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름다운 이유

[ 절망 속에서 버텨내신 부모님 ]

by홍당무

“선희야. 불났어. 불난다. 아이고. 어떻게 하냐. 공장이 다 타.”

“어!! 엄마 무슨 일이야!! 119에 신고는 했어??”

“119가 몇 번인지 모르겠어”

“알았어, 내가 신고할게. 금방 갈 테니까 거기 있지 마. 바로 갈게!”

“두…. 두…. 두….”


2024년 2월 3일. 명절 장사를 앞두고 콩나물 공장을 풀 가동하던 그날.

주말 공휴일 할 것 없이 새벽 3시부터 출근하며 일궈낸 40년의 결과물이 약 30분 동안의 화재로 모조리 타버린 날이다. 전기합선으로 시작된 작은 불씨는 건조하고 차가운 겨울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공장 전체로 퍼졌고, 소방차 6대와 경찰차 2대 구급차 2대가 출동하고서야 간신히 불길이 잡힌 대형 화재 사건이었다.

화재 후 몇 시간이 지나고까지 그 일대는 검은 연기에 휩싸였고, 신고를 받고 온 관계자 이외에 마을 사람들과 온 동네 강아지와 고양이들까지 현장은 아수라장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지금도 어떻게 가족들과 현장에 도착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고 머리가 멍했으며 눈물이 앞을 가려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힘겨워했던 기억만 남아 있다. 무조건 엄마 아빠를 봐야 했다. 그래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차에서 내린 나는 거칠게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밀치기도 비키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면서 부모님을 찾아 헤맸다.


한참을 헤맨 끝에 저 멀리 아주 오만하고 비열하게 웃고 있는 검은 연기 사이로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 엄마 아빠였다. 두 분의 모습이 보였다.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부처님. 정말 감사합니다.’


부모님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거칠고 따가운 공기가 양쪽 폐로 들어왔고, 나는 그렇게 한참을 캑캑거리는 기침으로 고통스러웠다. 기침하는 와중에도 내 눈은 부모님의 검은 그림자를 쫒았다.


“어떻게 해. 어떻게 해.”


부모님을 쫒는 눈동자 사이로 가늘고 서럽게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빠였다. 아빠의 눈물은 처음이었다. 비명보다, 꺼억거리는 울음소리보다, 아파서 쓰러질 듯한 목소리로 우는 모습이 더 서럽고 아팠다. 자신의 것을 눈앞에서 빼앗기고 있는데 막을 수 없는 그 심정이란. 부모님은 쓰러질듯한 모습으로 현장을 눈물과 함께 돌아다니셨다.

게다가 공장 바로 옆에 소 축사가 있었는데, 약 90마리 소들이 함께 울부짖는 소리란 얼마나 무섭고 처연한지. 들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상상도 하기 힘들 것이다.

우리에게 아니 그 장소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그날은 끔찍한 악몽이었다.


잠시 뒤 비가 내렸다.

어수룩해진 저녁의 공기와 기온 그리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마치 우리 가족의 마음 같았다. 우리는 아무도 비를 피하지 않았다. 비와 함께 울었다.


비가 눈물인 듯 눈물이 비인 듯.


정말 이 모든것이 지독한 악몽이어도 좋으니 꿈이기를 바라며 눈을 비비고 또 비볐다.


시간이 지나니 불길이 잡히면서 사건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 갔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사람이 빠진 그곳은 까맣고 텅빈 공간만이 휑하니 남아 있었다. 그곳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내일 아침에 엄마 아빠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돼버리면 어쩌지?’


내일이라도 아니 지금이라도 당장 이 두려움과 막막함이 엄마 아빠를 통째로 삼켜 버릴까 봐 겁이 났다.

살면서 내가 느낀 그 어떤 두려움보다, 지금이 가장 무서웠다.


‘엄마 아빠가 제발 저희 곁에 있게만 해주세요.’

‘엄마 아빠가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힘을 주세요.’

‘그러면 그 어떤 것도 다 하겠습니다.’

‘제발 저희 부모님이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도록…. 기적을 주세요.’


가족들은 생계를 반납하고 매일 화재 현장으로 가 부모님을 지켰다. 설 연휴와 겹치면서 현장을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검게 타버린 현장을 손으로 하나하나 정리하는 것뿐이었다. 가족들은 하루 종일 검은 재와 씨름했고 이곳저곳 상처가 났으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이렇게라도 마음을 그리고 삶을 추스르고 있는 부모님께 감사할 뿐이었다.


현장 정리는 정말 더뎠고 답답했지만, 가족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다했다. 하나씩 정말 하나씩 검은 잔해물을 치워 나갔다. 제발 어떤 것이라도 부모님께 힘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라면서.


나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았을까?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부모님의 삶에 대한 하늘의 응답일까?


이 검은 화재 현장에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연휴를 반납하고 부모님 지인들이 하나둘 공장으로 오셨다. 비 오는 겨울날의 매서운 날씨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화재 소식이 마을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부모님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옮겨지더니, 그동안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 동창들, 그 외 많은 사람이 찾아와 각자의 방식으로 위로하고 돕기 시작했다.

그들은 순번을 정해 점심을 마련하기도, 차와 간식을 사 오기도, 예약된 일을 취소하면서까지 굴착기와 지게차를 끌고 와 현장 정리를 돕기도 했다. 심지어 아빠를 따라다니며 옆에서 노래를 불러주시는 분도 계셨다. 매일 오는 사람, 시간이 될 때마다 들리는 사람 등 여러 형태로 그들은 부모님께 힘이 되어 드리고 있었다.


‘가족이 아닌데도 이럴 수 있구나.’


악몽 같은 불행도 나쁜 면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엄청난 값을 치러야 했지만, 그 동안 부모님께서 정성껏 살아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선희야, 힘내야겠다. 다시 한번 해봐야겠어. 저 사람들을 보고 어떻게 내가 울고만 있니. 그러니 너도 이제 걱정하지 말고, 온라인 게임으로 돌아가라.”


부모님은 진심으로 힘을 내기 시작하셨다. 제대로 식사도 하셨고 점점 표정도 밝아지셨다. 그들의 마음이 부모님의 마음을 단단히 잡아 주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나 힘이 될 수 있구나. 역시 사람은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아야 하나보다.


부모님은 화재 사건 이후로 수많은 후회와 자바카라으로 가슴에 피멍이 마를 날이 없었을 것이다. 한평생의 결과물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고, 포기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에 있는 사람들 덕분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물론 괜찮다가도 문득 힘든 감정이 올라올 것이고, 공장을 다시 짓는 와중에도 다 재건된 후에도 그때의 트라우마와 힘듦이 어느 순간 또다시 그분들을 덮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평생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오신 부모님은 이번에도 앞으로도 서로 닮은 그들과 함께 극복해 나가실 것이다.


사람이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 있다니!


이번 일을 계기로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더 나아가 내 아이들도 그런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다.


도움을 받으면 감사한 마음을 품고 간직할 줄 아는 사람,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안타까움을 느낄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 어려움에 기꺼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일상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 가족과 친구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으로.


다시 한번 이 상황을 견뎌준 부모님! 그런 부모님을 지켜주신 가족과 지인분들께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덕분에 저와 가족들 곁에 이 아름다우신 두 분이 밝게 웃으며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전화하면 언제든 다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달려가면 보고 싶던 얼굴을 볼 수 있게, 존재만으로 마음이 든든해질 수 있게, 맛있는 음식을 보면 마음껏 사다 드릴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다시 한번 모든 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부모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