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덜 사랑한다는 건 아니야

- 내 거친 날씨를 묵묵히 받아내 준 남편에게 -

by홍당무

“엄마! 시우가 내 우산 가져갔어요!”

“아니야. 제대로 보지도 않고 그런 말 하지 마. 시우는 포차코 그려져 있는 자기 우산 가져갔어.”

“저 우산 없어요. 그냥 비 맞고 갈래요.”

“아….”


장마철에 접어든 7월의 첫날, 둘째와 남편은 일찍 집을 나섰고, 첫째와 나만 아직 집에 남아 있었다. 아들 둘 다 소중하기는 매한가지지만, 이상하게 첫째는 나에게 어려운 숙제 같은 아이였다. 누군가는 처음으로 아이를 키워봐서 뭐든 다 어렵고 힘들게 생각된다 하지만 그것보다 기질적으로 아들과 나는 성격이 반대인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 유행하는 MBTI조차도 겹치는 것 하나 없으니 말이다. 그에 비해 둘째도 아들이지만 첫째와 다르다. 훨씬 더 편안하다. 그래서 첫째와 둘만 있는 시간이 되면 으레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오늘 아침도 역시 그랬다.


높은 기온과 끈적이는 습도, 일주일 치의 피로가 쏟아지는 금요일 아침. 무엇보다 출근과 등교 전 5분이라는 시한폭탄 같은 조건까지. 짜증이 폭발하기에 이보다 완벽한 조건은 없었다.


첫째는 자기 우산이 없다며, 그러니 다른 우산은 절대 들고 가지 않을 거라 고집을 부렸다.

아빠라면 껌뻑 죽는 아들에게 네 우산은 동생이 아니라 아빠가 가져갔으니 다른 우산을 가지고 가라 했지만, 아빠라는 마법도 통하지 않았다.


정말 이 순간 얼마나 남편이 원망스럽던지.

분명 다른 우산이 있음에도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바쁜 아침에 엄마를 들었다 놨다 하는 아들이 괘씸했다. 머리끝까지 얼굴이 빨개진 나는 정말이지 화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꾸역꾸역 화를 삼키고 있었다.


“인우야, 우산 있잖아. 잃어버려도 되니 일단 쓰고 가. 이렇게나 비가 많이 오는데 맞고 등교한다는 게 말이 되니.”

“싫어요. 그냥 비 맞고 갈래요.”

“아…. 알아서 해.”

“...”


어떻게 해도 실랑이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 분명해 그냥 출근해야겠다 생각했다.


‘설마,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아무거나 골라서 쓰고 가겠지.’


있는 힘껏 참았다. 혼자 한 발짝 한 발짝 바닥을 내리찍으며 엘리베이터 앞까지 걸어갔다. 잔뜩 화가 난 주먹으로 애꿎은 엘리베이터 버튼만 때리듯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 바닥만 보고 있던 내게 익숙한 슬리퍼가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눈앞의 인기척을 확인했다. 아들이었다. 아들은 씩씩대며 아빠의 슬리퍼를 신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엄마차에 가서 우산 있나 확인해 볼래요. 거기에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가지고 갈 거예요.”

“...”


학교도 안 가고 엄마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울며 불며 전화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나름 해결바카라을 생각해 낸 것이다. 정말 많은 발전이다 싶었다. 차에 제발 검은색 3단 우산이 있기를. 실내화 끄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리는 순간이었다. 바람과 달리 아들이 원하는 우산은 여기에도 그런데 없었다.


“엄마 그럼 편의점 가서 사주세요.”

“그래 알았다. 그게 마지막이야. 거기에도 마음에 드는 우산 없으면 집에 있는 거 아무거나 가지고 그냥 가는 거야! 알았지?”

“네...”


‘제발 있어라. 제발. 제발 해결하고 출근하자. 제발.’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간절히 빌었는지. 손을 비벼야 했다면 아마 피부가 빨갛게 됐을 것이다.


두근두근

편의점에 들어갔다. 편의점에 가는 것이 이렇게나 심장이 두근거릴 일인가! 아이들이 어렸을 때 포켓몬빵을 사기 위해 새벽같이 편의점에 가면 운 좋게 포켓몬빵을 사게 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최애 음료수며 빵이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검은색 물체만 쫒았다. 편의점 한쪽에서 우산더미를 발견하고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번에도 없었다. 검은색 2단 우산이 최선이었다.

