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넘어지는 너를 보며 -
“으앙 엄마!”
“왜 시우야! 무슨 일이야!”
“머리가 너무 아파요. 머리가 고장 났어요. 자전거 타고 학교 놀이터까지 간 것은 기억나는데 그 이후로는 기억이 안 나요.”
“왜? 머리 다쳤어?”
“아니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머리가 고장 났어요. 으앙”
“진짜 머리 안 부딪쳤어?”
“아무것도 안 했는데. 진짠데. 으앙.”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자전거를 타러 나간 둘째는 20분도 채 되지 않아 울면서 돌아왔다. 무작정 머리가 고장 났다며,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화를 내며 울고만 있었다.
일단 외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할 수 있는 한에서 아이를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상황을 종합해 봤을 때 탈진 및 저혈당 증세 같았다. 우는 아이에게 달달한 과자와 과일을 먹이고, 선풍기 앞에 앉혀 쉬게 했다. 울면서도 넙죽넙죽 과자를 받아먹기 위해 벌리는 그 입이 왜 이렇게 귀엽던지. 마치 아기 새 같았다. 오랜만에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 아기를 돌보듯, 육아하는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아이는 30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괜찮아졌고,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그렇게 여느 때와 같이 폭풍같이 아이들 뒤치다꺼리와 집안일을 끝내고, 식탁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휴, 이제 좀 쉬어 볼까.’
할 일에 치여 편히 숨 쉬는 것조차 뒤로 미룬 채,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을까.
어느덧 고요해진 집안 공기 속에서 가슴 언저리에서만 맴돌던 숨을 한꺼번에 몰아 내쉬어 본다. 한숨이 나간 빈 공간 안으로 둘째가 들어온다. 사르르 들어와 아릿함을 남기는 아들. 순식간에 아들의 생각으로 가득 차, 내 몸은 빈 곳이 없을 정도로 아이로 넘쳐흐른다.
대성통곡하는 모습, 고통을 호소하는 말, 그러면서도 끝까지 자전거를 끌고 왔을 아이의 모습까지, 아이가 지나간 자리는 눈물을 남겼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장마철의 늦은 밤 나는 그렇게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조용히 몸을 일으켜 둘째의 방문을 열었다. 혼란스러운 폭풍이 지나간 아이의 몸에는 고요한 평화만 남아 있는 듯, 아이는 편안한 표정으로 자고 있었다.
자는 모습이 이렇게 대견할 수 있을까!
저 조그마한 몸에 자신만의 우주가 가득 담겨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 아이가 새삼 자랑스러웠다. 쌕쌕 부풀었다 내려가는 가슴의 움직임조차, 그 사이로 빠져나가는 들숨과 날숨의 따뜻한 공기마저도.
아이를 있는 힘껏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잠귀가 밝은 아이를 위해 소리 없는 입 모양으로만 “사랑해”라고 속삭이며 한참 동안 아이를 바라보았다.
사랑이 전달되길 바라며.
나는 성실한 사람이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편이다. 그런 성격이 스트레스를 제법 유발하기는 하지만, 열심히 하지 않아 후회하는 것이 더 힘들기에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육아 역시 그랬다. 하지만 육아는 열심히 하면 안 되더라. 그럴수록 문제가 생겼다.
배앓이 없는 분유와 젖병, 발진 없는 기저귀, 대소변을 보고 싶어 하기도 전에 미리 화장실 데려가기,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사랑받는 아이가 되었으면 해 요구하지 않은 선물을 미리 준비했다. 또 아이가 싫어해도 몸에 좋은 천연 먹거리와 장난감만 고집했고, 조금이라도 열이 나면 충분히 아프고 난 후 이겨낼 수 있게 하기보다는 바로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나는 온종일 아이 생각만 했고, 그것이 아이를 위한 일이라며 열심히도 살았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부모 역할을 잘하는 거라고. 그러니 나는 성숙한 어른이고 엄마라며 스스로를 칭찬했고, 그 과정을 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증거라 여겼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면 다할수록 아이는 친구를 꼬집었고, 엄마인 나에게 화를 자주 냈으며, 어느 순간 크게 다쳐 오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점점 화가 많은 사람이 되어 갔다. 엄마가 항상 화가 나 있으니, 아이에게 쏟아지는 날카로운 표정과 말투는 당연했을 것이다.
돌아오고 싶어야 할 집이, 행복하고 편안해야 할 가정이, 믿고 의지하며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야 할 엄마 아빠라는 존재에서 점점 멀어지는 듯한 기분에 힘들었다. 상황을 되돌리기 어려워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바로 잡아야 했다.
아이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그래서 놓아버렸다. 물론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어느 정도 혼자 학교와 집을 왔다 갔다 하는 정도가 되니 큰 규칙 안에서 그 틀만 벗어나지 않으면 그냥 둬보자 싶었다.
하지만 간섭하지 않고 지켜본다는 것이 말은 쉽지 어려운 일이었다.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했고, 아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방식으로 관여해야 하는 것이 직접적으로 지시하고 통제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그렇지만 내가 아이를 놓으면 놓을수록 아이는 더 예의 바른 아이, 엄마를 더 생각하는 아이, 집안일도 친구들도 스스로 도우려는 아이가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쁜 친구가 괴롭혔다며 우는 아이를 지켜만 보는 일.
숙제가 어렵다며 끝까지 혼자 해낼 수 있도록 응원만 하는 일.
독서 골든벨에 나가고 싶은데 바카라도 읽어주고 문제도 같이 풀어달라는 아이를 혼자 하게 설득하는 일.
친구와 싸우고 화내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일.
아플 때 스스로 보건실도 찾아가고 충분히 앓고 나을 수 있도록 무작정 병원부터 데려가지 않는 일.
뭐든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제지하고 간섭하지 않는 일.
아이의 어려움을 볼 때마다, 어려움이 예상될 때마다 움직이려는 손과 발을 묶어 두는 일이란, 게다가 순간순간 올라오는 욱하는 마음을 애써 위로하며 다스리는 일이란 쉽지 않음을 느낀다.
아이가 커 감에 따라 나는
뜨거운 화를 삼킬 줄 아는 어른.
기다릴 줄 아는 어른.
괜찮다 괜찮다 다독일 줄 아는 어른.
사랑하는 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곁에서 응원할 줄 아는 어른이 되어 간다.
그나저나 시우는 엄마의 괜찮다는 말속에, 이렇게나 본인을 걱정하는 복잡 시끄러운 마음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기는 할까?
앞으로 얼마나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상황이 많을지 벌써 걱정되지만, 내 고민이 깊어질수록 아이는 더 크게 성장할 것임을 믿는다. 아이 안의 온전한 우주가 깨어나 자신만의 빛을 발산할 수 있도록.
부모가 된다는 것은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머릿속에 온갖 생각들로 넘쳐나도,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 수련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
나는 오늘도 까맣게 타들어 가는 내 마음을 향해 ‘괜찮다. 괜찮아. 이 정도면 괜찮아’ 라며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오늘도 여유로운 척, 아이들을 향해 씽긋 미소를 지어 보인다.
속도 모르는 아들들아, 얼른 자라라. 억지 미소를 지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