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내 편을 만들어 가는
중입니다.

- 원수와 같이 싸우던 두 형제가 서서히 한 세트가 되기까지 -

by홍당무

“엄마 형아 언제 와요?”

“왜 시우야? 심심해?”

“히히히히"


둘째에게는 ‘형 전용 감지 센서’가 있나 보다. 그리고 그 센서는 언제나 on!


형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어느 놀이터에 있는지 모두 꿰뚫는 성능 좋은 센서다. 그 성능이 얼마나 훌륭한지, 첫째와 연락이 되지 않는 순간에 둘째에게 물어보면 백발백중이다. 그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참 많이도 싸웠다. 둘째가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였으니, 어느덧 싸움의 경력도 거의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런 둘째가 이번 여름 방학을 하고 난 후부터 형을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돌 무렵 처음 걷기 시작하던 그때처럼. 그때는 형을 따라다니면서 장난감을 던지고 무너트렸다면 지금은, 형이 나가면 귀신같이 일어나 본인의 바카라을 들고 형 방으로 간다. 본인이 방의 주인인 것처럼 에어컨을 켜고, 바카라상의 등을 켠 후 의자에 앉아 공부를 시작한다. 마치 본인이 형이라도 된 것처럼.


그러다 의자를 빙그르르 돌리기도 하고, 본인의 연필 대신 형의 샤프를 꺼내 들기도 한다. 다리도 형처럼 쩍 벌리고 앉아 샤프로 바카라상을 두드리며 흥얼거리기까지.


둘째의 이런 행동을 보고 있으면 큭큭 웃음이 새어 나오지만, 입꼬리에 힘을 주고 참으며 조용히 문을 닫아준다. 그러면 5분도 안 되어 문이 빼꼼히 열린다. 형이 언제 오냐는 말과 함께. 형 놀이는 형을 기다리는 둘째만의 표현이었나 보다. 모르겠다는 엄마의 말에 둘째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다시 형의 의자에 앉아 빙그르르 한 바퀴 돌린다. 그러다 또다시 나와 말한다.


“엄마 형아 집에 안 오고 영어 학원으로 바로 갔나 봐요.”

“응 그런가 보다. 얼른 공부하고 있어. 엄마 할 일 좀 할게.”

“네~”


앞니 두 개가 쏙 빠진 채 씩 웃으며 대답하는 둘째가, 웃기기도 하고 참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매번 이렇게 사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다른 성을 가진 내가 남자아이 둘을 키운다는 것은 정말이지 말과 생각이 통하지 않는 동물과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순간이 많다. 어느 날은 길가에 있는 돌덩이에 이야기하는 것이 이보다는 낫겠다 싶을 정도일 때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형제간의 다툼.

시도 때도 없는 이어지는 거친 장난쯤이야 그래도 참을 만했다. 하지만 다툼, 그로 인해 서로 억울하고, 서로 피해자라 우기며, 거칠고 강하게 표현하는 감정들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특히 내가 보지 못한 상황에서 싸운 후 쪼르르 달려와 이르면, 감정에 사로잡혀 서로 자신의 입장만 이야기하는 탓에 누가 잘못했는지 파악하기도 어려운 과제 중의 하나였다. 게다가 어쩜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지 이해되지 않는 순간도 참 많았다.


나는 싸우는 아이들과 강경하게 훈육하는 남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는 했다. 우리 집에서 나는 남자들에 둘러싸인 공주는커녕, 기센 남자 셋 사이에서 점점 작아지는 집안의 유일한 을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 내게 소원이 있다면….

제발 하루만 싸우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있길. 평화로운 하루, 그 딱 하루만 나에게 선물로 주시길.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 빌고 또 빌게 된다.




하루는 여러 가지 일로 스트레스가 극심한 날이었다. 그런 날이면 나는 조용히 운동복을 입고 아파트 지하 헬스장으로 간다.


