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에 대해 -
“혹시 시간 되시나요?”
“네 무슨 일이시죠?”
“잠시 이쪽으로 오시죠.”
“네.”
상사의 단정한 목소리 뒤로 묵직한 예감이 찾아왔다. 온라인 게임 동료와 업무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진 날이었다. 명시된 업무였음에도 완강히 거부하는 동료와, 그 간극을 내가 메워주기를 바라는 조직의 침묵.
그 사이에서 나는 수시로 불려 다녔고, 결국 그 동료와의 관계마저 차갑게 틀어지고 말았다. 일보다 사람과의 관계를 더 귀히 여기며 살아왔던 나였기에, 타인의 몫까지 떠안으며 겪어야 했던 혼란은 마음 깊은 곳을 뒤흔들었다.
아이를 낳고 워킹맘으로서 살아가면서, 힘듦의 대부분 원인은 아이들 때문이었다. 욕심 많은 엄마를 둔 탓에 아이들 가슴에 뾰족한 아픈 상처를 남기기도 했고, 그에 따른 아이들의 눈물과 호소는 부메랑이 되어 더 큰 아픔이 되어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기적인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차라리 일을 하러 가는 게 낫지. 육아 도저히 못 하겠네.’
그래도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갖가지 풍파 속에서 아이들도 나도 서로에게 단단해졌는지 편안한 시간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은 정말이지 살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온라인 게임에서 일이 생긴 것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수면 아래에 잠식해 있던 문제들이 조용해지니 튀어 오르듯이.
온라인 게임에서 힘듦은 아이들과 갈등과는 또 달랐다. 이 어려움 또한 오랜만에 겪으니, 마치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근육통을 겪듯 또 다른 고통을 주었다.
일상에서 잠시라도 쉬는 시간이 생기면 악마 같은 걱정들이 나를 비웃듯 머릿속을 점령했다. 밥도 먹고 싶지 않았고, 기운도 나지 않았다. 마음은 어찌나 수시로 내려앉는지 자꾸만 지하 깊숙이 숨어버리려는 것을 건져내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제어장치가 고장 나 버린 사람처럼, 수시로 눈물도 터져 나왔다. 그렇게 내 나이 마흔에 첫 슬롯생활을 시작한 스물여섯 살의 나로 돌아갔다.
시간이 지나자 조직에서 어느 정도는 타협이 되었다. 억울하지만 더 이상은 싸울 힘도 용기도 없었다. 하지만더 큰 문제가 아직 남아 있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본인의 입장만 고수하는 동료와의 틀어진 관계가 그것이었다. 터 놓고 이야기 하면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아 억울하지만 먼저 찾아가기도, 장문의 문자를 남겨 보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응답과 거친 오해와 화 뿐이었다. 대화는 없었다. 함부로 취급받은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마치 아무 잘못 없는 내 아이가 사람들 앞에서 느닷없이 뺨을 맞고 돌아온 것만 같은 비참함이었다.
결국 내 몸이 먼저 무너졌다.
38.5도의 발열, 깨질듯한 두통, 사시나무가 된 듯 떨리는 오한, 돌을 씹어 삼킬 듯한 인후통이 온몸을 덮쳤다.
나는 나를 지켜야만 했다. 더는 상처받게 두어서는 안 됐다. 그래서 마음의 중심을 잡는데 온 신경을 기울였다. 하지만 마음은 기회만 생기면 이때다 싶었는지 흩어지려 했다.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쌓여 이번 일이 촉매제가 된 건지, 아니면 이 일이 정말 감당하기 힘들었던지, 삶의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만 싶었다.
좋아하던 독서, 글쓰기, 운동이 하기 싫었다. 급식 먹는 낙으로 다니던 학교건만 급식실까지 가는 것이 곤욕스러웠다. 수업도 하기 싫었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퇴근 후였다. 아이들의 요구에 짜증으로 응답하는 일이 많았고, 가족들과의 간단한 대화조차 귀찮고 듣기 싫었다.
“시우야 잘 안 들려.”
“인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면 안 되겠니. 엄마 지금 이거하고 있잖아.”
