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범한 일상에 대해 ]
나는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반성하는 사람. 그래서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희 씨는 참 부지런해요.”
그것이 나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성실함. 꾸준함. 게으름을 모르는 사람.
그런데 이 성격이 나에게 걸림돌이 될 줄이야. 괴로움의 원인이 될 줄이야.
아이를 낳고 육아의 세계에 뛰어들면서, 성격대로 나는 참 성실히, 게으름이라는 단어는 모르는 사람처럼 살았다. 육아, 살림, 온라인 게임 일, 남편에 시댁과 친정 부모님까지. 나는 이 모든 것을 내 성격대로 성실히 해나갔다.
요령 하나 피울 줄 몰랐다.
내 몸이 피곤하고 아픈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렇게 13년을 살다 보니, 어느덧 나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루를 48시간처럼 살았다.
해야 할 일에 대해 세세하게 계획을 세웠고, 아침 알람 소리가 울리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일어나 계획한 바를 실행했다. 임무를 완료하듯 그렇게.
그렇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한 것 같은 그 찝찝함은 괴로움으로 다가왔고, 자바카라이 되어 나를 공격했다.
인스타의 다른 사람들은 잘만 살던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며.
아이들의 독서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은 엄마의 노력이 부족한 거라며.
모든 것의 원인을 나에게 돌렸다.
나는 점점 여유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자주 화가 났고, 남들보다 열심히 살지 못한 나를 끊임없이 채찍질했다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 상처는 눈물이 되어 조금만 건드려도 온 몸에서 흘러내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나는 매일 힘들지? 행복해지는 날이 올까? 아무걱정 없는 하루라는 것은 있을까?'
나는 나를 살려야 했다. 그래야 아이들이 사니까.
엄마가 세상 전부일 아이들에게, 자주 화를 내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그때부터 아이들을 돌보듯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 아래 혼자 영화를 보러 가기도, 쇼핑하러 가기도, 글을 쓰기도 하면서 서서히 나아지고 있었다.
그 사이 아이들도 많이 자랐다.
이제는 아이들도 전적으로 부모와 놀기보다는 친구들과 함께하기를 원했다. 주말이 되면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 동안 친구들을 만나러 갔고, 남편과 나는 각자 할 일을 하며 주말을 보내는 날들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좋았다. 오랜만에 생긴 여유에.
지난시간 동안 아이들 돌봄에 내 마음까지 돌봐야 하니 시간에 쫓겼었다. 아이들이 잠을 자야 나를 위해 바카라이라도 읽을 수 있기에.
내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시작한 일들이 결과적으로는 수면 부족과 피곤, 많은 할 일로 바쁘게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건 사실이다. 아이들이 잠을 자지 않아도 각자 알아서 할 일을 하므로 내 시간을 갖기 수월했다. 주말 같은 경우 아이들이 친구들과 놀러 나가면서 더 여유가 생겼다.
이렇게 나는 편안해질 줄 알았다.
난데없는 불청객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불안.
마음의 빈틈에 불안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이대로 두고 돌보지 않아도 되는 건지.
지금 이 시각에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놀아도 되는 건지.
나중에 뭔가 한꺼번에 안 좋은 일이나 급박하게 해야 하는 일이 몰려오지는 않을지.
알 수 없는 불안에 힘들었다.
마음은 도무지 내가 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건지, 고민과 고난은 끝도 없구나 싶었다.
‘뭐가 이렇게 사는 게 힘든지! 좀 편안해지려고 하면 불안하고 계속 고민이 생기는 게 힘들다 정말. 편안한 날은 언제 오는 거지? 나는 왜 아이를 낳아서….’
며칠 전 온라인 게임에서 아주 힘든 일이 있었다. 한 온라인 게임 동료의 이기적인 발상으로 사건이 시작되었고, 순식간에 그 사건은 내 일상을 뒤흔들어 놓았다. 밥도 제대로 먹기 힘들었고, 아이들이 무슨 옷을 입고 나가는지조차 살필 여력이 없을 정도였다. 내가 누리는 시간은 몸과 마음에 덕지덕지 붙어버린 불안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때문에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 되고 있었다.
그 시간을 보내고 나니 여유 없고 바쁜 날도, 마음이 불안한 날도 다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구나.
무언가 할 일이 많아 힘이 들어도, 계획한 무언가를 해내지 못했어도, 피곤함에 짜증이 나도, 뒤처질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어도 말이다.
그저 큰 사고 없는 하루.
마음에 번뇌는 있어도 큰 일이 없는 하루.
생각해 보면 이런 마음의 번뇌도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어야 느낄 수 있으니.
어쩌면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나름의 편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가 싶다.
누구 하나 다치지 않는 평범한 일상에서 약간의 불안과 고민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일상에서의 아주 작은 에피소드일 뿐임을.
참 복된 하루인 것을.
그 하루를 누리고 있는 나는 복된 사람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