“얘들아 엄마 운동 가야겠어. 싸우지 말고 한 시간만 숙제랑 공부하고 있어.”

“네~ 다녀오세요.”


서로 싸우고 울면서 전화 올까 봐, 운동 간 지 20분도 안 돼서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 할까 봐 염려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운동을 가야 했다. 안 그러면 몸에 들어찬 뜨거운 기운을 아이들에게 풀어 버릴까 봐 두려웠다.


“시우야 형아 말 잘 듣고 있어. 엄마 아빠가 없으면 형이 엄마 아빠 대신이야. 알았지!”

“인우는 동생 잘 보살펴 주고! 잘할 수 있지! 딱 한 시간이야.”

“네”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꺼내는 순간까지도 뒤통수가 따가워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발은 앞으로 나가고 있지만 마음은 집 안에 머물러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문을 닫는 순간에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순간에도, 헬스장으로 걸어가는 도중에도 아이들 걱정뿐이었다. 다시 돌아가야 할지 수백 번은 더 고민했다. 하지만 헬스장 앞까지 왔으니, 이왕 온 거 눈을 딱 감기로 했다.


‘일단 내가 살고 보자.’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니, 몸과 마음이 개운해졌다. 마음을 짓누르던 뜨거운 기운이 땀과 함께 증발해 버린 기분이었다.


‘아! 아이들!’


번쩍 일어나 풀어져 있던 짐을 잡히는 대로 가방에 던져 넣고 숨 돌릴 틈도 없이 집으로 향했다. 걸으면서 이어폰을 빼 가방에 넣고 마저 뒤적이며 정리를 했다. 머릿속은 또 다시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별일 없겠지. 우리 애들도 이제 초등학교 6학년과 3학년인데, 이 정도는 둘이서 있을 수 있어야지. 괜찮을 거야. 설마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면 몰래 게임을 하고 있나?’


재빨리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누름과 동시에 내 귀는 ‘띵동’하는 엘리베이터 도착 음을 마중 나갔다. 초조한 손가락은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피아노 치듯 벽을 두드렸고, 눈은 층 수 현황판만 바쁘게 쫓고 있었다.


‘아 엘리베이터가 왜 이렇게 안 오지?’

오늘따라 층마다 서는 엘리베이터가 정말 야속했다.


‘아…. 택배기사님….’


이미 집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어쩔 수 없는 답답함에 핸드폰을 켜고 평소 장을 보는 앱에 접속해 필요한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시간이 빨리 가길 바라면서. 장을 보는 와중에도 모든 감각은 엘리베이터를 떠나지 못했다.


‘띵동'

엘리베이터 도착 음과 동시에 안으로 쏜살같이 들어가, 닫힘 버튼을 두드렸다. 스르르 문이 닫히자, 올라가는 숫자만 바라보며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초조한 기다림 끝에 도착한 집. 무거운 기운이 무릎까지 가득 가라앉은 듯 침묵에 가까울 정도로 조용했다. 그토록 바라던 고요인데, 낯선 적막감에 온몸의 털이 삐죽삐죽 서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는 천천히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조심스레 문고리를 잡았다.


문밖의 고요는 집 안까지 이어졌다.

아주 조용한 집안. 활발한 아이들 때문에 온갖 소음이 가득한 우리 집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재빨리 우리집 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맞는데…. 우리 집….’




“인우, 시우야 뭐 해? 엄마 왔어.”

“엄마! 시우 방이 너무 더워서 제 방으로 오라고 했어요. 같이 공부하고 있었어요. 저희 잘했죠?”

“어…. 정말 멋지다…. 얘들아. 엄마 완전 감동! 완전! 완전!”


잘했다는 칭찬보다 더 상위 버전의 칭찬을 해야 할 것 같아, 아이들의 언어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단어를 총동원해 칭찬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있을 때보다 싸우지도 않고, 해야 할 일을 바카라임껏 하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더 잘하고 있었다.


