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뭐 해?”
“그냥 뭐 맨날 똑같지 뭐.”
“다리는 좀 어때?”
“찜질하고 있지.”
“응 많이 아프면 연락해. 알았지?”
저녁 8시쯤 아파트 지하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마친 나는 엄마를 기다릴 아이들을 위해 발길을 재촉해 집으로 돌아간다. 한참을 가다 한숨 섞인 숨소리와 함께 핸드폰을 꺼내 든다. 아마 핸드폰이 조금 더 인공지능화 된다면 이 장소에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 정도로 최근 몇 달 동안 이렇게 생활했다.
벌써 1년째다.
엄마가 수술까지 하게 될 정도로 아프기 시작한 것은.
강철같이 강인하고, 매서운 눈빛의 호랑이 같던 엄마가.
엄마는 어릴 적부터 일을 해야 했다고 했다.
외할아버지가 20대 때부터 아프셔서 장녀인 엄마는 어린 동생들과 집안을 위해 학교 대신 공장, 시장, 식당 등에서 일을 하셨다고.
게다가 아빠와 결혼하고 나서는 노동을 기반으로 한 사업을 시작하면서 엄마의 몸은 더 쉴 새 없이 바빠졌다. 엄마는 하루를 48시간 아니 72시간처럼 살았고, 그렇게 살면서도 나는 한 번도 구겨진 교복을 입어본 적도, 급식비를 밀려본 적도 없었다. 정말 나에게도 최선을 다하며 사셨다. 자식인 내가 봐도 그렇다 느껴질 정도로 엄마는 치열하게 자신의 몫을 살아내셨다.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면서 살아라.
먹고 싶은 것도 다 먹어봐라.
가고 싶은 곳은 갈 수 있을 때 꼭 가봐라.
결혼은 되도록 가장 늦게 해라.
박사과정을 하고 싶거든 돈은 다 대줄 테니 끝까지 해봐라.
엄마는 항상 이랬다.
그래서 언제라도 뒤를 돌아보면, 항상 건강하고 강인한 모습으로 나를 지켜보고 계실 줄 알았다.
그런 엄마가 언제부턴가 나에게 전화를 걸지 않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전화해 밥은 먹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귀찮을 정도로 묻던 엄마였는데.
‘오늘은 왜 전화가 없으시지?’
'이상하네. 무슨 일 있으신가?'
걱정하다 잊어버리다를 반복하다 먼저 전화를 걸면, “아무 일 없지.”라는 똑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나에게 하는 말도 아끼기 시작하셨다.
엄마의 이런 변화는 묘하게 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했다.
‘이제 나에게 관심이 없어지신 건가?'
‘무슨 일이 생기신 걸까?’
‘어디가 아프신 걸까?’
걱정이 되었다. 걱정은 끈질기게 따라붙어 마침내 내 머리를 점령한 듯, 불안을 만들었다
그래서 먼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엄마 밥 먹었어?”
“어디 아픈 곳은 없고?”
“요즘은 장사 잘돼?”
“뭐 필요한 것은 없어?”
“왜 요즘 전화를 잘 안 해….”
그리고 알았다.
아팠던 곳이 심각해졌다는 것을.
단순히 아프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래서 딸이 걱정할까 봐 전화를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 며칠 후면 1년 동안 제대로 걷지 못하게 했던 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신다. 양쪽 무릎의 인공관절 수술을 위해.
한평생 성실하고 열심히 산 대가가 신체의 질병과 괴로움인가 싶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만화에서 보면 착한 사람들은 그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결국에는 해피엔딩이던데.
열심히 산 본인의 인생을 부정하고 힘들어하실까 봐 두려웠다.
사실 그동안 서서히 무릎이 망가져 가고 있었겠지만, 최근 1년은 눈에 띄게 아파하시는 모습에 엄마에게 전화하고 엄마를 보러 가는 것 자체가 편치 않았다. 나 역시 엄마의 희생과 고생으로 편한 삶을 누렸기에 엄마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이 힘들었다.
엄마가 한 번씩 아프다고 말할 때면, 싫었고 짜증 났고 미안했다.
그리고 가장 싫었던 것은 아픈 와중에도, 엄마는 나와 가족들 걱정뿐이라는 것. 본인보다.
“내가 아파서 조서방 반찬을 못해줘 어쩐다니. 먹을 게 없지?.”
“엄마 제발 좀 그만해. 엄마 몸만 신경 써. 내가 다 알아서 해!”
‘엄마 수술 잘될 거야. 걱정하지 마. 엄마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번만 잘 넘기고 우리 여행 다니면서 재미있게 살자.’
사실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은 삐뚤어진 사춘기 소녀처럼 못난 말로 걱정을 표현했다.
오늘도 마음과는 달리 퉁명스러운 말투로 통화한 나는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빨간색 통화버튼을 누른 후, 고삐가 풀려 버린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겁날지. 그것도 두 번이나 해야 하는 수술이.
수술대 위가 얼마나 추울지.
수술대 위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과 소음이 얼마나 두려울지.
수술 후 얼마나 아플지.
얼마나 겁이 날지...
그 와중에 혼자 있을 아빠와 할머니 떡볶이를 기다릴 우리 아이들, 나이 40이 다 되어도 늘 걱정인 딸을 생각하면서 얼마나 마음이 안 좋을지.
지금 이 순간에도 본인의 건강보다 가족을 생각하고 있을 엄마를 떠올리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푹 꺼져버린 기분만큼 가슴은 아리고 아팠다. 가시가 온몸을 돌아다니며 찌르는 듯, 나는 아팠다.
오늘도 나는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수많은 생각에 잠이 오지 않은 새벽 3시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쇼핑몰에 접속했다. 엄마가 입원 생활 동안 쓸 일회용 수건과 속옷을 주문하고, 밀려오는 두통에 침대에서 일어나 타이레놀 한 알을 꺼내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것이 새로운 시작이길.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치고 통증 없는 두 다리로 거리에 핀 예쁜 꽃에 파묻혀 사진도 찍고,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그립다던 친척들도 신나게 보러 다니시길.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듯 원하는 행복한 노후를 보내시길.
만화처럼 드라마처럼 엄마의 인생이 정말 행복한 해피엔딩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