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향한 나의 세상이
움직이기 시작한 날

- 엄마와의 통화 내역에 왼쪽 화살표가 찍히기 시작했다-

by홍당무

“엄마~ 뭐 해?”

“그냥 있지.”

“아닌데, 주변이 시끄러운데. 또 일하러 갔지?”

“걱정하지 마. 잠깐 나왔어. 나는 서 있기만 했어.”

“엄마 서 있는 것도 안 돼.”

“오른쪽 무릎은 아예 안 아파.”

“그래도 조심해. 그러다 큰일 나.”

“알았어. 끊어.”

“엄마!”

뚜뚜뚜


뭐 하고 있는지 딸의 묻는 말로 시작해 잔소리를 거쳐 끝에는 엄마의 알았다는 대답으로 끊겨버리는 통화. 그리고 이내 드는 서운한 마음.


엄마와의 통화 후에는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다. 사방이 꽉 막힌 벽에 이야기하는 기분.


엄마와의 전화는 내가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엄마, 왜?”

“아니 그냥. 딸아 밥은 먹었어?”

“응 당연히 먹었지. 걱정하지 마. 내가 애도 아니고.”

“응. 누가 괴롭히는 사람은 없지?”

“당연하지. 걱정하지 마.”

“그래도 항상 조심하고 일찍 일찍 다녀.”

“응 알았어. 엄마 끊어.”

“아! 선희야.”

뚜뚜뚜


1년 전까지만 해도 엄마와 나의 통화는 이랬다.

나는 부탁할 일이 있지 않고서는 먼저 전화하는 법이 없었다. 그때는 전화벨 소리와 함께 핸드폰 액정에 뜨는 엄마라는 단어를 보면서, 엄마가 거는 전화는 당연하다 생각했다. 하루에 세끼의 식사를 하듯, 이를 닦듯, 방 청소를 하듯, 그저 엄마의 전화를 받는 것은 정해진 루틴 중 하나였다. 가끔 루틴이 깨져도 그다음 날이면 아무렇지도 않게 원래의 루틴대로 돌아가듯, 하루 정도 전화가 없어도 그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그리고 우리는 통화했다. 여느 때와 같이.


마음대로 끊어버린 전화에 엄마가 어떤 마음일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당연했기에. 나는 딸이고, 엄마에게 나는 자식이기에.

엄마가 딸을 궁금해하고 먼저 전화하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딸아. 밥은 먹었니?”

“응 엄마.”

“인우는 잠은 잘 잤고?”

“엄마 너무 힘들어. 아기 키우는 거. 인우가 잠도 잘 안 자고, 새벽에 분유 먹이느라 나는 잠도 못 잤어.”

“다 그렇지. 애 키우는 게 어디 쉽니.”

“응 그렇지. 알았어. 끊어 엄마. 또 잔소리하려고.”

“아이고, 너 힘들까, 봐 그러지. 잘 챙겨 먹고.”

“알았어. 끊어 엄마. 인우 운다.”

뚜뚜


엄마가 됐음에도 엄마의 마음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잘 참고 잘 견디는 듯했던 나도 엄마 목소리에 아이가 되어 하소연하기 바빴다.


좋은 소리 하나 없었지만, 엄마는 매일 전화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는 육아며 살림이며 온라인 게임 일까지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이미 녹초가 되어 버린 날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털썩 주저앉은 엉덩이는 바닥과 한 몸이 되었는지 좀처럼 일어날 줄 몰랐다. 한참이 지난 후 간신히 일어난 나는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인 후, 오늘 하루를 생각했다.


'오늘 하루도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네. 나 잘 하고 있는거 맞겠지? 열심히 살았는데.'


분명 최선을 다해 산 하루였건만 이상하게 무언가 하지 않은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그 개운하지 못한 기분에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아 엄마.’


그러고 보니 엄마와 전화 통화를 며칠 동안 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들어 통화내역을 보는데, 핸드폰 화면을 밑으로 한참을 쓸어내리고서야 엄마라는 단어를 찾았다.

3일 전 통화가 마지막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3일 전에 찍힌 엄마라는 단어를 꾹 눌렀다.


“엄마. 뭐 해? 별일 없지?”

“그렇지. 너는 별일 없지?”

“나도 없지.”


이상했다. 평소 같았으면 오랜만의 통화니, 밥은 먹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물어봤을 엄마인데, 그렇지 않았다. 뭔가를 숨기는 듯.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엄마는 전화가 없었다.


숙제를 마치지 못한 학생이 된 듯 하루종일 엄마와의 전화통화가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다시 내 핸드폰 통화내역에는 하루에 한 번씩 엄마라는 단어가 찍히게 되었다. 물론 수신 모양의 화살표가 아닌, 발신 모양과의 화살표와 함께.


상황이 역전된 듯 먼저 전화를 하기 시작한 그날부터 엄마는 내 말의 타이밍에 맞춰, 자꾸만 말을 아끼려는 모습을 보였다. 끊기 위한 타이밍을 찾는 듯.


나중에야 알았다.

엄마가 많이 아프시다는 것을.


엄마는 결국 1년 사이에 척추관협착증이라는 두 번의 수술과 양쪽 무릎을 인공관절로 모두 바꾸는 수술을 해야 했다.


“엄마 뭐 해? 아픈 곳은 좀 어때?”

“뭐 그렇지 뭐.”

“엄마 지금 일하고 있지?”

“아니야 나는 서서 보기만 했어.”

“그것도 하지 말라니까. 집에만 있어. 조심해야 한다니까.”

“내가 알아서 해.”

뚜뚜뚜


잔소리가 역전되어 버린 우리.

통화를 마무리하려고만 하는 엄마.


할 말이 남아 있음에도 끊겨버린 통화에, 멍하니 전화기를 붙잡고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오는 한숨.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독한 감기약을 먹은 듯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엄마와의 통화는 바쁘고 정신없는 내 세상을 정지시켰다. 가라앉은 마음은 좀처럼 기운을 내지 못했다. 이런 게 걱정이라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걱정.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겠지.

되돌아오지 않는 마음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이었고, 배려였고, 걱정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밤을 이런 마음으로 보냈을 엄마에게 미안했다.


지금의 엄마는 어떤 마음일까?

이제야 엄마의 마음에 응답하려 하는데, 도리어 피하는 엄마.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게 당연한 마음일 텐데, 엄마의 사랑은 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사랑을 오히려 거두어들이는 마음. 보여주지 못하는 마음. 사랑 한편을 가리는 마음.


내 마음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사랑.


나는 오늘도 엄마가 끊어버린 전화 토화에 마음이 아려온다. 전화기를 타고 건조한 볼에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띠리리릭


현관문 소리에 한참을 귀에서 떼지 못한 핸드폰을 내려놓고, 떨리는 손으로 눈물을 닦는다.


“아들 왔어! 오늘도 잘 지냈지! 어서 손 깨끗이 씻고 와. 밥 먹자.”


나는 힘을 내 환하게 웃어 보인다.

화장실로 들어간 아들을 보며 어느새 내려가 버린 입꼬리를 억지웃음으로 다시 한번 끌어올려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엄마도 이 고기 좋아할 텐데. 잘 드셔야 할 텐데…. “

이전 08화내 일상의 모든 사소함에 살고 있는 남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