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에게 자꾸만 높은 잣대를 들이밀게 되는 나에게 -
“인우야, 또 화내려고 한다! 그만해. 여기서 멈춰! 또 게임 못하고 싶어!”
“아닌데…. 아닌데…. (비꼬면서)”
“그만해라. 경고한다.”
“아닌데…. 아닌데….”
사실 요즘 좀 살만했다.
아이를 낳고 내 고민의 대부분은 첫째였다. 신생아 때부터 지금까지.
그런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니 반항하기, 뭉그적거리며 화나게 하기, 막무가내로 울며 버티기, 말도 안 되는 떼쓰기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집안을 조용할 날이 없게 만들었었다. 그 덕분에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마트에 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주말에 나들이라도 가려고 하면 혼내고 다시 돌아오기 일쑤였다. 심지어 본인 생일에 외식하러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시끄러웠으면 그랬을까 싶다가도 첫째 하나 때문에 집안의 모든 사람이 힘드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때 나는 위염, 두통, 불면증 등 구석구석 돌아가면서 아픈 탓에 병원 신세를 여러 번 지기도 했었다.
‘과연 괜찮아지는 날이 올까.’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것이 과연 내 아이에게 통하는 게 맞을까.’
깜깜한 터널 속에서 헤매는 기분이었다.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고, 주변이 너무 어두워 무서웠다. 요즘은 길을 잃으면 차량의 내비게이션과 핸드폰의 각종 앱이 도움을 준다. 심지어 인공지능이 안심시키며 길을 안내해 주기까지 하니 어려움이 없는 시대다. 하지만 지금 우리 집을 덮고 있는 이 어둠과 암흑은 그 어떤 전문가도, 인공지능도 해결해 주기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더 답답하고 불안했다.
이대로 아이도 우리 가족도 잘못될까 봐.
누군가는 사춘기가 일찍 온 것이고, 커서 오는 사춘기는 더 무섭고 힘들다며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오는 이런 사춘기가 오히려 나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정말 그럴까?
그 말을 위안 삼아 지낸 지 2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엄마 우리도 해외여행 가요.”
“왜? 가고 싶은데 인우 네가 너무 화를 내서 못 가고 있는 거잖아. 비행기표도 지금 몇 번째 취소하고 있는지 알지?”
“....”
“그래서 못가. 나중에 네가 화를 조금은 참을 수 있게 되면 그때 가자.”
“그래도 가요. 참아 볼게요.”
“그래?”
“네. 저희 반에서 저만 해외여행 안 가봤어요. 그리고 친구들이 저 보고 개근 거지래요.”
“개근 거지?”
“네….”
“그래. 한번 생각해 보자.”
첫째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그해 1월, 5학년 종업식을 마치고 온 아이가 해외여행을 가자며, 본인만 개근 거지라고 놀림을 당했다고 했다. 그리고 화를 참아보겠다고 말했다. 언제 이렇게 많이 컸는지 힘이 들어간 다부진 입술, 또렷한 눈빛, 쫙 펴진 어깨너머로 결심이 느껴졌다.
‘화를 참아보겠다니. 며칠 지켜보면 알겠지.’
방학에 들어가서일까? 확실히 첫째의 행동이 변하기 시작했다.
눈 뜨자마자 아침 밥상에서부터 싸우기 시작했는데 그런 모습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화가 나면 “엄마 저 방에 들어가요”라며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까지.
화가 나면 그렇다 말하고 방으로 들어간 후, 괜찮아지면 나와서 이야기하라고 가르쳤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 앞에서 버티고 빈정거렸었는데, 아이가 정말 제 발로 방에 들어간 것이다. 아이의 행동에 우리 집을 장악하던 긴장된 시곗바늘 소리마저 그 움직임을 멈춘 듯 했다.
‘정말 방에 들어갔어!’
그 순간 정말이지 내쉬는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웠다. 내 작은 움직임이 지금 이 순간의 기적을 깨트려 버릴까 봐.
‘이게 무슨 일이지? 참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터져 더 힘들어지는 것은 아니겠지?’
기쁘면서도 불안했고, 괜찮다가도 걱정되었다. 마음이 자꾸만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게, 나는 다시 사춘기 시절의 한복판을 지나는 소녀가 되었다.
걱정과 함께 아들의 변화는 계속되었다. 덕분에 남편의 훈육 소리도, 둘째의 울음소리도, 내가 화내는 횟수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 가족의 첫 번째 해외여행이 가능할 것 같은데?’
고민 끝에 남편과 나는 비싼 돈을 들여 비행기표를 예매한 후 틈틈히 아들을 교육했다. 국내 여행보다 더 피곤하고 힘드니 화는 더 자주 날 것이고, 그러니 잘 참아야 한다고. 연습해 보자고. 그리고 최대한 여행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 가고 싶은 곳과 먹고 싶은 것을 정하게 하면서 여행을 즐기고 경험할 수 있도록 최대한 준비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가족의 첫 해외여행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물론 화를 아예 안 낸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았다. 그 후로 아들은 급속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경험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화를 참는 방법에 대해 머리로 아는 것을 넘어 직접 해본 경험.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경험.
그리고 느끼는 자신에 대한 신뢰.
현재 아이는 6학년에 올라간 지 한 학기가 다 되어 간다.
