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
내 주위에는 ‘귀여워’라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이 둘 있다.
남편과 바로 옆자리의 온라인 게임 동료.
“선생님, 이 아이 너무 귀엽지 않아요? 배꼽 옆에 상처가 나서 보여 달라고 했더니 자기 배꼽은 손으로 가리고 보여주잖아요. 배꼽이 부끄러워해서 그랬대요.”
“아 네 귀엽네요.”
“선생님, 이 아이 보세요. 머리띠 너무 귀엽지 않아요? 이 아이에게 찰떡이에요.”
“아. 그렇네요.”
내 옆자리 온라인 게임 동료는 맑고 큰 눈을 가진 예쁜 사람이다. 바카라상 위 소품도 알록달록 귀엽고, 어느 것 하나 우울함과 연결된 물건이 없다. 발랄하고 생기 가득한 사람. 귀엽다 귀엽다를 연발하며 웃는 온라인 게임 동료의 모습에 매번 신기함을 느낀다.
“선희야. 네 아들 봐라. 귀엽지 않니?”
“뭐가?”
“봐봐. 전집을 번호순으로 배치해 두었어. 귀엽다 귀여워.”
“...”
“선희야. 인우 귀엽지 않니?”
“인우가? 왜?”
“사춘기 와서. 봐봐라. 앞머리가 눈을 찌르는 거.”
“그게 귀여워?”
“다 컸잖아.”
“...”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귀여워를 입에 달고 사는 두 번째 사람은 남편이다. 남편은 연애 때부터 그랬다. 무슨 남자가 귀여운 것을 그리 좋아하는지. 생긴 모습은 딱 상남자에 가지고 있는 물건도 귀여움과는 거리가 멀면서 말이다.
“저기 지나가는 애 봐봐. 귀엽지 않아? 엄마한테 삐졌다고 울고 있어. 크크크.”
“...”
세상 모든 것이 귀여운 듯 남편은 그렇게 웃고 또 웃었다. 그것이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불평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음에 감탄할 뿐이었다.
그런 남편 덕에 걱정부터 하던 내가, 불안한 감정에 힘들어하는 내가 조금은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한 번은 나라면 괴로워서 버티기 힘들 것 같은 일을 겪고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오빠는 스트레스 없어? 힘들면 말해. 내가 도와줄게.”
“없어. 스트레스.”
“정말?”
“응 정말. 난 정말 괜찮은데.”
남편은 항상 괜찮다. 스트레스가 없다고 말했다. 사실이 아닐 거라고 사람이 어떻게 그렇냐고 의심하면서도, 워낙에 긍정적인 사람이라 믿었다. 그런 남편을 보는데, 귀 위에 낯선 자국이 보였다.
동그란 모양.
말로만 듣던 원형탈모의 흔적이었다.
‘내가 잘못 봤겠지. 내 남편이 어떤 사람인데. 원형탈모는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데. 저렇게 긍정적인 사람이 왜? 아닐 거야.’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몰래 남편의 머리카락을 흘깃흘깃 훔쳐봤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그란 자리는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동그랗게 머리카락을 잃은 자리에 뾰족한 가시 같은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솟아나 있기도 했다.
삐죽삐죽 새로 자라난 머리카락은 유독 날카로워 보였다. 찔리면 아플 정도로.
꾹꾹 놀려있던 스트레스가 뾰족한 창이 되어 뚫고 나온 것만 같았다.
‘그동안 힘들었구나.’
‘스트레스가 없다고 정말 없는 게 아니었구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참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귀엽다는 말은 어쩌면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한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예쁘다 예쁘다 하면 정말 예뻐지는 것처럼.
나는 남편의 귀엽다는 말이 주문인 것을 결혼한 지 14년이 돼서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 저 토할 것 같아요. 뛰쳐나가도 놀라지 마세요.”
“네? 어디 아파요? 아픈 것도 모르던 사람이. 괜찮아요?”
“네. 윽..”
매일 귀엽다는 말을 연발하던 옆자리 선생님이 창백해진 얼굴을 하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최근 업무가 과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 힘들었구나.’
‘이 선생님도 스트레스가 없는 것이 아니었구나.’
노력한 거였구나. 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그들이 바라보는 귀여운 세상은 노력해 얻은 세상이었던 것.
자신에게 거는 귀여운 주문.
나도 오늘은 그들과 같은 시선에게 이 세상 귀여운 것들을 찾으려 노력한다.
나의 귀여운 시선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도록.
그리고 내 세상도 귀여워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