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브 시청권을 확보하기 위한 형제의 필사적인 편지 쓰기 -
“오빠 나왔어. 얘들아 엄마 왔다.”
저녁을 먹고 여느 때와 같이 아파트 피트니스센터에 다녀오는 길이다. 웬일인지 집안이 조용했다. 마치 내 목소리가 불청객이 된 듯. 평소 같으면 공부하기 싫은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와 엄마 다녀왔냐며 나는 이런 공부를 하고 있었다며 공부방을 뛰쳐나오기 바빴을 아이들인데. 갑자기 도서관이 된 듯한 집안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
“오빠 애들 왜 이래? 무슨 일이야? 뭔데 이렇게 집중을 해?”
“크크크 재밌지?”
“뭔데, 무슨 마법을 부렸길래. 그토록 바라던 연필 소리가 들리지?”
“봐봐 뭐 하고 있나.”
아이들은 엄마가 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각자 바카라상에 앉아 무언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만화였다면 아이들 머리에서 뜨거운 증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이 그려질 정도였다. 특히 곧 울음이 터질 듯 말 듯 하는 둘째가 정말 웃겼다.
“시우야 뭐 해?”
“어? 엄마 언제 왔어요?”
“방금. 시우야 그런데 뭐 해?”
“엄마 나 할머니한테 편지 써야 하는 데 못 쓰겠어요. 도와주세요.”
“조시우 도와 달라는 말 금지!”(아빠)
“네….”
“크크 시우야 나는 다 했다. 엄마 저 편지 다 썼어요. 10줄도 넘게 썼어요. 잘했죠? 봐 보세요.”
“형만 다 쓰고!”
두 달 전 친정엄마가 인공관절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래서 주말마다 우리 가족은 평소 엄마가 좋아하시던 간식을 사서 병원을 오가던 중이었다. 처음에는 가기 싫어하던 아이들도 갈 때마다 맛있는 간식도 먹고 할머니가 주시는 용돈도 받아서인지 이제는 오히려 병문안을 기다릴 정도다. 할머니께 위로를 해드려야 하는 상황인데 아이들이 오히려 위로를 받는 셈이 되었다.
남편은 받기에만 익숙한 아이들을 교육하고자, 편지와 병문안 간식을 직접 준비하게 했다. 연필을 잡고 글을 쓰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아이들이라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남편은 조건을 건 묘수를 쓴 것이다.
그 조건이라는 것이 편지 한 줄을 쓸 때마다 유튜브 10분을 볼 수 있다는 것.
우리 집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게임과 유튜브 시청이다. 게임은 형제끼리 싸우는 바람에 금지된 지 오래고 유튜브 시청만 남은 상황이라, 더 많은 시청 시간 확보를 위해 집중력과 인내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첫째는 그래도 6학년이라고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술술 써 내려갔고, 이말 저말 모두 넣어 15줄을 완성했으니 150분의 유튜브 시청 시간을 획득한 셈이다. 그리고 그 내용 또한 꽤 괜찮았다. 어릴 적 편지를 쓰라고 하면 어떻게 쓰냐며 울던 그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첫째는 많이 자라 있었다.
문제는 둘째였다. 머리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민하고 고심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형이 편지를 많이 썼으니, 필사적인 노력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엄마 도와주세요. 편지는 어떻게 쓰는 거예요.”(둘째)
“많이 써봤잖아. 하고 싶은 말을 쓰면 되지.”(엄마)
“몰라요. 모르겠어요. 도와주세요.”(둘째)
“너 혼자 써봐. 편지는 네 마음을 전하는 거지. 엄마 마음이 아니잖아.”(엄마)
“정 모르겠으면 할머니가 병실에서 심심하시겠지! 그러니까 웃긴 말이라도 써봐.”(아빠)
“네….”(둘째)
한참을 편지지와 씨름하던 둘째는 도저히 못 하겠다며, 잠을 자야겠다며 잠자리에 들었다.
예전 같으면
“나는 형보다 3살이나 어리니 못 쓰는 게 당연하다고요.”
“나는 이 세상에서 편지 쓰는 게 제일 싫어! 으앙앙앙.”
“누구나 편지를 안 쓸 권리는 있다고요!”
“아빠가 일부러 어려운 거 시켰어.”
라면서 온갖 떼를 써가며 결국 편지를 안 썼을 것이다.
편지를 쓰려다 잘 안되니 잠을 선택하는 둘째의 모습이 기가 막히면서도, 한편으로는 많이 컸다고 생각했다. 대견했다.
오늘도 새벽에 잠이 깬 나는 피곤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겨 있었다. 부산한 발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둘째였다. 약 1시간 정도 물을 먹었다, 소변을 봤다, 바카라상의 불을 켰다 컸다를 반복하더니, 행복한 표정으로 안방으로 달려와 배고프다며 밥을 달라고 했다. 동시에 분홍색 편지지를 자랑스럽게 내밀면서.
“엄마 다 썼어요.”
“크크크 시우야 이거 네가 썼어? 대박! 완전 기가 막힌다. 잘 썼네!”
내용은 이랬다.
[할머니 반찬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머니 용돈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머니 빨리 나으세요. 할머니 바나나가 웃으면 뭐게요? 바나나킥입니다. 할머니 바나나가 지치면 뭐게요? 바나나 지침입니다. 할머니 기차가 달리면 뭐게요? 정답은 달리는 바나나 기차입니다. 할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얼마나 쓸 말을 못 찾았는지, 편지에는 농담이 한가득 쓰여 있었다.
“시우야 정말 잘 썼다. 감동.”
“그렇죠? 새벽에 일어나서 혼자 썼어요. 저도 형이랑 같이 15줄이라고요.”
“오 축하해. 그런데 저 농담은 어디에서 보고 쓴 거야?”
“아니요. 제가 지어서 썼는데요.”
“할머니가 병원에서 심심하실 텐데 재미있으시겠다. 잘했다. 시우야.”
유튜브의 힘은 정말 대단했다.
우리 집 아이들의 손에 연필을 쥐여주고 머리를 쓰게 만들다니. 게다가 천상 게으른 둘째를 새벽에 깨워 글을 쓰게 하다니.
하지만 정말 대단한 건, 긴 편지를 술술 써 내려간 첫째의 훌쩍 자란 생각하는 능력과, 어떻게든 형을 이겨보겠다고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며 바나나 지침까지 고민한 둘째의 갸륵한 오기와 성실함이었다.
결국 아이들은 아빠의 묘수 덕분에 기쁜 마음으로 준비한 과자 선물과 편지를 들고 할머니 병문안을 다녀왔다. 그리고 무려 1시간이 넘게 유튜브를 시청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유튜브를 보았지만, 나는 그 뒤에 숨겨진 아이들의 사랑스럽고 기특한 성장을 보았다.
오랜만에 아이들의 귀여운 행동에 웃음 가득한 주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