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작아지는 어깨 위로
저녁이 올 때

- 이기적인 딸의 엄마를 위한 기도 -

by홍당무

“선희야, 다음 주가 초복이야. 장모님 장인어른과 식사 한번 하게. 날짜 잡자. 땀도 많이 흘리시는데 고기 사드리게.”

“...”

“선희야 내 말 들었지?”

“응 그런데 나중에 먹자.”

“왜?”

“...”


남편은 일상의 사소한 풍경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다정한 위로와 축하를 건넬 줄 아는 자상한 사람이다. 시댁과 친정이라는 이분법적인 선을 긋고 싶진 않지만, 나의 부모님을 살뜰히 챙기는 남편의 뒷모습을 볼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 늘 고마움이 배어 나왔다. 특히 부모님께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고 돌아서는 길이면 내 마음은 더없이 충만해졌다. 수십만 원의 돈을 흔쾌히 부모님을 위해 쓸 수 있다는 사실은, 내가 슬롯에서 제 몫을 해내며 열심히 살아왔다는 증거이자 삶이 내게 주는 가장 달콤한 보상 같았기에.


하지만 요즘은 음이 맞지 않은 피아노처럼 모든 것이 삐걱거린다. 부모님과 마주 앉아 밥을 먹을 때도,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를 나눌 때조차 예전 같지가 않다. 특히 통화를 마칠 무렵 “끊자"라는 엄마의 마지막 말이 들려오면, 어느새 명치 끝을 무겁게 짓누르는 통증에 숨이 턱 막혀온다. 최선을 다한 시험에서 답안지를 밀려 쓰고 나온 사람처럼 억울하고도 먹먹한 자바카라감이 온종일 마음 주변을 서성인다. 몸살이라도 찾아오려는 듯 전신이 무겁고 뻐근해지는 이 불편한 감정만이, 엄마의 목소리가 끊긴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진다.


마음의 균열은 부모님이 병원 신세를 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두 분은 맨손으로 일가를 이룬 자수성가형 사업가로, 일평생 쉬는 날 한 번 없이 고된 노동을 묵묵히 감당해 온 강인한 분들이셨다. 그러나 환갑이라는 고개가 마치 아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던 것처럼, 그때를 시작으로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서는 몇 차례의 시술과 수술이 이어졌고, 수술실 침대에 누워 덜덜 떨고 계시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그리고 수술실 문이 닫힐 때마다 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하게 얽히고 또 얽혔다.


여러차례 수술을 받게 되면은퇴를 고려할 법도 한데, 나이가 70살이 다 되어 가도 부모님은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 일터로 나가신다. 그곳이 뭐라고 부모님은 수술 날짜를 미뤄가면서까지, 수술 후 조기 퇴원을 하면서까지, 그리고 인공관절을 달고나서까지 그곳을 떠나지 못하신다.


부모님이 그럴수록 내 마음은 더 불편했고 복잡해져만 갔다.


따르릉


“엄마 오늘 아픈 것은 좀 어때?”

“응 많이 나아졌어.”

“정말? 오늘 일 많이 했지?”

“아니 별로 안 했어. 너희 아빠가 거의 다 하고 나는 조금 서있기만 했어.”

“아닌 것 같은데. 정말?”

“아이고 애 봐라. 걱정하지 마. 너는 무슨 일 없고? 위는 괜찮고?”

“나는 걱정하지 마. 괜찮아. 재발하거나 염증 생기면 큰일 나니까 엄마나 신경 써.”

“아이고 알았어. 며칠 전에 정기검진 했을 때도 문제없다고 했어. 관절들이 자리를 잘 잡았다고 그랬다니까.”

“알았어. 그래도 조심해 엄마.”

“알았다. 얼른 쉬어라.”


엄마와 나의 대화 내용은 매번 이랬다.

단지 매일 하던 통화가 이제는 이틀, 어떨 때는 3일에 한 번으로 그 횟수가 줄어든 것만 빼면.


수화기 너머로 간신히 붙들고 있던 에너지는,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하라는 엄마의 마지막 당부를 끝으로 증발해 버린다. 힘없이 손가락을 움직여 빨간색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후,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설령 무슨 일이 생겨도 엄마는 결코 내게 짐을 지우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내 마음은 땅속 깊숙이 내려앉았다. 순간 사방은 빛 한 점 없는 어둠이 가득 찬 벽으로 둘러싸였다. 엄마에게로 향하길 바라던 미숙한 말들은 그 암흑 속에서 길을 잃고 튕겨 나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내게 박혔다. 온몸을 파고드는 가시의 통증에 나는 몸을 한껏 움츠린다.


곧이어 불어오는 차디찬 바람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날것의 내 마음과 마주한다.


아프면서도 삶의 고삐를 놓지 못하는 그 마음을 헤아리려 하기보다, 또는 부모님의 무게를 덜어드리기는커녕, 아이들을 봐야 한다는 핑계와 피곤하다는 이유로 침대에 누워버리는, 그러면서도 말로만 걱정을 늘어놓는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왜 일을 줄이지 못하냐며 되레 핀잔을 주는 나는 또 얼마나 철이 없는지.


그곳에는 지독히도 외면하고 싶었던 내 안의 밑바닥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내가 지금껏 누려온 모든 평온함이 실은 엄마의 뼈를 깎는 희생과 사랑의 결과물이었을 텐데, 나는 아픈 엄마 앞에서도 끝까지 영악하고 이기적이다.


가족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 창밖의 외로운 별빛을 바라보며 가만히 못난 소원을 빌어본다.


엄마도 부디, 나와 같이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기를.


먹고 싶은 음식을 앞에 두고 기어이 참아내는 일은 이제 없기를.

자식과 손주들에게 쥐여줄 용돈 대신, 본인이 갖고 싶은 것을 먼저 손에 쥐기를.

몸이 아플 때면 다른 누구의 안위보다 자신의 휴식을 먼저 선택하기를.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내일로 미루지 말고 마음껏 발걸음을 옮기기를.

그리하여 시집간 자식의 반찬 걱정 따위는 부디 접어두고, 제발 편히 쉬시기를.


이 못난 소원들을 기어이 이루어달라며, 밤하늘의 별과 달에게 나의 이기적인 진심을 털어놓아 본다.

부모라는 거대한 그늘 아래에서, 오늘도 복잡하게 얽힌 마음을 가만히 달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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