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의 무게 -
“자기 전에라도 한번 더 안아줄 걸 그랬나?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겠지?” (아이들을 생각하며)
“나를 많이 생각해 주는데, 그에 비해 나는 부족한가?” (남편을 생각하며)
“이거 엄마 사다 드릴까? 분명 싫다고 하실 것 같긴 한데, 그런데 이게 필요하실 것 같단 말이야. (친정 부모님을 생각하며)
“과일 좋은 거 나왔던데, 이거 사다 드릴까? 싫어하시는 건 아니시겠지? 사다 드렸는데 안 드시는 건 아니시겠지?" (시댁 부모님을 생각하며)
‘아 머리 아파.’
오늘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바쁘게 현관문을 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다시 생각 속으로 빠져든다. 지하 1층까지 내려가는 잠깐 동안에도 머릿속은 생각들로 가득 차 숨 가쁜 시간을 보낸다.
“딩동~ 지하 1층입니다.”
엘리베이터의 도착 음에 생각은 잠시 멈추고, 발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내 모든 감각은 어제 차를 세워둔 곳을 찾기 위해 바빠진다. 분명 찾기 쉬운 곳에 주차했는데, 머릿속의 여러 생각들과 뒤엉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눈은 차의 모습을, 몸은 방향의 기억을 더듬는다. 찾았다!
땀을 흘리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잰걸음으로 몸을 움직인다. 문을 열어 무거운 출근 가방을 철퍼덕 조수석에 놓은 후에야,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몰아 쉰다. 라디오 디제이는 오늘도 신명 난 목소리로 말하고 있지만 어쩐지 머릿속에 머물러 있던 생각은 떠날 줄 모르고 다시 잡아당긴다. 나는 다시 생각 속으로 들어간다. 라디오 소리는 이미 저만치 멀어진다.
‘학교 갈 때 얼굴 보고 사랑한다고 말해줄걸 그랬나?’
‘오늘 오빠는 큰 발표가 있던데, 고생했으니 퇴근하면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해줄까?’
‘엄마는 무릎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으셨는데 조심하시겠지? 재활치료 하는 기계를 대여할 수 있나?’
지끈거리는 통증에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불러본다. 그러다 이내 잦아드는 노랫소리. 또다시 생각에 잠긴다.
날이 갈수록 머릿속에는 생각의 조각들이 빽빽이 자리 잡는다. 쌓이기만 하는 생각은 갈수록 그 무게가 더해져 지끈거리는 두통으로 나타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고민만 하는 내가 어쩐지 낯설다.
어느새 온라인 게임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도 잠시 파도처럼 밀려오는 생각에 내 머리는 온통 여러 생각으로 뒤덮였고 어느덧 나는 주차를 하고 있었다.
20대의 나는 망설임이 없었다. 생각이 떠오르고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면 고민 없이 실행했다. 주저함도 없었다. 그저 별다른 고민 없이 단호히 행동할 뿐. 생각은 나에게 그뿐이었다.
그런 내가 결혼을 했고 엄마가 되었다.
그때부터 망설임은 시작되었다.
‘이 젖병이 우리 아이에게 최고의 선택일까? 저게 더 나을까?’
‘안 그래도 분유 먹여야 하는데, 그래도 가장 가스가 덜 차는 제품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이 교구가 환경호르몬이 적을까?’
‘오빠가 오늘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데 간식이라도 싸 줄걸 그랬나? 안전 운전해야 할 텐데 괜찮겠지?’
워낙에 부족함 없이 자란 탓에 갖고 싶은 물건이 있어도 심각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다. 고민은 스트레스만 줄 뿐, 결국엔 사게 된다는 것을 알기에 큰 무리가 없는 선에서 소비했었다. 누군가에게 사랑이나 정성을 줄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주면 그뿐이었다.
그런 내가 왜 이렇게 걱정과 고민을 하는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때가 되면 이미 에너지는 바닥이 나 있다.
뭐 처음에는 아이가 어리니,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결혼생활도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고민도 하면 할수록 많아지는지 머리는 갈수록 복잡해지기만 했다. 그럴수록 마음도 덩달아 무거워졌다. 나에게 지워진 짐의 종류도 무게도 갈수록 그 크기를 더해갔다.
그래서 내 영혼은 점점 구부정한 자세가 되어 갔다. 육체의 키가 작아지는 만큼 영혼의 키도 작아졌다.
나는 더 망설이고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결국 ‘사랑’이었다.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그들에게 진심일수록 머리가 아팠다. 그들이 소중했기에. 더 고민하고 생각했기에. 맛있는 것을 먹다가도, 좋은 것을 보다가도, 예쁜 무언가를 마주하다가도 내 마음은 언제나 그들과 함께였다.
함께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들의 웃음과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
늘 행복하기를 늘 안전하기를 늘 편안하기를.
어릴 적 누군가의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다. 친척도 가족도 아닌 것으로 기억한다. 그분은 병문안을 와서는 한참을 울었다.
가족도 아닌데 왜 울지?
나는 왜 눈물이 나지 않지?
아무렇지 않은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40대인 지금은 텔레비전에서 누가 아픈 것만 봐도 뭔가 마음이 울컥하는 것을 자주 느낀다. 며칠 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고 학교에 돌아오신 선생님께서 감사하다며 떡을 돌리고 계셨다. 여느 때 같았으면 고생 많으셨겠다는 간단한 인사치레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그 선생님의 커다란 눈을 보는 순간, 앞으로 보고 싶어도 절대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그리움에 못내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
나는 요즘 문득문득 뭉클함을 느낀다.
아이들이 하루를 마치고 개운한 표정으로 돌아와 배고프다고 말하는 그 환한 미소에.
먹고 싶을 것 같아서라는 담백한 말 한마디와 함께 도넛을 내미는 남편의 손끝에.
애들이랑 먹으라고 아픈 다리를 절뚝거리며 반찬을 들고 오시는 엄마의 모습에.
피곤하겠다며 다 치웠으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엄마가 없이도 놀이터에서 씩씩하게 놀고 있는 동네 어린아이들의 모습에.
배가 아프다며 울음을 꾹 참고 보건실에 오는 학생들의 씩씩한 모습에.
새로운 일을 앞두고 무섭고 고민된다며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라도 마음을 진정시켜 보려는 온라인 게임 동료의 모습에.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계절의 모진 추위와 바람을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버텨냈을지, 어느덧 단단해진 그들의 눈빛과 걸음걸이를 보며 내 마음에도 동요가 일어난다.
그것이 나와 상관없는 타인일지라도.
일렁이는 마음은 다정한 온기가 되어 나를 감싸 안는다.
입가의 잔잔한 미소로, 뜨거워진 눈가로, 마침내 따뜻한 눈물방울로.
사랑이 깊어질수록 생각이 많아지기도, 눈물이 많아지기도, 세상이 진심으로 따뜻하고 살기 좋은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마음이 점점 깊어지나 보다.
나는 이렇게 사랑을 할 줄 아는 진짜 어른이 되어, 이 눈부신 계절을 지나고 있다.
오늘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끌어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