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짓말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
“엄마 어디세요?”
“응 엄마 지금 퇴근 중이지. 왜?”
“그냥요. 보고 싶어서요.”
“말도 예쁘게 잘하네.”
“엄마 곧 가. 이따 보자.”
“네!”
가끔 둘째는 퇴근 시간이 되면 이렇게 전화를 걸어온다. 사랑스러운 그 목소리에 기운 없이 축 처진 내 입꼬리는 힘을 내 스르륵 올라간다. 그러나 이것도 순간 뿐 입고리는 제자리를 찾아가듯 내려가 한참을 올라올 줄 모른다.
언젠가부터 퇴근길은 나에게 묵직함으로 다가왔다.
분명 회사 정문을 나설 때는 세상 누구보다 홀가분한 발걸음으로 나서지만, 집에 가까워질수록 누군가 내 가슴에 돌덩이를 얹어 놓은 듯 뻐근한 압박이 밀려왔다. 힘을 주어 숨을 깊게 들이쉬어야 할 정도로 점점 그 무게는 더해갔다.
생각해 보면 복직 후부터 였다. 치열한 경쟁과 간절한 노력으로 입사한 온라인 게임은 적어도 일한 만큼의 대가라는 ‘월급’이라도 주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매일이 같은 루틴인 청소와 살림은 참 어려웠다. 퇴근도 없이 무한정 돌아가는 노동의 굴레 속에서 나의 하루는 그것들을 해내야만 편히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허락을 받는 형벌을 짊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덧 도착한 아파트 주차장, 얼른 일어나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발길을 재촉해야 하건만, 조용하고 아늑한 운전석 시트는 내 몸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이 순간 소원이 있다면 딱 20분만 언제 오냐는 아이들의 전화 없이, 집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조용한 압박도 없이 고요한 이곳에 아주 잠시만 온전히 머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 생각에 결국 1분도 되지 않아 몸에 잔뜩 힘을 주고 ‘끙’하는 소리와 함께 안락한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다. 유독 무거운 자동차 문을 열고, 챙겨온 짐을 다시 짊어지고 차 밖으로 몸을 일으킨다. 퇴근길 반듯하게 걷던 모습은 사라지고, 다리에 힘이 풀려 갈지자 걸음이 되어 집으로 올라간다.
유독 빠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순식간에 집에 도착한다. 현관의 번호판 앞에서 허리를 반듯이 세우고 크게 숨을 내쉰 후 손가락에 힘을 주어 비밀번호를 누른다.
‘띠리리릭’
문이 열리는 소리가 말한다.
‘환영합니다. 얼른 와서 일하세요! 할 일이 산더미입니다.’
“시우야 엄마 왔다.”
“엄마 형도 있어요. 우리 같이 있었어요.”
“어? 인우도 빨리 왔네!”
“네 엄마 우리 사이좋게 있었어요. 잘했죠!”
“그런데 왜 둘이 같이 부엌 쪽에서 나와?”
“.... 둘이 물 먹었어요.”
“???”
뒷골이 알싸한 게 냉장고에 오래 둬서 상한 것 같기도 한 아리송한 음식을 입에 머금고 있는 기분이었다. 일단 찝찝한 마음을 뒤로하고 함박웃음으로 반겨주는 아이들의 얼굴을 따라 같이 웃어 주었다. 그리고 이내 참지 못하고 입술 사이로 스르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희 수상한대! 엄마 몰래 게임하고 있었지?”
“네? 아닌데요. 그냥 둘이 같이 물 먹고 있었어요.”
“물을 왜 같이 먹어?”
“...”
순간 거실 벽에 걸려있는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의 거짓말에도 시간은 무심하게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알겠어. 너희들 믿는다. 거짓말하면 안 돼! 얼른 밥 해줄 테니 그때까지 각자 방에 들어가서 숙제하고 있어.”
“네.”
나는 아이들이 보였던 말과 행동을 되뇌면서 바쁘게 거실과 안방을 옮겨 다녔다. 이리저리 창문을 열고 어질러진 물건을 제자리에 정리했다. 그 와중에도 아이들에게 숙제 등 확인해야 할 상황을 물어보며 혼자만 바쁜 세상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한 단계 미션을 완료했다는 듯, 나는 다음 할 일을 위해 싱크대를 붙잡고 잠시 허리를 편다. 그러나 시야에 들어온 냉장고를 차마 외면하지 못한 채 아이들을 위해 앞치마를 서둘러 꺼내 몸에 꽉 조인다.
아이들과 저녁 식사 후 베란다에서 옷을 걷어 아이들 방으로 가던 그때, 아이들 방 앞을 가득 메운 조용하다 못해 고요한 그 기류에 마음이 턱 하고 내려앉았다.
‘뭐지? 이상한데?’
노크하고 들어가던 습관도 잊은 채 본능적으로 몰래 문을 열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후다다닥.
둘째는 언제 형의 방에 들어갔었는지, 문을 열자 형의 바카라상에서 후다닥 형의 침대로 뛰어 들어가 태연하게 바카라을 집어 들었다.
“너희 게임했지!”
