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내일을 지키는 우리만의 고단하고 애틋한 추격전

- 육아하는 우당탕탕 우리 집 -

by홍당무

띠리리릭.


“엄마 다녀왔습니다.”

“엄마 동생이랑 1층에서 만났어요. 다녀왔습니다.”


“둘 다 이리 와서 핸드폰 내놓아라.”

해맑은 아이들의 목소리 너머로 들려오는 아빠의 굵직하고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은 놀란 토끼 눈을 한채 쭈뼛쭈뼛 거실로 들어왔다.


우리 집은 아이들이 하루에 보통 한 시간 정도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남편이 통제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아이들이 아빠에게 전화해 핸드폰 시간을 늘려달라고 하는 요구가 잦았다. 학교에서 자료 조사를 해야 한다며, 모르는 것을 인공지능에 물어봐야 한다면서. 하지만 알고 보면 게임을 하다 핸드폰 시간을 다 써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같은 성이라서, 남자는 남자의 마음을 잘 아니 그럴까?

평소 남편은 상상하지도 못할 아이들의 거짓말을 참 잘 잡아낸다. 그럼 나는 그 거짓말이 진짜로 드러나기 전까지 ‘에이 설마'하며 은근슬쩍 아이들의 편을 들고는 한다.


“오빠, 아니야. 우리 애들은 그렇지 않아. 아직 어린애들이 무슨 그런 거짓말을 한다고.”


사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혼자 학교를 오갈 때쯤부터 아이들과 우리의 추격전이 시작되었었다.


거짓말을 하면 잡아내 혼내는, 마치 쫓고 쫓기는 관계 같은.


한 번은 형제끼리 싸우면 사자소학을 써야 하는 우리 집 규칙에 따라, 그날도 잘 놀다 마지막에 다투는 바람에 필사노트를 펴야 했었다. 눈치 빠른 둘째는 사태를 일찍이 받아들이고 방으로 들어가 이미 필사를 시작한 반면, 한 성질 하는 첫째가 문제였다. 화가 잔뜩 난 첫째가 자신의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결국 아빠에게 대들고 만 것이다. 그 바람에 사자소학 부모 편까지 추가가 되면서 필사해야 할 양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아마 한 시간은 꼬박 써야 할 정도였다.


지켜보는 내 속이 타들어갈 정도로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그만 이성을 찾아야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이는 이미 불같이 타오르는 악마에게 완전히 잡아먹혀 버린 듯싶었다. 아이의 눈은 눈물도 말려버릴 만큼 이글거렸고, 앙다문 붉은 입술에서는 뾰족하고 날 선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어리고 연한 가슴이 뜨거운 마그마를 마구 뿜어대는 활화산으로 변해 버렸다. 인정사정없이 분출되는 그 마그마는 아이의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만 같았다. 결국 동생보다 30분이 지나고서야 필사를 시작했다.


쿵쿵. 탁탁. 틱틱.


한숨 돌리려던 찰나, 첫째의 방에서 요란한 소리들이 슬며시 문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샤프심 꼭지를 세게 누르는 소리, 순간순간 바카라상을 내리 치는 소리, 발로 바닥을 구르는 소리. 문틈을 비집고 새어 나오는 아이의 날카로운 마음들이 고스란히 내 심장에 박혀 숨을 쉴 때마다 아리게 찔러댔다.

제발 그 소리들이 잦아들기를, 아이를 집어삼킨 뜨거운 괴물이 이만 물러나기를 아이의 방 문 앞에 서서 간절히 기도했다.



“다 했어요.”


“가져와 봐라.”


그 화가 난 와중에도 써야 할 양을 다 썼다고 필사 노트를 가져온 아들을 보고 이제 다 됐다 싶었다. 여기까지 와 버렸지만, 그나마 더 가지 않고 끝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날카로운 가시를 품은 채 뛰던 심장이, 조금씩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상쾌한 공기가 폐 깊숙이 쑥 들어왔고, '잘했다'는 남편의 목소리를 들으면 사건은 종료라고 생각하며 남편 쪽으로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면서 나는 배고플 아이들을 생각해, 아이들이 좋아할 음식을 떠올리며 저녁 메뉴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 순간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이것으로 위로가 된다면, 이것만으로 상황이 무사히 종료가 된다면, 그 어떤 비싼 재료라도 나가서 사 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들이 좋아하는 고기를 구워줄까? 고기 먹이면서 살살 달래야겠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내가 하는 말도 더 잘 들어주겠지.’


