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배고픔이 나의 고단함을
위로할 때

- 투정을 부린다는 것은 -

by홍당무

“엄마 저 요플레 먹어도 돼요?”

“인우야, 너 이미 많이 먹었어. 아침에 많이 먹으면 속이 안 좋을 수 있어. 안 먹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배고파요. 먹고 싶어요.”

“아니야. 너무 빨리 먹어서 그래. 조금 있으면 배불러서 답답할걸.”

“계속 먹고만 싶어요.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조금 참으면 안 먹고 싶어 져. 그리고 어떻게 매일 먹고만 있니. 조금 참으면 속도 편하고 좋아.”


첫째는 크려고 그러는지 아니면 빨리 먹는 습관 때문인지 오늘 아침도 2분 커트로 한 그릇을 뚝딱하더니 냉장고 앞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모습에 그만 먹으라 잔소리했더니, 저렇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첫째의 식탐은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남달랐다.

첫아기를 출산한 산모들을 데리고 신생아실에서 모유 수유 방법을 교육받을 때였다. 수유 자세를 취하자 어디선가 쪽쪽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 조산사의 교육이 시작되기도 전에 알아서 엄마 젖을 찾아 쪽쪽거렸다는. 그 소리가 얼마나 요란한지, 그 당시 거기 있었던 사람들 모두 배꼽 잡고 웃으며 내 가슴만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남다른 식탐으로 첫째는 자라면서도 분유며 모유 그리고 이유식까지 워낙 잘 먹었다. 먹는 것 가지고 속상해하거나 고민을 해본 적은 없었다.


“우리 아이는 너무 안 먹어서 고민이에요.”

“어떻게 해서든 먹이고 싶어서 따라다니면서 먹여요.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어요.”

“너무 안 먹어서 자기 전이라도 먹겠다고 하면 줘야 해요. 그때라도 먹여야죠.”


다른 엄마들이 이렇게 말할 때 고생되시겠다고 말은 했지만, 솔직히 깊이 공감하지는 못했다.


먹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해 본 적이 없기에 복 받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 그렇지 않음을 알았다.

과도한 식탐 그것이 문제였다. 아들은 식사를 쉽게 끝내지 못할 정도로 먹으려고만 했다. 걱정될 만큼. 그럴 때마다 아들을 진정시키는 것은 엄마인 나의 몫이었다. 그렇다 보니 시댁과 친정 부모님들은 아이가 크려고 그런데 먹지 못하게 한다며 나를 혼내셨다.


“크려고 그런다. 그러니 먹여라.”

“딸아 이때 먹여야지. 나중에는 먹이고 싶어도 안 먹는다. 지금 먹여. 그래야 크지.”


이 세상에 자식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아까운 사람이 어디 있겠나. 빛을 주고서라도 먹고 싶은 것은 사 먹이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거늘.

하지만 첫째는 어릴 때부터 배탈이 잦은 아이였다. 식탐에 비해 소화능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덕분에 집에는 어린이 한방 소화제부터 설사약 등 소화기계 관련된 약은 떨어지지 않고 늘 상비약으로 쟁여두는 편이다.


몇 달 전에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으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갖가지 검사를 했지만, 원인은 뚜렷하지 않았고, 담당 의사의 결론은 소화기관이 과도하게 일을 해서 멈춰버렸다는 것이다. 내 아들의 경우 식사 사이 공복 시간이 중요하다고 했다. 음식 섭취 후 소화되는 시간을 주고 그 후 약간의 공복으로 소화기관이 쉬고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다행히 아이는 병원에 입원해 며칠 간의 금식으로 말끔히 회복되었다.


이런저런 사건 사고 속에서 아들의 음식에 대한 집착은 남편과 나를 끊임없는 잔소리 하는 부모로 만들었다.


잔소리는 듣는 사람도 스트레스겠지만, 하는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나 역시 매 식사 시간이 스트레스였다. 나도 이 정도인데 아들은 오죽했을까.


오늘 아침에도 숟가락을 놓지 못하는 아들에게 잔소리로 하루를 시작했다.


“인우야, 너무 많이 먹으면 저번처럼 또 장이 멈춰 입원해야 할 수 있어. 조심해.”

“인우야 살이 찌면 키도 잘 크지 않아. 그리고 살이 찌면 찔수록 더 먹고 싶어지기도 해.”

“인우야…. 인우야…. 인우야….”


결국 수업 도중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배가 너무 아파요. 토할 것 같아요.”

“인우야. 아이고. 그러니 조금만 먹으라고 했잖아. 보건실에 가서 약을 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 네….”


아들과 비교하면 나는 식탐이 없는 편이다. 게다가 최근에 온라인 게임에서 말도 안 되는 일에 엮여 곤욕을 치르는 중이었다. 그러니 더 아무것도 먹기 싫었고 귀찮았다. 입안이 꺼끌 거리는 게 물만 마셨을 뿐인데도 모래를 삼키는 것 마냥 불편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케이크와 아이스크림도 전혀 먹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뭔가 먹고 싶다는 것은.

배가 고프다는 것은.

음식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마음이 편하다는 증거일 수 있겠다.

마음이 편안해야 힘듦이 없어야 무엇을 먹고 싶은지 뭘 먹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는 것처럼.


그러니 아들이 뭔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은.


편안히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구나.

내가 아이를 잘 돌보고 있다는 증거구나.


모든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고 편안해야 먹고 싶은 음식도 생각나고 입맛도 있다.

불편하고 힘든 상황에서는 그것을 해결하느라, 고민하느라, 걱정하느라

식욕도 입맛도 없다.

먹고 싶은 것을 생각할 여력도 없다.


그러니 아이와 먹는 것 가지고 실랑이하는 것이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만큼 아이는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존중받고 문제없이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우리 아이는 왜 이렇게 식탐이 많은지

왜 이렇게 식욕을 조절하지 못하는지


한탄만 할 것이 아니다.


그래, 나 잘 키우고 있네.

잘하고 있는 거네.


그러니 과도한 걱정은 내려두고 조금만 더 여유롭게 그리고 즐겁게 이 상황을 봐도 되겠구나.

여느 때처럼 잘하고 있으니.

잘 될 것이니.

이전 05화귀여움이라는 다정한 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