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하다.
어느 날은 활력이 넘치는 날이 있고, 어느 날은 힘이 넘치지는 않지만, 무난히 일상을 사는 날이 있다. 그에 비해 어떤 날은 침대에서 일어나기조차 힘든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머릿속에 불청객이 찾아온다.
잔뜩 삐뚤어진 반항기를 품고 있는 사춘기 소녀.
이 소녀가 고개를 내밀면 작은 일 하나에도 부정적인 시선이 깃든 그런 날이 된다.
‘짜증 나네’
‘하기 싫어’
‘저 사람 왜 저래.’
‘아 기운 빠져. 힘들다.’
어릴 때도 나는 이랬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니다. 그때는 매일 재밌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즐거웠다. 슬프고 힘든 날도 물론 있었지만, 그 시간이 길지 않았고 일상의 여러 날 동안 영향을 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거울 속에는 다른 내가 살고 있었다. 처진 입꼬리, 아래로 쳐진 듯한 피부결, 멍한 듯 공허한 눈빛을 한 나.
40대가 된 지금, 나는 웃지 않는 사람 웃음이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유난히 한가한 오후였다. 맑고 찬란한 5월의 햇살이 나를 바카라상에서 일으켜 창밖으로 안내했다.
빨간 장미꽃이 웃을 수 있다면 저런 소리였을까?
오색 빛깔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은 아주머니들이 소녀가 된 듯 수다스러운 웃음소리를 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웃음이라는 것이 자세히 듣다 보니 뭔가 서글픔이 밀려왔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무해한 즐거움이 가득 찬 웃음소리와는 달랐다. 어딘가 즐거워지기 위해 즐거운 순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듯한 웃음.
좋게 말해 즐거울 수 있게 노력하는 모습이지, 나쁘게 말하면 행복한 순간을 만들기 위한 처절한 웃음. 난 그렇게 보였다. 그들의 웃음이.
순수하게 즐거울 수 없는 나이.
어릴 때와 지금의 기분 상태를 비교해 보면 기본값이 차이가 나는 듯하다.
어릴 때는 기본값 즉, 평소 기분 상태가 즐거움일 것이다. 그래서 별다른 일이 없어도 마냥 즐겁고 재미있었다. 거기서 조금만 재미가 더해진다면 행복이 배가 되었고, 쉽게 흥분되고 말이 빨라지는 그런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침착하고 무던한 것이 기분의 기본값인, 즉, 평소 기분 상태가 즐거움보다는 조금 더 우울함 쪽으로 치우쳐 있는 듯하다. 그래서 웬만한 즐거운 일에도 힘들게 달성한 목표에도, 기쁨을 느끼는 지속시간과 강도가 줄어든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보통의 일로는 쉽사리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 조금만 피곤해도 금세 지치고 우울하며 화가 나는 상태가 평소 기분 상태이다.
이것은 살면서 많은 일을 겪고 헤쳐 나가며 생긴 결과일 수 있지만, 어쩌면 기분도 우리 몸이 그러하듯 나이가 드는 게 아닐지 싶다.
기분도 나이가 드나 보다.
나이가 들어 그런다며 탓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일.
우울하고 화난 상태가 지속되면 일상이 흔들리기에, 일상을 지켜내야 하는 엄마로서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 노력해야 했다. 자꾸 우울한 상태로 내려가려는 내 기분을 끌어올리기 위해.
그래서 창밖의 아주머니들도 보기만 해도 화사한 등산복에 호탕하게 웃을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 좋은 곳으로 놀러 나가는 것이 아닐까? 힘을 내 웃으면서.
기분을 좋게 하려고.
그 좋은 기분으로 자식들 뿐만 아니라 가족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그러니 이제는 이렇게 생각해 보자.
피부가 처지고 새치가 생기며 얼굴과 몸에 기미와 흑점이 생기듯 마음도 늙을 수 있다. 내가 잘못 살아서, 내가 원래 우울해서가 아니다.
피부가 처지면 팩을 하고 피부과도 다니듯, 마음이 힘들면 좋아할 만한 일을 해보기도 햇볕을 쐬러 나가기도 하고 아니면 병원에 가보기도 하자.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마음과 기분을 들여다볼 줄 아는 능력을 갖췄고, 그것을 해야 하는 시기가 왔음을 말하는 듯하다.
그러니 나를 더 신경 쓰고 보살펴야 한다.
남들에게 대하듯 나를.
참 쉽지 않다. 특히 보살펴야 할 아이들이 있거나 거기에 온라인 게임 일까지 더해지면 더욱이.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내가 지켜내야 할 아이들을 위해.
힘을 내 본다. 누군가가 이유가 되면 사람은 더 강해지지 않는가.
오늘도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고생한 그대.
참 많이 애썼어요.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