내 머리는 아이들이 좋아할 고기와 과자를 사기 위한 최고의 동선을 짜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인우야! 회초리 가져와!”

갑자기 의자를 훅 밀치고 일어나는 남편의 입에서, 세상 어떤 말보다 무겁고 무서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슴을 쓸어내리기가 무섭게, 잠잠했던 맥박이 다시 파도처럼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순간 주변의 소리는 사라지고, 내 심장 소리만 쿵쿵 귓가에 시끄럽게 들려왔다.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 분명했기에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식은땀이 오늘따라 너무나 서늘했다.


“안 들리니! 회초리 가지고 와라.”

“왜요! 잘 썼잖아요!”

“이거 봐라. 뭘 잘못했는지. 아빠는 다 아니까 네가 먼저 말해. 그럼 용서해 줄게.”

“잘못한 거 없는데요!”

“정말 없지?”

“네!”


‘제발 인우야 제발! 사실대로 말하렴.’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아들은 끝내 입을 다물었다. 이어지는 남편의 말에 내 눈과 귀를 의심하고 싶을 정도로 나 또한 화가 났다.


필사를 해야 할 사자소학의 단어들을 묘하게 비틀어 바꿔 놓는가 하면, 문장 사이 글자들을 몇 개씩 빼고 필사를 해 놓았던 것이다.


남편은 정말 대단했다. 나라면 썼다는 것만 확인하고, 잘했다 칭찬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빨간펜으로 하나하나 틀린 부분 등 문제가 있는 부분을 표시했고, 그 노트를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의 새빨간 홍당무가 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명백한 증거를 내미니 거짓말을 그제야 멈춘 것이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이건 아빠를, 어른을 기만하는 일이었고 결코 정당하지 못한 행동이었기에 아이는 결국 다시 처음부터 필사를 해야 했다.



아이들은 왜 거짓말을 할까?

어른들의 눈에 본인들의 머릿속이 훤히 보인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걸까?


아마도 아이들은 손만 뻗으면 자신이 원하는 곳에 쉽게 닿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꿈을 이루는 과정을 쉽게 생각하는 건지도.


하지만 아들들이 언젠가 키도 마음도 우리를 훌쩍 넘어서는 날,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원하는 세계에 닿는 길에 눈속임은 없다는 것을. 정직한 노력만이 진정한 꿈에 닿게 하고, 그 과정 끝에 얻은 성취야말로 가장 값지고 기쁘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정직한 걸음걸음마다 얼마나 깊은 부모의 염려와 응원이 깃들어 있는지도.


문득 고개를 돌려 바라본 남편은 지쳐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나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깊이 마음이 베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고 있으니,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거센 바람을 함께 가르는 든든한 동반자라는 실감이 밀려왔다.


남편과 나는 오늘도 늦은 밤, 잠든 아이들의 방문을 조용히 연다. 우리는 시끄럽게 돌아가는 선풍기를 조심스레 끄고, 엉클어진 이불을 토닥여 덮어주었다. 우리의 이 고단하고 애틋한 추격전이 아이들의 내일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리라 믿으며, 서로를 향해 따뜻한 눈인사를 건넨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


지금 남편과 한 팀이 되어하는 이 귀여운 추격전은, 아이들 곁에 우리가 늘 함께하겠다는 우리만의 약속이자 염려가 깃든 우리만의 사랑이다. 아이들을 늘 살피고, 그들이 올바르게 자라 원하는 만큼 꿈을 펼치며 살 수 있도록 진심으로 응원하는 우리만의 사랑.


그렇게 오늘도 우리 집의 하루가 투닥투닥, 무사히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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