“아닌데요!”
“아닌 게 아닌데! 왜 거실에 있어야 할 태블릿이 방에 있지!”
“...”
“엄마 퇴근하기 전에도 몰래 게임했었지!”
“아닌데요.”
“정말?”
“네 아니에요. 증거 있어요?”
“태블릿 좀 보자. 엄마한테 사용 내역 문자로 와. 그런데 그냥 봐준 거지.”
“아닌데. 아닌데.”
“몰래 게임하지 말아라. 엄마는 다 알고 있다. 알았지?”
“네….”
회식 때문에 남편이 아직 들어오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다그치는 것이 내심 두려웠다. 첫째와 나는 항상 긴장 상태였기에 더욱 그랬다. 게임을 한 정황이 분명했음에도 더 강하게 몰아붙이지 못한 채 아이 방을 나왔다. 잡은 문고리가 서리보다 차갑고 시려웠다. 그 냉기가 척추를 타고 흘러내려 나를 겨울의 한 가운데로 보냈다. 닫힌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조용한 웃음소리에 서늘한 눈물이 차올랐다.
‘엄마는 밥 차려주고, 자기가 아쉬울 때만 찾는 그런 사람인가! 아빠가 없다고 나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
아릿한 눈물은 금방이라도 떨어질듯 한가득 눈을 메웠다. 하지만 울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주방에 쌓여 있는 설거지 더미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나는 울지 않기 위해 눈을 더 크게 뜨며 다시 고무장갑을 끼고 수돗물을 틀었다.
쏴...
이 순간만큼은 싱크대의 수전이 나보다 낫다 싶었다. 적어도 눈물을 참는 나보다는 시원하게 소리 내어 울기라도 하니. 한동안 물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서 있다가, 크게 한숨을 몰아쉬고 설거지를 이어갔다. 그것도 잠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내가 무엇을 놓쳤기에 아이들이 나를 속였을까. 이대로 두면 안 되는데,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하지?
생각이 복잡해질수록 마음은 더 복잡해졌고, 이대로 두면 마음의 응어리가 썩어 문드러질 것 같았다. 결국 고무장갑을 벗어두고 둘째만 조용히 불렀다.
“시우야, 엄마는 그동안 네가 엄마 몰래 게임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런데 말하지 않은 거야. 속이는 것을 스스로 그만두기를 바랐거든.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게임을 한 거야? 솔직하게 말하면 용서해 줄게.”
“사실은 학교 끝나고 3시부터 4시까지 몰래 했어요. 그런데 나만 한 거 아니에요. 형도 그동안 엄마 몰래 많이 했어요.”
“... 알겠어. 사실대로 말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엄마를 속인 것은 잘못했지!”
“네.”
“그럼 학원 다니자. 남들은 그 시간에 학원이다 방과후 학교 다 바쁜데….”
“싫어요. 그냥 집에서 바카라 읽을래요.”
“안돼. 내일부터 당장 피아노 학원에 가자.”
“싫어요. 절대 안 가요. 피아노 학원은 여자애들이나 다니는 곳이라고요. 차라리 수학 학원에 갈게요.”
“아니! 피아노는 지금 아니면 못 배워. 그리고 너는 6개월 동안 거짓말을 했어. 거짓말에 대한 바카라임이야. 내일 상담하러 갈 거야.”
“으앙….”
아이가 학원을 온몸으로 거부하며 징징거리는 모습을 보니,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 실소 한 번에 팽팽했던 긴장이 살짝 풀리며 이놈의 실랑이가 어이없기도 하고 지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 없었다. 그동안 배우게 하고 싶었던 피아노를 가르치기에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결국 둘째의 온갖 핑계와 꾀병을 가장한 할리우드 액션을 꾹 누르고, 다음 날 피아노 학원 등록을 무사히 마쳤다. 물론 첫째도 당분간 게임 정지라는 거짓말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아이들이 거짓말을 잘한다는 주변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 아이들만큼은 아닐 거라 믿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둘째는 그렇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임을 깨달았을 때의 배신감이란.
아이들은 시시때때로 어른들의 머리 꼭대기에 앉기 위해 부모를 시험하고, 부모는 그 위에서 여유 부리다 속아 넘어가기도 한다. 그 모습이 허탈하면서도 헛웃음이 난다.
‘내가 아이에게 더 관심을 가졌다면 일찍 발견해서 거짓말하는 버릇을 빨리 고쳐줄 수 있었을까?’ 언제나처럼 나의 부족함으로 귀결시키려는 생각에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그것들을 날려 보내본다.
그리고 생각을 다시 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남의 생각과 기분을 읽을 줄 알고, 결과를 예측할 줄도 알게 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그저 떼만 쓰던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거짓말을 잡아내고 훈육하고 서운한 마음을 견디는 나도, 엄마로서 어른으로서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는 과정일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고. 누구보다 잘 자라고 있다고. 그러니 나도 잘하고 있다고. 다시 한번 더 나를 다독여 본다.
‘잘하고 있어. 괜찮아. 잘못되지 않았어. 오늘 하루도 참 고생 많았어.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