번 용기를 냈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기대는 것으로.
이것만 해내면 엄마한테 짜장면 시켜달라고 해야지. 잘 끝내고 편한 마음으로 짜장면 먹을 거야. 예쁜 옷을 입고 발표해야지. 이 시험이 끝나면 하루 종일 HOT 노래를 들으면서 쉬어야지. 오늘 기분 좋아지는 노래를 듣고 학교에 갈 거야. 지난번에 즐거운 여행을 하고 왔잖아. 그러니 힘을 내보자.
이런 일상이 에너지가 되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리고 나는 결국 무언가를 해낸다.
그래도 날마다 도전인 것은 긴장되는 일이다.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두려움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어른.
그런데 그것도 아니더라.
매년 하던 공개수업도 시작하기 직전까지 스트레스가 심해 위통을 느꼈고, 수업 중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크게 소리를 내 보지만 그래도 떨려오는 솜소리가 새어 나가는 것을 보면 말이다.
또 매년 하던 업무도 지금 이게 맞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반복해 확인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어른이 되어도 하루하루가 어렵고 도전해야 하는 일의 연속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어렵고 두려웠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하루하루가 도전인 오르막길을 오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 길이 비교적 완만한 오르막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보면 평지 같아 보이는 그런 길. 경사가 있는 만큼 어려움도 극복해야 할 일도 걱정도 끊임없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오르막길이 가파르지 않다는 것! 경사가 심하다면 그리고 그 길을 끊임없이 가기만 해야 한드면 인생은 그야말로 고행일 것이다.
결국 인생을 산다는 것은 힘들다고 뒤로 물러날 수도 옆으로 빠질 수도 없는 것.
그저 자기 앞에 놓인 약간의 경사진 그 길을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오르는 것일 것이다. 행복하게 지치지 않고.
행복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잘 살기 위한 수단으로써 행복.
그 행복을 만들고 느끼며 살 수 있게 하려고, 하늘이 아이들에게 부모를 만들어 준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에는 시우가 좋아하는 분모자를 잔뜩 넣은 마라탕을 시켜줘야겠다. 마라탕을 보고 신난 시우가 자신의 입술보다 넓적한 당면을 후루룩 빨아 빨간 국물이 튄 얼굴을 하고, 앞니가 쏙 빠진 개구쟁이 미소를 보여줄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엄마와 웃으며 먹던 마라탕의 행복이시우가 해야 하는 어렵고 불안한 것들을 해낼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주기를 바란다.
나는 오늘도 내일을 위해 바카라가방에 이것저것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는 아이에게 조용히 다가가 살포시 안아준다. 그리고 아이의 정수리에 입을 맞춘다.
“시우야 행복해지는 일을 생각해 봐. 그게 어려우면 신나는 일을 생각해 봐. 그것이 너에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도와줄 거야. 그리고 엄마 아빠가 항상 옆에 있으니 힘들면 언제든지 부르렴. 그럼, 그때는 엄마 아빠랑 행복해지는 어떤 일을 같이 해보자. 행복을 찾아보자. 그러니 가방 정리 간단히 끝내고 얼른 자자. 사랑한다. 시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