한층 상기된 목소리로 엄마에게 “잘하고 있죠?”라고 말하는 첫째의 두 눈은 유난히도 까맣고 반짝였다. 게다가 상기된 발그레해진 양쪽 볼과 살랑살랑 웃고 있는 입꼬리까지 누가 봐도 본인을 자랑스러워하고 이 상황을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시우야, 우리 공부 열심히 했다. 좋다. 그치!”

“응 형아.”


“엄마 공부 사이좋게 열심히 했으니까, 시우랑 자전거 타러 놀러 나갔다 와도 돼요?”

“응 그래, 열심히 했으니 조심해서 다녀와.”

“네 감사합니다. 시우야 가자.”

“응 형아.”


이게 무슨 일이지 싶다가도 이런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앞으로도 이 평화가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기도했다. 그렇게 사이좋은 형제처럼 자전거를 끌고 싱글벙글 웃으며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엄마! 형이 저만 버리고 먼저 가버렸어요. 저도 같이 가고 있었는데!”

“아니에요. 시우가 없어서 제가 좀 기다리다가 먼저 간 거예요.”

“아니에요.”

“아니라니까요.”


결국 싸우고 돌아왔다. 감동이 한 시간도 채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날 이후로 둘째는 형을 부쩍 따르기 시작했다. 형이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러 갈 때도, 학원에 갈 때도 함께 가려고 했다.


그렇게 둘이 사이좋게 함께 하는 시간이 신기하게 점점 늘어갔다. 마치 둘이 한 세트가 된 것 같이 지내기 시작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 난 것처럼 서로 고자질하고 놀리고 싸우던 아이들이었는데…. “싸우는 것도 다 한때다."라는 어른들의 말처럼 그 시기가 있나 보다.


아이들을 향한 웃음 뒤로 그동안의 고민과 걱정이 스쳐 지나갔다. 서로를 긁는 날카로운 소리, 격정적으로 치닫던 날 선 감정들, 그로 인해 서로 괴롭고 힘들어했던 시간. 그것을 지켜보던 일은 참 고된 일이었다.


‘과연 형제를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의 괜한 욕심은 아니었을지. 내가 조금 더 현명한 엄마라면 아이들이 덜 싸웠을지. 내가 조금 더 너그러웠다면 아이들 마음이 조금은 덜 무거웠을지.' 무수히 많은 날을 자바카라과 혼돈의 시간으로 보내야 했다.


복잡한 마음 사이로,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버텨냈던 우리 가족의 마음이 몽글몽글 내 가슴에 뜨겁게 차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 참 대단하다.'


그 순간 집이 비 온 뒤 예쁘게 피어나는 무지개 같이 물들기 시작했다.

사랑이 눈에 보인다면 이런 색이 아닐까. 마음까지 달콤해지는 색이 눈으로 귀로 코로 들어와 마침내 마음까지 들어왔다. 어깨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고, 가슴이 쫙 펴졌다.


‘내가 가족을 이루고 있구나.’


볼이 자꾸만 뜨거워지면서 눈이 시큰거렸다. 뜨거운 눈물이 차 올랐다. 눈을 깜빡이면 반짝이는 별 한 방울이 똑 떨어질 것만 같았다.


내일도 오늘처럼 좋았다가 싸우기를 반복하겠지만, 이 과정에서 아이들의 가슴에 형제의 사랑이 새겨지는 것은 아닐지. 이것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편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아닐지 싶다.


오늘 처음으로 형제를, 의지할 수 있는 인생의 짝꿍을 만들어 주길 참 잘했다 싶은 생각이 살짝 들었다.


"엄마! 시우가!"

"형아가!"


'정말 잘한 거 맞겠지?'

또다시 싸우고 각자의 바카라상에 앉아 뾰로통해져 있는 아이들을 보며.


이전 10화아이의 내일을 지키는 우리만의 고단하고 애틋한 추격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