“어떻게 혼자 할 수 있는 게 이렇게 없니. 이 정도는 혼자 해야지. 나이가 몇 살인데.”
그 당시 이 네 문장이 집에서의 나의 고정 멘트였다.
아마 나에게 바카라임져야 할 아이들이 없었다면 이보다 더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무너지면 우리 아이들은….
안된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아이들의 일상을 위해서라도 나는 무너져서는 안 됐다.
사람은 역시 누구 때문에 라면 강해지나 보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마음의 중심을 잡으려 노력했다.
그 동료와 이번 일이 생각날 때마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찾아 그것에 집중했다. 복잡해서 하지도 않던 잡채며 갈비찜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사다가 주방에서 고군분투했다. 그렇게 귀찮아하던 화장실, 베란다, 다용도실도 구석구석 쓸고 닦았다. 아무렇게나 뒤엉켜 있는 우리 집 팬트리도 마트 못지않게 깔끔하게 정리했다. 나는 아이들과 더 떠들고 자전거도 타러 나가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런 노력에 내 마음도 응답해 줬으면 했다. 하지만 기쁨보다는 슬픔과 걱정이 두 배 이상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했던가, 그러면 그럴수록 걱정과 불안은 끈질기게 따라붙었고 오히려 몸 구석구석에 새겨졌다.
더 진하고 더 진득하게.
그리고 나를 뒤흔들었다.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중심을 잡고 싶은데.’
‘중심을 잘 잡을 나이인데. 왜 쉽지 않지?’
‘왜 이걸 못하지!’
마흔이 넘으면 단단한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나였다.
정말이지 실컷 울고 싶었다. 하지만 눈치 보지 않고 우는 것 하나 쉽지 않았다.
술도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나를 괴롭히던 위염 때문에 술 또한 마시지 못했다.
친구들에게 하소연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친구들 또한 만나지 않은지 오래된 터라, 실컷 욕해 줄 누군가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간간이 위로의 말을 건네는 온라인 게임동료에게 슬쩍 마음의 한 깃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털어놓은 마음은 오히려 자바카라으로 돌아와 내 마음에 붉은 상처와 진한 멍을 남겼다.
‘나잇값 못하게 남의 욕이나 하고 있고.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구나.’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나이가 드니
혼자가 아니니
무언가를 잊는 것도 털어내 버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오히려 더 어려웠다.
언제쯤 나는 마음의 중심을 잘 잡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내 나이 쉰이 되면, 예순이 되면 가능해질까?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던 어느 순간, 한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다정"
나는 과연 나 자신에게 다정한 사람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참 다정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남들에게만.
다른 사람에게는 한없이 자상하고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좋아하려 애쓰면서도, 정작 나에 대해서는 평균보다 높은 기준치를 들이밀고 평가하는 나. 그리고 가차 없이 채찍질하는 나.
다른 사람을 다정히 바라보던 그 마음으로 나를 바라본다면
비 오는 날 우산을 살짝 기울여 상대방을 배려했던 그 마음으로 나를 대한다면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괜찮다고 다른 사람에게 하던 그 말을 나에게 한다면
좀 쉬어도 된다고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편안히 놔둔다면
어쩌면 마음의 중심을 잡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균형 잡힌 마음이 활력이 되어 학교 일도 육아도 더 좋은 마음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편안해지지 않을까.
그러니 나에게 조금 더 다정해 볼까?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답답하지는 않은지, 울고 싶지는 않은지, 혼란스럽지는 않은지.
마음의 중심을 잘 잡는 것은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생기는 능력이 아니라, 다정하게 자신에 대해 알기 위해 노력하고 살피며 자신을 돌볼 수 있을 때 생기는 마음의 근력이 아닐까?
그동안 나보다 타인의 눈을 의식하느라 잔뜩 굳어 있는 어깨에 힘을 빼 본다.
그 순간 겉에서만 맴돌며 들어오지 못하던 따뜻한 숨결이 몸 안으로 깊숙이 들어옴을 느낀다. 깊고 편안한 숨은 온몸을 돌며 다정히도 나를 안아준다.
오늘 나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기 위한 그 첫 번째 방법으로, 내 마음의 소란을 천천히 바라보며 이런 말을 건네보려 한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정말 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