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이 식었는지 의심한 날에 내가 마주한 것들 -
‘오빠 생일인데 뭘 해줘야 할까?’
‘가방을 좋아하나? 옷? 지갑? 넥타이?’
‘오빠는 어떤 음식을 좋아할까? 저녁에 뭐 먹으러 갈까?’
연애할 때 내 머릿속은 이런 생각으로 항상 분주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궁금하기 마련이다. 물론 이런 지식은 그동안 수많은 바카라에서 습득한 내용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더라.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고, 예뻐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좋아하는 말투, 좋아하는 헤어 스타일, 좋아하는 옷차림, 좋아하는 선물 나는 그렇게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탐지하는 것이 내 일상이 되었다.
한 번은 매번 유명한 스파게티, 일본 라면, 샌드위치 가게를 찾아가 식사를 하다가 소문난 김치찌개집이 있다고 해서 함께 간 적이 있었다.
“오빠 여기 맛집이래. 가보자.”
“너 매운 거 잘 못 먹잖아. 다른 데 가자. 저기 옆에 피자 가게 유명한 데 있던데.”
“그래? 그래도 여기 맛집이래. 가보자.”
“그래.”
몇 번 거절하길래 권유에 못 이겨 음식점으로 들어가는 줄 알았다. 원래도 배려심이 가득한 사람이지만 이날은 유독 그랬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기 전 식탁을 정성스레 닦은 후 냅킨까지 깔고 그 위에 식기구를 놓지를 않나, 물티슈의 겉봉지를 까서 손을 닦으라고 손에 쥐어주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힐끔힐끔 뒤를 돌아 주방 쪽을 응시하면서.
오빠의 행동은 마치 내가 갖고 싶었던 가방을 주문하고 새것으로 포장해서 가져오겠다는 판매원을 기다리는두근거림과 어쩐지 닮아 있었다.
역시 음식이 나오자 오빠의 얼굴에는 발그레한 옅은 미소가 번졌다. 오빠는 먹는 내내 냄비에서 끓고 있는 빨간 국물을 국자로 떠서 앞접시에 덜고 또 덜어 먹으면서 너무 맛있다는 작은 비명을 연발했다. 송골송골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가며 양 볼이 빨개지도록 먹는 모습이 신기했다. 이날 남자친구는 밥공기를 추가해 두 그릇을 먹었다. 남자친구는 원래 먹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더라.
그동안 배려해 주고 있었구나.
내가 그를 탐색하듯, 나라는 세계를 부단히도 살피고 있었구나.
그리고 노력하고 있었구나.
남자친구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적셔왔다. 이 순간 나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을 만큼 든든한 마음의 지붕이 생겼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우주가 되었고, 결혼했다.
‘오늘은 오빠가 힘이 없는 것 같은데 좋아하는 부대찌개를 해줄까?’
‘내일 학부모 상담이 있다던데, 옷을 한 벌 사줄까? 와이셔츠를 좋아하겠지?’
‘뭘 좋아할까? 오빠가 좋아하는 게 뭘까?’
이제 남자친구에서 남편이 됐음에도 나는 여전히 남편이 무엇을 좋아할지 고민하고 탐색했다.
세월이 지나 남편과 나는 부모가 되었다.
“인우야, 뭐 먹고 싶어?”
“시우야, 어디 놀러 가고 싶어?”
“인우야 이 옷 어때?”
“시우야 이 신발은? 괜찮아? 색깔 마음에 들어?”
이제 내 세계에는 아이들이라는 존재가 들어왔고 점점 가득 차고 있었다. 아이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음식을 먹는지, 무슨 맛을 느끼는지, 무섭지는 않은지, 두렵지는 않은지. 아이들이 염려되기도, 누구보다 행복한 생활을 하길 바라고 또 바랬다.
진심으로 행복하길. 진심으로 잘 되길.
하루는 처음으로 바둑대회에 나가 상을 받아온 첫째와 오랜 준비 끝에 국기원 심사를 무사히 마친 둘째를 위한 축하 자리를 준비했다. 로제 떡볶이, 탕수육, 과자, 케이크 등 나름 마음고생과 체력 소모를 했을 아이들을 위한 저녁 한 상이었다.
“선희야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없네?”
“응?”
“크크 농담이야.”
“...”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내 정신을 지배하던 시계가 멈춰버린 느낌이었다. 나는 멍했고 아찔했다.
아이를 낳기 전 내 온 우주는 남편이었는데, 어느새 전세가 역전 되어버린 마음의 자리를 남편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했다.
“오빠 밥에 내 사랑을 듬뿍 넣어 두었는데 못 느꼈어? 맛이 다를 텐데.”
남편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찡긋 웃어 보였지만, 붉어지는 얼굴은 숨길 수 없었다. 그 후 시간이 지났어도 남편의 말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따라붙고 또 따라붙었다.
며칠 후 퇴근을 한 나는 평소대로 집안일을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따라 둘째가 졸졸 따라다니는 것만 아니면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시우야. 왜? 배고파? 뭐 줄까?”
“엄마, 그런데 왜 아빠 바카라상은 안 치워요? 내 바카라상은 맨날 더럽다고 하면서.”
“아빠는 자기 물건 만지는 거 싫어해.”
“엄마, 왜 아빠 옷은 안 빨아요?”
“아빠는 자기 옷은 자기가 빠는 것을 좋아해.”
“엄마, 왜 엄마는 아빠 팬티를 이렇게 개워요? 내 것과 모양이 다른데요?”
“아빠는 이렇게 하는 것을 좋아해. 다른 모양으로 접어놓으면 불편해하더라고.”
둘째와 이야기를 하다 알았다. 일상적으로 했던 나의 모든 행동의 끝에는 남편이 있었다는 것을.
내 영혼은 남편에게 맞춰져 있었고, 내 행동의 모든 사소함에는 남편에 닿아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찰하고 그것을 기꺼이 해주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남편을 향한 내 사랑이 식었는지 의심하고 또 의심했었다.
그런데 오히려 내 모든 것들은 오히려 더 확고히 남편에게 가 있었고, 그 사람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또 배려하고 있었다.
그 사람을 삶과 행복을 위해.
그래 사랑이지.
오히려 더 깊은.
그래도 아이들을 질투하는 남편이 귀여워, 오늘 저녁은 연애 때 밥 두 그릇은 뚝딱했던 김치찌개를 끓여 줄 생각이다. 그때처럼 맛있다는 말과 함께 땀을 흘리며 정신없이 두 그릇을 비울 수 있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