포기하려는 순간 구석에서 검은색 3단 우산 한 개가 눈에 띄었다. 그 순간 얼마나 다행인지. 쿵쾅거리던 심장 소리가 마침내 조용해졌다. 고요한 그 기분이 온몸을 휘감았다. 마치 마지막 하나 남은 구원의 밧줄을 잡은 듯, 우산을 품에 꼭 안고 카운터로 향했다. 여느 때처럼 통신사 할인 등을 받아 최대한 싸게 사기 위해 이것저것 앱을 실행하던 중, 비를 잔뜩 머금은 내 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아침 일찍 일어나 애써 꾸민 웨이브 머리는 비를 맞아 부스스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


억울했다. 남편만 편하게 출근하는 것 같아서.

스마트폰으로 결제 화면을 띄우다 말고 화면을 꺼버렸다. 가방 속으로 폰을 밀어 넣는 대신 남편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필요할 때 쓰라며 건네받은 카드였지만, 그가 고생해서 번 돈임을 알기에 되도록 쓰지 않으려 아껴둔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배려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은 1도 들지 않았다. 통신사 할인조차 받고 싶지 않을 만큼, 나는 그냥 화가 나 있었다.


‘내가 이 정도로 고생하는데, 그리고 따지고 보면 오빠가 인우 우산을 가지고 가서 그렇게 된 거니 이 비싼 우산은 당연히 오빠 카드로 결제해야지.’


사실 결제완료 됐다는 직원의 말을 들으면 마음이 시원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식지 않았다. 뜨거운 열기가 숨을 가로막아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아들을 보내고 차에 타, 남편에게 전화했다. 남편이 카풀을 하고 있어 전화로 화를 내면 곤란할 수 있겠지만, 손가락은 어느새 차량의 통화버튼을 눌러 남편의 이름을 찾고 있었다. 스크롤바를 한참을 내린 후에야 남편의 이름이 보였다. 통화를 이렇게나 적게 했었나 싶어 서운함이 배로 밀려왔다.


“오빠! 오빠가 인우 우산 가져갔어?”

“무슨 우산?”

“3단 검은색 우산 말이야. 그거 인우 건데 가져가면 어떻게 해! 오빠는 트렁크에 우산도 많이 있을 텐데.”

“...”

“인우가 자기 거 없다고 얼마나 짜증을 냈는지 알아! 편의점까지 와서 우산 사서 들려 보냈어. 인우가 가져갈 만한 우산이 없긴 했어!”

“...”

“끊어. 나중에 이야기해. 출근해야 해. 아직도 집 앞 차 안이야.”

“...”


수화기 너머로 대답대신 들려오는 남편의 침묵. 전화를 끊자 차 안은 기묘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방금 전까지 가득 찼던 화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조용히 숨어있던 옹졸한 이기심을 남편에게 들켜버린 것 같아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내 거친 날씨를 온몸으로 묵묵히 받아준 남편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자식을 낳으면 남편을 향한 사랑이 자식에게 옮겨간다고들 한다. 남편보다 자식을 더 사랑한다는.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자식을 향한 마음이 뜨거운 '걱정'같은 사랑이라면, 남편을 향한 마음은 고요하고 깊은 '신뢰'같은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아들은 아직 어리기에 불합리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순간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남편보다 더 신경이 쓰이고 걱정스러운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일상에서 힘든 일이 생겨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나, 즐거워서 마음껏 자랑하고 싶은 순간이 오면 자식보다 남편이 먼저 떠오른다. 축하와 위로를 받으며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그렇게 남편은 연인에서 가족으로, 때로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부모를 대신할 보호자로 내 곁에서 나와 함께 한다.

일상의 모든 순간을.


오늘도 내 삶의 작은 이벤트가 생겼다. 여느 때와 같이 나는 바로 핸드폰을 들어 남편을 찾는다.


“오빠 나 기프티콘 당첨됐어.”

“오 정말? 축하해.”

“응 고마워. 이걸로 커피 사줄게.”

“그래.”


이런 내 마음을 남편은 알고 있을까. 아들보다 조금은 덜 사랑받는다고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를, 나의 남편을 가만히 걱정해 보는 비 오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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