요즘 정말이지 살만하다. 아들은 누가 보기에도 안정되어 보였다. 아들이 안정을 찾아가는 만큼 집안의 고함소리는 잦아들었고 가족들이 웃는 시간도 늘어갔다. 그리고 끝날 것 같지 않던 나와 위통과의 전쟁도 어느 정도 끝났는지 병원에 발길을 끊은 지도 몇 달이 되었다.
한때 “엄마 아빠가 저를 괴롭히니 보육원에 버려주세요.” “호적에서 파 주세요”라며 바로 집 앞이지만 가출을 감행하기도 했던 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가끔 이전의 행동을 다시 하는 날도 있었다. 그것들은 지독하게도 첫째에게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나 보다. 아들이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여지없이 고개를 들고 나타나 아들과 우리 가족을 괴롭히는 것을 보면.
그럴 때면 나도 예전으로 돌아가 버린다. 불안하고 초조했던 그때로.
그래서 아들이 그런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일 때면, 심장이 땅으로 푹 꺼져 버림을 느낀다. 다시 어두운 터널 속을 헤매는 기분이 든다.
‘아 다시 시작인가.’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온몸에 힘을 주며 아이에게로 걸어간다. 눈이 충혈될 정도로 무서운 표정으로. 성대가 튀어나올 정도로 힘을 준 목소리로.
“인우야. 그만해. 지금 예전 그 버릇 나오려고 해. 경고한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아닌데, 그게 아닌데. 그냥 그렇다고 말한 건데 엄마는 화부터 내고!”
“네가 화를 낼까, 봐 그렇지! 예전처럼 또 그렇게 할까 봐!”
“아닌데 아닌데 그게 아닌데. 엄마는 말도 못 하게 하고.”
“그게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만해라! 제발! 방으로 들어가!”
“아닌데, 그게 아닌데.”
아이는 억울한 듯 방으로 들어간다.
축 처진 어깨, 동그랗게 말린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 그때 서야 아차 싶은 마음에 후회가 밀려온다.
‘내가 너무 심했나!’
아들은 정말 그게 아니라고 그저 일상적으로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아들이 예전처럼 행동한다고 넘겨짚고 화를 냈을 수도 있다.
화를 내는 아이도 예쁜 말을 하는 아이도 모두 내 아들이건만.
나는 예쁘고 좋을 때만 아들로 삼고 싶었나 보다.
살면서 어떻게 매일 좋을 수만 있을까! 나도 좋을 때보다 짜증 나고 화가 날 때가 더 많은데. 내 아들은 늘 좋고 사랑스럽게, 모범적인 모습으로만 내 곁에 있어 주길 바랐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불편함 없이 편안하고만 싶었던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힘들어지고 싶지 않은 이기심. 아이 입장에서는 그저 짜증이 나서 표현한 것뿐인데, 짜증을 냈다고 혼내고 사랑한다고 말할 때만 예뻐해 주니, 집에서까지 눈치를 살펴야 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인우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집이라는 공간이 숨이 턱 막히는 곳은 아니었을까?
1층에서 9층까지 한달음에 도착하는 엘리베이터 속도가 야속하지는 않았을까?
엄마를 볼 때마다 선생님을 만난 것처럼 긴장되지는 않았을까?
힘든 마음을 풀 곳이 없어 그 작은 가슴이 터져버릴 만큼 답답하지는 않았을까?
스트레스로 무거워진 마음은 갈수록 그 무게가 더해져 결국 가라앉아 버리지 않을지 겁이 났다.
육아란 결국 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일 텐데, 나는 아이가 힘들다고 보낸 서툰 신호들을 내 마음을 힘들게 한다는 이유로 거부하며 윽박지르기 바빴다.
사춘기 시절 내 마음을 떠올려 보았다.
무심코 스치는 작은 일 하나에도 그것은 갑작스러운 폭풍이 되어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기도 했다. 그럴 때면 엄마에게 괜스레 화를 내고 투정을 부렸다. 그러고 나면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공부하기도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물론 부모를 함부로 대하면 안 되지만, 아이가 부모에게조차 힘듦을 말하지 못하면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털어놓고 나면 한층 편안해진 마음으로 제 삶을 살아갈 힘이 생기지 않을까. 무언가가 가득 차 있는 곳에 새로운 것이 들어설 자리는 당연히 없을 테니까.
내가 힘들어지는 것이 두렵다며, 아이의 마음을 함부로 대하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이도 나도 많이 힘들지 않을 방법을 찾아 함께 이야기해 봐야겠다.
그리고 아이를 지나치게 높은 잣대로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겠다. 예전에 비하면 아이는 굉장히 발전했고 나아진 모습이건만, 그동안의 행복과 편안함에 너무 안주했나 보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상황이 오면 그것이 싫어 아이에게 윽박을 지르는 것을 보면.
조금만 더 다정하게 말해주기를, 조금만 더 화를 참아주기를, 그리고 조금만 더 모범적이기를. 평화로운 날이 늘어날수록 나는 기다렸다는 듯 아이에게 새롭고 더 높은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다. 갈수록 높아지려는 이 기준들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할 때다.
오늘도 많은 생각에 뒤척이던 나는, 하얀 블라인드 사이로 비춘 햇살에 부스스 몸을 일으켜 미리 맞춰져 있던 핸드폰의 알람을 끄며 생각한다.
내 기준 말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를, 건강히 가족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기를, 오늘도 모두 마음 편히 잘 지내는 것에 행복해하기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