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눈길이 그녀를 향하는 이유 -
온라인 게임에 유독 눈길이 머무는 사람이 있다. 연꽃을 닮은 사람.
언제나 단정한 옷차림과 단아한 태도, 그리고 정갈한 말투. 그 사람과 이야기하고 나면 나도 고요한 연꽃이 된 듯 온화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된다. 그래서 온라인 게임에 출근하면 내 눈과 귀는 은연중에 그 사람을 쫓는다. 아마 배우고 싶었나 보다. 내 안의 소란과 혼란함을 잠재우기 위해.
하루는 퇴근 시간을 한 시간 반쯤 앞둔 오후였다. 종일 아픈 아이들로 수십 번도 열렸다 닫혔다 시끌벅적했던 보건실 문 앞에서 누군가가 서성이는 조용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평소와 다른 인기척이었지만 어쩐지 궁금함 보다는 그저 고개를 돌리고만 싶었다. 온종일 아픈 아이들을 상대하며 그 아이들의 아픔과 힘듦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나면, 에너지가 바닥이 나기에. 그럼 몸도 마음이 마치 물속으로 가라앉은 듯 무거워지기에.
아직 지친 마음을 채 달래지 못한 나는, 속으로 주문을 왼다.
‘제발 문아 열리지 말아라. 제발 아무도 들어오지 말아라.’
10초가 1분인 듯, 1분이 3분인 듯, 나는 문밖의 누군가와 혼자만의 기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 그림자는 문을 열고 쉽게 들어오지 못하면서 주저주저하는 모습이었다.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누구지? 무슨 일이지?’
잠시 후 부드러운 노크 소리와 함께 보건실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아! 선생님!”
내 눈길을 잡던 그분이었다. 손에는 수줍게 분홍색 바카라 한 권을 들고.
단번에 알아보았다. 내 바카라인 것을.
“헤헤 선생님 사인 하나 해주세요.”
“선생님 바카라을 직접 사셨어요? 저에게 말씀하시면 제가 드릴 수 있는데요.”
“아니에요. 사서 읽어야죠.”
“너무 감사합니다.”
평소 마음이 힘들 때마다 썼던 글을 모아서 바카라을 냈었는데, 그 바카라을 직접 구입하셔서 가지고 오신 것이다. 그 모습에 조금 전까지 문을 걸어 잠그고 싶었던 내 옹졸함이 못 견디게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사인을 받고 싶어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는 그 감사한 마음 앞에 부끄러워진 나는, 사인 대신 앞표지에 가득 편지를 써서 감사함을 전했다.
그날 이후 그 선생님은 더 단단히 내 마음속에 새겨졌다. 급식실에 가든, 체육관에 가든 내 시선은 그분의 모습을 찾았고, 코끝은 그분의 은은한 향기를 쫓았다. 마치 비밀스러운 숨바꼭질을 하듯 그랬다. 그러다 문득 알았다. 선생님께 특별한 언어습관이 있다는 것을. 메신저의 쪽지 끝에 항상 남기는 마무리 인사가 있다는 것을.
“좋은 하루 만드세요.”
보통 쪽지를 보낼 일이 있으면 용건을 적고 마지막에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문장을 덧붙이고는 한다. 그런데 ‘좋은 하루 만드세요’라니. 얼음을 한가득 입에 담고 있는 듯 머리까지 얼얼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한동안 이 문장은 잔잔하게 스며들어 나를 움직였다.
불면증 때문에 일찍 깬 새벽에도, 업무에 지쳐 다른 누군가에게 날을 세울 때도, 집안일에 치여 마음이 울컥할 때도, 아이들 밥을 차리면서 대충 선 채로 끼니를 때우는 처량한 순간에도, 이 문장은 다정한 곳으로 나를 안내하듯 말을 걸어왔다.
‘진정해. 좋은 하루를 만들어 보자. 만들 수 있어.’
그렇지 나의 하루는, 내가 만들 수 있지!
짜증을 잠시 넣어둬 볼까? 내가 조금 더 움직여 볼까? 예쁘고 좋은 음식을 차려서 천천히 음미하여 먹어볼까?
삶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가는 삶.
정갈하면서 내면은 강한 자신만의 은은한 빛을 낼 줄 아는 삶.
선생님을 보면 왜 연꽃이 떠오르는지 이해가 갔다.
오늘 아침 찌뿌둥한 몸을 감싸던 이불을 걷어내며 다짐한다.
내가 원하는 좋은 하루를 만들어 보자고.
이를 위한 첫번째 방법으로 잠에 취해 투덜투덜 걸어 나오는 아이들에게, 입가에 미소를 힘껏 장착하고 인사를 건네본다.
“얘들아! 잘 잤니! 좋은 아침이야! 오늘도 좋은 하루 만드렴!”
갑자기 동그란 눈에 환한 웃음을 띠며 아이들이 달려와 나에게 안긴다.
“엄마도요!”